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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 Nov 03. 2024

[연애소설] 3화 살랑이다

마음과 마음

준희가 느끼기에 정현은 자신의 세계가 단단하면서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 모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넬 거 같은 사람, 자신도 그 많은 사람들 중 한명일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해 준희는 쉽게 말을 건네지도 친절을 먼저 베푸는 쪽은 아니었다. 차가운 인상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굳이 먼저 다가서지 않았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해명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소리가 나쁘게 들리지도 않았다. 원할 때면 환심을 사려 적극적으로 다가서기도 했지만 그런 순간이 드물 뿐이었다. 그 탓에 대게 사람들은 준희가 차갑고 내향적이라고 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준희가 외향적이고 착하다고 말했다.


웃는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나 다정함이 몸에 밴 사람들이 오해를 덜 받고 호감을 얻기 쉬운 것을 알고 있었지만 준희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정된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쏟기에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친절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하는 말을 믿기도 했다. 자신이 이리 냉소적인 것은 체력이 부족한 탓일까 하는 때도 있었다. 운동을 하면 될까? 하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준희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기에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살기로 했다. 상대가 욕을 하면 욕을 하는 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게 보는 사람이 생기면 좋은 대로.


정현과 한참 얘기를 나누다 숙소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그의 향기가 떠올랐다. 여기서 10분 거리에 숙소가 있다고 했다. 그럼 그를 또 볼 수 있을까? 해변이라도 같이 걸을걸 그랬나. 그가 숙소로 돌아가봐야 한다고 해서 아쉽지 않은 척 그러자고 했는데 실은 아쉬웠다. 그는 내 숙소를 알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10분 거리에 그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이름 정도. 그러고 보니 나이도 묻지 않았다. 그가 이 카페를 다시 찾아 올 확률은? 우연히 나도 그 카페에 있을 확률은? 하루종일 테라스에 앉아 있는다면 그가 지나갈 때 볼 수 있지 않을까. 짧은 만남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뭐가 그리 아쉬운 것인지. 그는 그저 모두와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일 뿐인데 자신만 정현에게 마음을 준 것만 같았다. 어쩌면 캘리포니아라는 것과 한국에서의 일로 건조하다 못해 갈라져 있던 마음에 이슬 하나 떨어뜨린 흔적이 준희에게는 너무 큰 변화로 느껴졌다. 여기가 한국이었고 내가 이런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숙소로 돌아온 정현은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뜯었다. 약 먹을 시간이라 준희에게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약을 들고나갔다면 준희와 좀 더 오래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준희 몰래 약을 입에 털어놓고 함께 있는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자신을 아쉽게 했다. 약을 가지고 나가지 않은 것보다 준희를 만난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의 숙소도 알게 되었고 김준희라는 이름도 알게 되었고, 원한다면 다시 그녀가 있는 카페로 갈 수 있다. 언제 다시 가지? 지금이라도 다시 나가 그녀가 아직도 앉아 있는지 보고싶었지만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번 본 사람이 자꾸 찾아가면 너무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성을 만나면서 애를 쓴다는 것이 정현에게는 낯설었다. 늘 주변에 이성이 많았고 어떤 작전을 모색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던 정현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마음을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자신의 모습 때문인지, 그녀가 특별한 것인지 아직 정현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파스타 면을 꺼냈다. 요동치는 마음이 몸으로 드러나듯 괜히 이리저리 움직였다. 정현은 파스타 면 중에서도 푸실리를 좋아했다. 회오리치는 면의 모양이 씹는 재미가 있었다. 푸실리 면을 쫄깃하도록 삶고 페퍼론치노를 섞은 머시룸 수프를 데워 정현만의 파스타를 완성했다. 얼려둔 냉동실에 얼음을 꺼내 유리잔에 가득 담고 커피를 내렸다. 크지 않은 거실은 커피향으로 가득 찼고 정현은 식탁에 그럴싸하게 세팅 후 앉았다. 숟가락으로 푸실리를 가득 퍼 입에 넣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생각에 잠겼다. 무슨 얘기를 하지? 정현에게 만날 수 없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언제든 찾아가 카페에 앉아있으면 준희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정현은 파스타를 담은 그릇을 싹싹 긁어먹고는 바로 설거지를 했다. 정현의 깔끔한 습관이었다. 부지런하기보다 지저분한 것을 볼 수 없는 성격 탓이었다. 감정은 뇌를 지배한다. 준희와의 만남으로 정현에게는 옥시토신이 잔뜩 분비되고 있었을 것이다. 사사로운 모든 것이 즐겁고 들떴다.

과일이라도 좀 사올까? 정현은 설거지를 끝내고 근처 마켓으로 향했다. 형형색색 과일들이 즐비하는 와중에 실해 보이는 과일을 신중하게 골랐다. 왠지 준희를 집으로 초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그녀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많은 양을 고르고 있는 정현이었다.



"따라라라라따라-둥-따라라"


피아노 선율로 이루어진 준희의 폰 벨소리가 울렸다. 은영의 전화였다.


"준희야~~! 왜 이제 받아, 뭐해?"

"거기 좋아?"


은영이 건 화상통화를 받으며 준희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은영아~ 그냥 정리 좀 하고 있었어"

"여기 보여줄까?"


준희는 핸드폰을 돌려 거실을 보여주고 창으로 자세를 돌려 밖을 보여주었다.


"우와~~ 준희야 너무 좋아 보여!"

"여기는 새벽이야, 출근 전에 전화해봤어."

"얼굴도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여기서 한국인을 만났어."


"한국인?"


"응. 나랑 같은 비행기를 탔대."


"우와 준희야~ 신기해! 멋찌다"


은영은 준희와 중학생 때부터 친구라 알고 있었다. 준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자기한테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남한테는 정말 관심이 없는 준희였다. 준희의 얼굴이 밝아 보이는 것은 어느정도 그 '한국인'이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준희야~ 다음에 나도 소개해줘! 같이 놀자"


"아직 서로 번호도 몰라, 그냥 인사만 했어"


"친해지면 소개해줘~!"

"준희야 나 출근 준비해야 해서 이제 끊어야 해"

"또 전화할게!"


"응. 출근 잘하고-!"


전화를 끊은 준희는 잠시 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붕 떠있지. 나가서 서핑이라도 배워볼까. 정현처럼 자전거라도 빌려 탈까. 따뜻한 날씨와 푸른 바다, 활기차 보이는 여행객들 그리고 여유로운 현지인들, 환경의 영향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에 대하여 감상에 빠졌다. 그 안에 '정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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