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씩 생기는 저녁놀을 감상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하고도 이틀째 되는 날, 드디어 기다리던 이름이 내 휴대폰의 액정에 반짝 새겨진다.
“어, 병린아.”
“매형, 통화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아.”
“알아냈어요. 소울이의 아이디로 접속한 녀석의 아이피 주소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정말? 잘됐네.”
“마침 제 대학 후배가 그 게임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요. 비공식 수사상 필요하다고 둘러대서 겨우 알아냈어요.”
“그래, 어떤 녀석이야?”
“그건 아직 몰라요. 제가 받은 건 녀석의 아이피 주소뿐이니까요. 이제부터 제가 알아내야죠.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부터 시간이 날 때 매형이 게임에 접속해 있다가 녀석이 로그인 하면 곧바로 제게 알려주세요. 접속 위치를 추적해볼 테니까요.”
“아! 처남이 직접 하는 거구나.”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그런 녀석들은 공용 아이피 주소를 사용하는 라우터를 통해 접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만약 그렇다면 거기에 기록된 로그를 분석해 접속 시간, 접속한 웹사이트 등을 확인해야만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 있어요. 음, 간단히 말해서 지금은 대략의 위치만 알 뿐이지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이상 실제 사용자의 정확한 정체를 밝혀내기 좀 힘들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게임회사의 후배에게 소울이 아이디로 접속하는 사람의 행태를 좀 주시해달라고 부탁해놓았으니 앞으로 단서가 될 만한 게 나올 수도 있어요.”
“알았어. 내가 수시로 보고 있다가 접속하면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단풍이야기에 접속한다. 보라매날다가 온라인 친구찾기 메뉴에 나타난 건 저녁 8시경이다. 나는 처남에게 곧바로 전화해 그 사실을 알린다. 그로부터 3분쯤 지난 후 처남에게 연락이 온다.
“지금 녀석이 접속한 위치는 바로 매형 아파트 근처예요.”
“정말?”
내 예상이 맞다. 소울이를 그처럼 잘 알고 있는 녀석이라면 분명 같은 동네에 사는 소울이의 친한 친구일 가능성이 높다.
“매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반경 1킬로미터 내에 있는 것으로 나와요. 아이피 주소의 앞 숫자가 공유기를 이용하는 장소로 확인되니, 제 예상대로 피시방에서 접속한 것 같아요.”
“그럼 이 근처 피시방을 뒤져보면 되는 거야?”
“매형, 조심하셔야 되요. 요즘은 정보보호법이니 뭐니 해서 복잡하니 혹시 누구인지 알아내도 모르는 척하고 그냥 얼굴만 확인하세요.”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제가 현장에 동행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건 잘 아시죠?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까지 해드리는 건 소울이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진짜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예요. 혹시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잘 알고 있지. 고마워, 내가 또 연락할게.”
처남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포털사이트의 지도에다 우리 아파트를 중심으로 반경 1킬로미터의 원을 그린 다음 피시방을 검색한다. 지도에 표시된 피시방의 개수를 헤아려 보니 15개나 된다.
약 한 시간 정도만 게임을 하다 로그아웃 하는 녀석의 특성을 감안할 때 그 많은 피시방을 일일이 찾아보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범위를 좀 더 좁히기로 한다. 우리 아파트 남쪽의 대로변 건너편은 행정구역이 달라서 소울이를 비롯해 이 동네 아이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이다. 나는 일단 그곳에 있는 피시방을 제외한다.
남은 피시방은 8개. 거기서 같은 구이지만 행정동이 다른 지역에 위치한 피시방을 다시 제외시키고 나니 세 곳이 남는다. 나는 그곳의 위치와 피시방 이름이 표시된 모니터 화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 패딩 점퍼만 걸친 채 집을 나선다.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도보 5분 거리의 피시방이다. 나는 뛰다시피 해 거의 3분 만에 지하층에 있는 피시방의 문을 연다. 투명 칸막이 사이로 줄지어 늘어선 모니터 앞마다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앉아 있다. 늦은 저녁 식사 시간이어선지 게임을 하며 라면을 먹는 아이들도 여럿 보인다.
자리를 찾는 척하며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모니터를 다 둘러보지만, 단풍이야기의 화면은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피시방은 전철역 근처에 있는 곳으로서 도보 2분 정도의 거리다. 건물 3층에 위치한 피시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가 모니터들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게임을 하다가 황급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계단을 이용해서 내려갔는지 그새 보이지 않는다. 1층에 멈춰 있는 엘리베이터 대신 나도 계단을 뛰어 내려가 건물 밖으로 빠져 나온다. 혹시 그 녀석이 내 얼굴을 알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나는 바로 그 건물 1층에 위치한 분식집 안의 키오스크 앞에 서 있는 녀석을 발견한다. 나도 분식집 안으로 들어가 녀석의 바로 뒤에 줄을 선다. 녀석은 키오스크에서 치즈돈까스 하나를 주문한 뒤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아무리 살펴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키오스크 앞에 서서 자신을 힐끗거리는 내 모습이 수상했는지 녀석도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곧 시선을 돌린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눈치다.
나는 다시 3층의 피시방으로 올라가 내가 미처 체크하지 못한 자리의 모니터 화면들을 살펴본다. 바로 그때 맨 안쪽의 구석자리에서 ‘단풍이야기’ 화면이 보인다.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는 중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앳된 모습이다.
