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으로 부족한 현실
준희와 정현은 근처 마트에 차를 세우고 장을 보았다. 파티를 위한 와인을 고르고 딸기와 치즈 그리고 같이 구울 버섯과 고기까지 담아 계산을 했다. 정현은 박스에 구매한 물건을 담아 양손으로 들었다.
"혜선이랑 도영이는 언제 오기로 했어?"
"아마 여섯시쯤 도착할 거야"
"처음 오는 건데 뭐 사 와야 할지 고민하더라고"
"에이"
"뭐 그런 걸"
"그래도 기분이지"
"기념으로 케이크나 사 오라고 했어"
"케이크?"
"좋아!"
"무슨 케이크 좋아해?"
"딸기 케이크?"
"생크림?"
"나는 초코케이크가 좋아"
"꾸덕~한"
"텔레파시가 통해야 할 텐데"
"아이"
"어떤 케이크면 어때"
"즐거우면 됐지"
정현이 뒷좌석에 박스를 싣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준희가 시동을 걸며 고민한 듯 말을 꺼냈다.
"내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는데"
"갈래?"
"아직 애들 오려면 시간도 있고"
"좋아"
"어디야?"
"동네인데"
"차는 집에 세워두고 가자"
"가까워"
"눈도 그쳤고"
준희는 집 앞에 차를 세우자 정현도 벨트를 풀었다. 차에서 내린 정현은 준희를 따라 걸었다. 살짝 앞서 걷던 준희가 고개를 살짝 돌려 정현을 보며 웃었다. 그 모습에 정현의 입꼬리도 절로 올라갔다. 주택가 사이에 주민들만 알 법한 작은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외관에 간판 없이 창가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직원의 모습만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테이블 두 개에 바 자리 하나 있는 협소한 카페였다. 사장인지 직원인지 모를 히피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성이 계산대 앞에서 준희와 정현의 주문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시는 거 같네요"
"여행 갔었어요"
단골임을 증명하듯이 준희와 카페 직원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뭐 마실래?"
"너는 평소에 뭐 마셔?"
"나는 카푸치노"
"여기 카푸치노 잘하셔"
"그럼 나도 카푸치노 마셔볼게"
"카푸치노 두 잔이요"
준희와 정현은 주문대가 가려진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따뜻한 카페 온도에 겉옷을 벗고 정리하던 참에 커피가 준비되었다. 정현은 일어나 커피를 가져와 앉았다.
"수척해진 거 같아"
준희의 말에 정현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볼을 매만졌다.
"보여?"
"좀 어때?"
"진통제가 이제 말을 잘 안 들어"
"..."
"다음 주에 입원할까 해"
"...!"
"그 정도야?"
"부모님도 걱정하시고"
"혼자 있는 것보다 지금은 그게 나을 거 같아"
".."
"입원하기 전에 그 사진 찾으러 같이 가자"
"아 맞다"
"응"
사진 얘기에 준희는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떨어질까 애써 웃긴 생각을 하기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현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먼저 말을 꺼냈다.
"좋았는데"
"응?"
"캘리포니아에서"
"어떻게 널 만나게 됐을까"
".."
'더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
"...."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응.."
정현의 얼굴을 바로 보며 준희의 눈이 다시 글썽거렸다.
"나 지금도 이거하고 있다?"
준희가 목소리 톤을 올리며 장난스럽게 목에서 서핑보드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너는?"
"나는 없어"
"응?"
"뭐?"
"너무해!"
정현의 속을 알리 없는 준희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진짜 없어?"
"어디 뒀는데?"
"다른데 뒀어"
머리를 긁적이며 정현이 머쓱하게 얼버무렸다.
"허?"
준희의 투정이 귀여운 정현이 혀 끝을 이로 물고 입술에 대며 웃었다.
"웃지마"
"어이없다 너"
"나도 버릴 거야"
"난 버린 거 아냐"
"됐어!"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
"진짜 그런 거 아닌데"
".."
"더 소중하게 뒀어"
준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커피잔을 비운 준희가 정현에게 슬슬 일어나자는 얘기를 했다. 겉옷을 다시 챙겨 입고 정현과 준희는 카페를 나섰다. 잠시 문 앞에 나란히 서 차가운 공기 속에 입김을 내보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마주치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준희의 집 방향으로 천천히 걸으며 사사로운 얘기로 웃음을 지었다. 준희가 앞으로 걷다 뒤돌아 정현을 보며 뒷걸음질할 때면 긴 머리가 함께 휘날렸다. 손이 시린 지 준희는 겉옷에 양손을 넣고는 큰 보폭으로 걸었다.
"빨리 와"
"먼저 간다?"
정현은 그런 준희를 따라 속도를 냈다. 깔깔거리며 준희의 집에 들어서자 은영이 반겼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안녕, 정현아"
"안녕"
"쉬고 있었어?"
"응, 딩가딩가 쉬었지"
"근데 장 봐온 거 아니었어?"
"아!"
"아, 내가 가져올게"
"차 키는?"
준희가 정현에게 키를 건네주었고 정현은 뒷좌석에 실어둔 박스를 가지러 갔다. 그새 은영은 준희에게 무얼 했는지 물었고 준희는 카페에 들른 얘기를 해주었다.
"여기 두면 돼?"
정현이 박스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응응"
"뭐부터 할까?"
"숯부터 넣어둘까?"
"내가 할게"
"그럼 우리가 딸기랑 재료 좀 준비하고 있을게"
정현은 숯을 들고 마당으로 갔고, 준희와 은영이 박스에서 딸기와 갖은 재료들을 꺼내 포장을 뜯었다.
"정현이 친구들은 여섯시쯤 도착할 거야"
"그래? 곧 오겠네"
"떨려!"
"다들 착해"
정현이 숯을 세팅해 두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왔다.
"뭐 도와줄까"
"음, 이거 세팅하자"
"불도 피워야 하고"
"장갑도 꺼내올게!"
정현은 종이컵과 쌈장, 고기 재료들을 들고 마당으로 갔다. 준희는 고기를 구울 때 추울까 두꺼운 장갑을 꺼내왔다. 은영도 옷을 두껍게 챙겨 입고서는 담요를 챙겨 마당으로 따라나섰다. 바비큐 그릴 옆에는 기다란 원목 테이블 하나에 세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원목 의자 그리고 등받이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은영은 담요 두 개를 긴 의자에 두고 등받이 의자에 하나씩 올려두었다. 각자 세팅을 마치고 불을 먼저 피워둘까 하던 참에 혜선과 도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착했어?"
"잠깐만"
"혜선이랑 도영이야"
"어 그래?!"
"여기~~!"
정현이 준희에게 얘기하던 중 문 밖에서 도영의 외침이 들렸다. 준희가 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어서와!"
"와, 이게 다 뭐야"
"빈 손으로 올 수 있나"
도영이 케이크와 와인을 들어 보였다. 그 옆에 혜선이 하얀 목화와 붉은 꽃들이 어우러진 꽃다발 한아름을 들고 있었다.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