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매해 갱신되는 폭염 일보로 양산을 쓴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제 양산은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세대에 맞는 디자인까지 늘어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20-30대들의 손에 양산이 하나씩 들려있다.
수화 역시 출근을 앞두고 구매한 양산을 썼고, 긴장과 결연이 섞인 얼굴을 한 채 회사 앞에 도착하였다. 양산을 접어 넣으려고 아래로 내리자 얼굴로 바로 쬐는 햇볕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출근 첫날이라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건물 미화원이 아침마다 사무실 문을 열어두어 비밀번호를 몰라도 들어갈 수는 있었다.
더운 열기만 가득한 사무실을 시선으로 쓱 둘러보고 개인 소지품 하나 없는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하.."
균일하게 페인트칠되지 않은 복도와 사무실 사방이 시멘트빛인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백수에서 벗어난 안도감과 고정적인 수입이 생겼다는 안정감이 더 커 수화에게 만족스러운 취업이었다. 하지만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기억하지 못한다 했던가, 얼마가지 않은 만족감이었다.
하나 둘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수화는 슬쩍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였다.
“어, 수화씨 일찍 왔네요. “
“오늘부터 출근하는 김수화씨예요”
면접 볼 때부터 안내를 해주었던 직원이 어색하게 서 있는 수화를 보고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인사시켜 주었다. 그 직원은 수화가 속한 부서의 과장으로 이 회사에서 15년간 근속하며 터줏대감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직원이었다.
“나는 이은영 과장이에요. 잠깐 저쪽으로 갈까요. 혹시 서류는 가져왔어요? “
“아, 네.”
수화는 가방에서 준비된 서류를 챙겨 이과장을 따라 자리를 이동하였다.
“오는데 힘든 거 없었어요?”
“네, 괜찮았어요. “
서류를 건네받으며 이과장은 수화에게 사담을 건네었다. 엷은 미소를 띤 수화는 연신 끄덕이며 어색함을 이겨내려 노력하였다.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지만 말이 많은 편이라 적당히 가벼운 얘기들로 사람들과 곧잘 어울리는 수화였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수화의 방식이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처량하게 보이는 법을 터득한 탓에 수동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조종하곤 하였다.
그 방식에 유독 반응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리거나 감정선이 세밀한 사람이었다.
이과장과 짧은 면담 후, 각자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적막한 사무실 속에 수화는 한숨을 쉬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모니터는 바탕화면만 반짝이고 연신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수화씨~ 이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정리해서 주고 인수인계서 폴더 있을 텐데 한번 봐요.”
등을 마주하고 앉아있던 박대리가 의자를 돌려 수화에게 업무를 주었다. 아마도 팀원들끼리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다 박대리가 업무를 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네”
수화는 서류를 받아 들고 뒤적이며 정리를 하기도 하고 바탕화면의 인수인계 폴더를 열어 보기도 하였다. 봐도 봐도 답답하기만 한 수화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맞은 편의 자리에 있던 직원 한 명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
한숨 소리를 듣고 속으로 내뱉은 수화의 마음이었다.
순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직원은 수화와 또래로 3개월 먼저 입사한 김지혜 사원이었다. 박대리가 시킨 서류 정리를 마친 수화는 어깨를 움츠려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뭐 먹을까요?”
“수화씨 뭐 좋아해요?”
“오리 고기 먹을까요?”
박대리가 자리에서 몸을 살짝 돌려 사무실 직원들이 다 들리도록 이야기하다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만졌다.
점심시간이 되어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 박대리가 점심 메뉴를 주도한 것이었다. 새로 입사한 직원이 있어 부서 단체 점심을 먹기로 한 듯하였고, 메뉴는 어차피 오리주물럭으로 정해져 있었으나 분위기를 끌어가고자 박대리가 질문을 하였다.
“오리 고기 먹으러 가자”
박대리와 같은 직급의 권대리도 자리에 일어나 동조하였다.
“맛있게 드세요”
부서의 유일한 남자인 팀장은 굳이 참여하지 않고 따로 먹겠다는 의사를 표한 뒤 사무실을 먼저 나섰다. 뒤이어 권대리와 박대리를 필두로 과장이 사무실을 나서고 3명의 직원이 뒤이어 조용히 식당으로 따랐다.
6명이 다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에 앉아 권대리가 메뉴를 주문하였다. 한 테이블이라고는 하지만 수화를 포함한 세명의 사원이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고 그 옆에 3명의 팀원들이 마주 앉았다. 수화와 앉은 테이블은 지혜가 주걱으로 고기를 휘저었고, 옆에선 박대리가 고기를 연신 휘저었다.
“수화씨 오리 고기 좋아해요?”
“맛있어요. “
먼저 말문을 튼 건 권대리였다. 수화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하나 집어 먹으며 권대리를 향해 웃어 보였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내 대리와 과장은 본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애써 다 같이 이야기하려는 시도를 멈추었다.
수화는 조용히 고기와 밥을 먹으며 맞은편 지혜와 그 옆에 앉은 김정윤 사원을 의식하였다.
“수화씨는 오는 데 얼마나 걸려요?”
어색한 분위기에 연신 밥만 먹고 있는 수화에게 정윤은 먼저 말을 걸었다.
“아.. 한 40분 걸려요.”
“아~ 다들 비슷하네요. 저도 그 정도 걸리거든요.”
“저랑 지혜씨는 같이 입사했어요. 3개월 전에요. “
“아..”
지혜와 정윤은 말없이 식사를 하는 수화를 잠시 보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식사를 마쳤다. 권대리의 주도로 계산 후, 식당을 나서 근처 카페로 향하는 길에도 앞 뒤로 세 명씩 나뉘어 걸었다. 대리와 과장이 멀어질 때쯤 지혜와 정윤 사이에서 말없이 걷던 수화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점심은 이렇게 다 같이 먹어요?”
“유연근무는 몇 시 신청하셨어요?”
“연차는 몇 개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