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에서 수용의 도돌이표
"안녕!"
혜선과 도영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은영이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아"
"준희 친구구나?!"
"응!"
"반가워"
도영이 은영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혜선은 도영의 낯빛이 달라지자 웃기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안녕"
혜선도 이어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우와"
"꽃 너~무 예뻐"
"집주인은 아니지만 내가 받아도 될까?"
"그러엄"
은영은 꽃을 받아 들며 코를 대어 냄새를 맡았다.
"벌써 준비 다 된 거야?"
"도울 거 없어?"
도영이 그릴 쪽을 훑어보며 말을 건넸다.
"응!"
"준비는 다 해놨어"
"더 도울 건 없고"
"이제 먹으면 돼"
"케이크는 냉장고에 우선 넣어둘게"
준희가 케이크를 받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은영의 손짓에 혜선이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서고 도영은 불을 피우는 정현에게 다가갔다.
"꽃 담아둘 거 뭐 없어?"
은영이 두리번거리며 화병을 찾았다.
"유리병 하나 있을 거야."
"베란다 쪽에"
준희가 알려준 대로 은영은 베란다로 가 유리병 하나를 찾더니 욕실로 가 물을 담고 꽃을 꽂았다.
"춥지?"
"담요가 밖에 있기는 한데"
"밥 먹을 때 추울 텐데 핫팩이라도 더 줄까?"
"괜찮아, 따뜻하게 입었어"
"담요 덮으면 돼"
"그나저나 인테리어 따뜻하고 너무 좋다!"
"향기도 너무 좋아"
"고마워"
"종종 놀러와"
"그래도 돼?"
"오라면 진짜 와"
"진심이야~"
"은영이랑 같이 놀자"
"좋아"
준희는 혜선에게 가방은 편한데 두라고 얘기해 주었고, 그녀는 거실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은영은 정리한 꽃을 부엌 식탁에 올려 두었다.
"밥 먹고 여기서 케이크 먹자!"
은영이 꽃을 올린 후, 흐뭇한 얼굴로 준희와 혜선에게 제안했다. 준희와 혜선은 좋다며 맞장구쳤고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서는 도영과 정현이 고기 굽기에 한창이었다. 도영은 구워진 고기와 갖은 재료들을 잘라가며 접시에 올려 테이블 위에 올려주었고 혜선과 은영이 일인용 의자에 앉으며 담요를 덮었다.
"이제 같이 먹자"
준희도 자리를 잡으며 도영과 정현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정현은 테이블 쪽으로 다가와 준비해 둔 와인 하나를 따며 잔에 조금씩 담아 주었다.
"건배하자"
정현이 잔을 다 채우자 도영이 잔을 들며 건배를 유도했다.
"음, 뭐가 좋을까"
"정현이 네가 생각해봐"
"나?"
"오! 좋아 좋아!"
도영이 정현에게 건배사를 제안하자 은영이 맞장구를 쳤다.
"음.."
"그럼"
"이렇게 만나서 너무 좋고"
"내년에도, 앞으로도 잘 지내자"
"새해 복 많이 받아!"
"건배~~"
은영과 혜선이 정현의 건배사에 이어 와인잔을 테이블 중앙으로 갖다 대며 건배를 외쳤다. 그들은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연신 깔깔거렸다. 추운 바깥공기에 입에서는 입김이 계속 새어 나왔지만 추운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 광경을 눈에 담으려는 듯 정현의 눈망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정현은 눈치채지 못하도록 준희는 한 번씩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고기에 버섯과 갖은 재료들을 깨끗하게 다 비우고서 준희는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이제 안에 들어갈까?"
"들어가서 케이크랑 와인마저 마시는 거 어때?"
"그러자!"
"이제 좀 추워"
혜선이 목까지 덮고 있던 담요를 내리며 대답했다.
"그럼 들어가 있어"
"내가 이거 좀 치워둘게"
도영이 혜선과 준희, 은영을 보며 이야기했다.
"아냐"
"그대로 둬"
"내일 치우면 돼"
"이거 쓰레기만 치워줄게"
준희가 만류하자 도영이 테이블의 일회용 식기를 모으며 얘기했다.
"그럼 내가 쓰레기봉투 가져올게"
은영이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이거만 치워두고 마시자"
정현과 도영, 혜선, 준희가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은영이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나오자 도영이 그 안에 버릴 것들을 모두 넣었다. 정현은 바비큐에 사용된 식기들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고, 혜선과 준희가 먹던 와인잔을 들고 따라 들어갔다. 은영은 부엌으로 가 새 와인잔으로 테이블을 세팅하고 케이크를 꺼내 초를 꽂았다.
"초?"
"초도 있길래 그냥 꽂았어"
"사진 찍고 소원 빌자!"
준희가 초를 꽂는 은영을 보며 묻자 은영이 해맑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도영이 라이터를 꺼냈다.
"너 담배 펴?"
혜선이 도영의 라이터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 아니"
"이거 아까 낮에 클라이언트 미팅 갔다가"
"나도 모르게 이거도 같이 챙긴 거 있지"
"아~~"
"불 끌게~ 앉아~"
준희가 부엌 불을 끄고 도영, 정현, 혜선, 은영이 테이블 의자에 둘러앉자, 준희는 넷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담았다.
