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빵!!!!!”
도로 위 차들이 놀란 듯 경적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신호 없는 4차선 도로를 넋이 나간 채로 건너고 있는 한 여자, 그 주위로 차들이 하나 둘 엉켜 서며 창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지나던 행인들도 놀라 바라보지만 준희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무사히 길을 건넜다.
준희가 원한 것은 무사히 건너는 것도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니었다.
준희는 1인 병실에서 창 너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간 넋이 나간 채로 있는 준희의 상태가 걱정된 10년 지기 친구가 검진을 추천했다.
“준희야~!”
준희가 좋아하는 31 아이스크림 들고, 은영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요즘은 정신과 다니는 거 흠도 아니야~! 감기 같은 거야. 힘들면 병원 도움 받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준희에게 검진을 추천한 은영이 병실에 와 조잘조잘 떠들었다. 준희는 희미하게 웃으며 침대로 가 걸터앉았다.
“몸에는 문제가 없다니까 신경정신과에서 상담도 받아보자. 알았지? “
은영은 준희가 먹을 수 있게 아이스크림 통을 열고 스푼을 뜯어 주었다. 준희는 은영의 정성을 생각해 한입 물었다.
“잘 먹을게 “
“퇴원 수속하고 가면 되는 거지? “
“응”
“이것만 먹고 가자. “
“나 캘리포니아 가려고”
“응?”
“캘리포니아~~?”
“우와”
준희는 잠시 한국을 떠나 있기로 했다. 일 년 내내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있으면 화창한 날씨에 따라 자신의 기분도 조금 나아질까 하는 선택이었다.
“그래! 가서 좀 쉬고 와.”
“응”
얼마나 있다 올 지 결정하지 못한 채 캘리포니아 편도행을 끊은 준희가 캐리어 하나만 단출하게 들고 공항으로 들어섰다.
“준희야! 내가 배웅해줘야 하는데 미안. 오늘 도저히 휴가를 낼 수가 없었어! 내 맘 알지?!”
“그럼. 괜찮아~ 도착하면 연락할게.”
회사일로 공항까지 배웅 오지 못한 은영이 준희에게 전화를 했다. 준희는 전화를 끊고 두리번거리며 앉을 의자를 찾았다.
한국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날씨라 조금 두텁게 입었지만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 더울 거 같아 미리 겉옷을 벗어 캐리어에 욱여넣을 생각으로 의자에 앉아 캐리어를 펼쳤다.
“후”
점퍼를 겨우 욱여넣으며 빵빵해진 캐리어를 거칠게 잠그기 시작했다. 그때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신기하듯 준희를 보고 있었다.
대충 올려 묶은 듯한 머리에 편한 운동복을 입고 주위는 안중도 없이 가열차게 캐리어를 잠그고 있는 모습이 재밌기도 귀엽기도 했다. 같은 편명이면 얼마나 좋을까? 괜한 기대도 했다.
‘그럴리 없지 ‘
캘리포니아행 비즈니스석을 끊은 준희는 짐을 올리고 편하게 잠들 채비를 하였다. 옆자리에도 누군가 타서 짐 정리를 하는 듯했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준희는 눈길도 주지 않고 털썩 누웠다.
정현은 하늘이 마지막으로 자기의 기대에 부응하듯 옆 자리에 준희가 탄 것이 믿기지 않았다. 부산스러운 그녀를 잠시 보다 애써 시선을 돌려 자리에 앉았다.
‘와..‘
‘음..’
설렘도 잠시 그녀가 옆에 탄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쓸쓸했다.
‘안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