"같이 찍자"
혜선이 손짓하며 준희에게 얘기하자 준희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셀카모드로 바꿔 다섯 명의 모습을 담았다.
"이제 눈 감고 소원 빌어~!"
은영이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얘기했다. 그녀의 말을 따라 넷도 눈을 감고 각자의 소원을 빌었고 3초 정도 지났을까 바로 눈을 떴다.
"모여, 모여"
도영이 손짓하며 얘기하자 다 같이 초를 끄기 위해 몸을 가까이했다. 준희는 부엌 불을 다시 키고 자리로 돌아와 케이크를 다섯 조각으로 잘라 접시에 담아 가까이 밀어주었다.
"너도 러시안잭 좋아해?"
"집에서 종종 마셔"
"정현이도 러시안잭 좋아해"
"아 그랬어?"
"미안"
혜선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다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을 얘기한 것이 준희는 좋아하는 와인을 앞에 두고 마시지 못하는 정현에게 미안해했다.
"아"
"내가 괜히 얘기했다"
"아니야"
"나는 안 마셔도 돼"
"분위기 왜 이래"
"신경 쓰지 마"
"케이크 맛있어~"
정현이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고자 천연덕스럽게 얘기했다.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은영이 케이크를 먹으며 동조했다.
"딸기 케이크 좋아해?"
그런 은영을 보며 도영이 물었다.
"딸기 케이크 맛있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가 뭐야?"
"나?"
"응"
"나는"
"음..."
"아무래도"
"딸기 케이크!"
"ㅎㅎㅎ"
"도영아"
"뭐야?"
"딸기 케이크 가게라도 사 줄 기세네?"
혜선이 도영의 푸근한 미소에 그를 놀렸다. 둘의 장난에 분위기가 자연스레 전환되었다. 그들은 다시 사사로운 얘기들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며 정현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았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앞으로의 생이 아닌 현재였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은영은 약간 취기가 오른 듯 나른해지며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너희 술 잘 마시는구나?"
"이 정도는 마셔"
"은영이가 취한 거 같아"
"은영이는 약해"
준희가 묻자 혜선이 웃으며 은영의 어깨를 매만졌다.
"은영이는 집에 어떻게 가?"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잤었어"
"하루 더 자고 내일 가라지 뭐"
"도영이는 대리 부르자"
"정현이랑 나는 택시 타면 되고"
혜선이 도영에게 얘기하자 도영은 끄덕였다.
"다음에 또 놀자"
혜선이 준희에게 얘기했다. 그녀의 시선이 고맙다고 말한다는 것을 준희는 느낄 수 있었다. 순간 울컥했지만 눌러 담으며 끄덕였다. 처음 혜선을 보던 날,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마음을 오해할 뻔했을 순간이 있었지만 정현이를 같이 추억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이제 들어가"
"추운데"
"우리 갈게"
대문 앞에서 배웅하는 준희에게 혜선이 들어가라는 말을 건넸다.
"괜찮아"
"잘 가는지 봐야지"
도영은 대리 기사가 도착했지만 차키만 넘겨준 채 혜선과 정현의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함께 기다렸다. 대리 기사가 도착한 지 일분여 정도 뒤이어 혜선이 부른 택시가 도착했고, 그녀를 태웠다. 혜선은 뒷좌석에 올라타 창문을 내리고는 멀어질 때까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너도 이제 그만 가"
"기사님 기다리시는데"
정현이 도영에게 재촉했다.
"택시 오고 있어?"
"곧 잡히겠지"
"안 잡히면 내 차 타고 가자"
"기사님한테 얘기할게"
"잡혔다"
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현도 택시를 잡았다.
"어디봐"
"그러네"
"오분이면 오니까"
"그럼 난 가볼게~"
도영이 정현의 핸드폰을 보다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뒷문을 열어 차에 올라탔다. 준희도 그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잘가!"
준희는 양손을 뒤로 잡고 발 뒤꿈치를 들었다 내리며 반복했다. 정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마음속으로 말을 골랐다.
"모레 사진 찾으러 갈까?"
"모레?"
"응"
"왜 모레야?"
"내일은 부모님이랑 식사하기로 했어"
"아"
"그래!"
"몇시?"
"언제가 좋아?"
"음.. 두시나 세시?"
"음.."
"아무 때나 괜찮아!"
"어! 택시 왔다"
"그럼 시간은 그날 일어나서 알려줘"
"응!"
"조심히 가!"
정현이 그들 앞에 선 택시 문을 열며 준희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얼른 들어가"
"응!"
준희가 문을 닫고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정현은 택시에 올랐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정현은 마시지도 앉은 술에 취기가 오른 듯 몸에 열이 올라 창문을 내렸다. 빠르게 달리는 택시 속도에 밤바람이 창문 안으로 강하게 들어왔고, 정현은 시선을 멀리 던지며 바람을 온전히 맞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남을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생각에 매몰될수록 거부하고 싶은 운명에 한없이 비참해졌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떠났던 그에게 캘리포니아에서 맞이한 새 운명은 어쩌면 구원이자 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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