나는 뒤로 다가가 슬며시 모니터 화면 속의 캐릭터를 확인한다. 그러나 게임 속 장소나 캐릭터 모습, 그리고 데리고 있는 펫도 모두 보라매날다가 아님이 확실해 보인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8시 48분. 보라매날다의 평소 습관대로라면 이제 남은 시간은 약 12분밖에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은 피시방은 쇼핑센터 근처로, 이곳에서 도보로 약 10분이 걸리는 곳이다. 그곳의 모니터 화면을 모두 확인하려면 택시를 탈 수밖에 없다.
5분 만에 마지막 피시방에 도착해 모니터들을 일일이 확인하던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춘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울이와 가장 친한 친구인 지훈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로 진학해서 소울이와 항상 붙어 다니곤 했다. 길거리에서 따로 마주쳐도 인사를 할 만큼 지훈이도 나를 잘 알고 있다.
“지훈아”
이름을 부르자 지훈이는 화들짝 놀라 뒤돌아본다.
“아, 안녕하세요.”
지훈이는 앉은 채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아……, 네.”
지훈이가 어색하게 대답한다. 지훈이 자리의 모니터를 슬쩍 확인하니 ‘단풍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하다 해도 이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 순간적이나마 지훈이를 의심한 나를 자책한다.
“학교 잘 다니지. 게임 계속해. 아저씨는 갈게.”
무슨 잘못을 저지르다 들키기라도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훈이의 시선을 뒤로 한 채 피시방을 나온다. 비가 약간 내린 뒤여서 그런지 3월 말인데도 날씨가 꽤 쌀쌀하다. 평소보다 한적한 거리를 나는 잰걸음으로 걸어 집으로 향한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새 절전모드로 전환돼 깜깜해진 컴퓨터 모니터를 깨우기 위해 키보드의 엔터키를 연이어 두드린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모니터의 화면이 밝아지면서 단풍이야기의 배경음악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지금 시각은 9시 10분. 예상대로 보라매날다는 이미 로그아웃한 상태다. 갑자기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소울이의 아이디를 훔친 가짜 보라매날다의 정체를 밝히는 일 말이다. 소울이는 이미 떠나가고 없는데, 그 게임 캐릭터를 대신 사용하고 있는 아이의 정체를 밝혀서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건가.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소울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게임 캐릭터를 이용해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를 잡아서 뭘 어쩌겠는가. 어쩌면 이 아이는 오히려 내게 위안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울이 대신 보라매날다를 보는 즐거움, 매일 보라매날다를 기다리는 기쁨, 보라매날다가 게임에서 나가버린 후에 느끼는 안타까움까지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에겐 선물이다. 나는 보라매날다의 정체를 추적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단단히 마음먹은 그 결심은 다음날 오후에 걸려온 처남의 전화를 받으면서 서서히 허물어진다.
“매형, 알고 보니 그 녀석이 보통내기가 아닌데요. 속된 말로 아주 선수네요, 선수.”
“그게 무슨 말이야?”
“이 녀석이 단풍이야기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아이피 주소가 아주 전국적, 아니 국제적이더라고요. 어제 밤에 알려준 매형 아파트 근처는 그때만 사용한 것이고 다른 날은 판교, 춘천 등의 지방에서 접속했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미국이나 인도의 서버를 사용한 적도 있고요. 그냥 동네의 평범한 아이들 수준이 아니에요.”
나는 순간 멍해진다. 그 같은 전문 해커가 왜 우리 소울이의 아이디를 사용하는 걸까. 소울이가 초등학생 때 즐겨했던 그 게임과 전문 해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점이 있어요. 단풍이야기도 요즘 불법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애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나 봐요. 그래서 제 후배가 소울이의 아이디를 훔친 녀석에 대해 모니터링을 했대요.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이 봇인지 사람인지 알아내는 방법으로 역튜링테스트란 게 있는데, 질문을 해서 얼마나 사람다운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는 거죠. 그런데 소울이의 캐릭터인 보라매날다는 사람이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판별되었다는 거예요. 운영진이 나타나 말을 걸면 보통의 해커들은 즉각 로그아웃 해버리지만, 보라매날다는 그러지도 않았대요.”
처남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접속 행태를 보면 평범한 아이가 아닌 전문적인 블랙해커의 솜씨다. 그런데 봇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보라매날다를 조종하고 있다. 여기서 봇이란 로봇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사람 대신 게임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전문 해커라면 소울이의 게임 캐릭터를 훔칠 이유가 없다. 또한 봇을 이용한 매크로 사냥도 하지 않고 금전적 이득도 없이 그냥 소울이의 아이디로 게임을 즐긴다?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매형, 그런데 이 녀석이 게임을 하며 모으는 아이템들이 또 걸작이에요. 제 후배가 보라매날다의 아이템 저장 창고를 확인했더니 다이아몬드, 드래곤의 영혼, 오래된 영혼 등의 아이템만 가득 차 있었대요. 그 아이템들은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만렙 캐릭터를 되살릴 수 있는 것들인데, 그 이벤트는 이미 끝났다는 거예요. 즉, 이미 종료된 이벤트를 위해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거죠. 아, 만렙이란 이 게임에서 올라갈 수 있는 최대치의 레벨에 도달한 걸 뜻해요.”
솜씨가 뛰어난 전문 해커가 이미 종료된 이벤트를 위해 소울이의 캐릭터를 훔쳐 자신이 직접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다? 처남은 자신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거 참!’이란 감탄사만 연이어 내뱉는다.
“제 후배는 이게 새로운 유형의 해킹일 수도 있다며 계속 지켜보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매형은 너무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요. 소울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 같으니까요.”
처남은 내가 허탕 친 걸 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어젯밤의 피시방 추적 건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통화를 마친다.
휴대폰 상단의 스피커로부터 울려 나오던 처남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집 안은 또 다시 적막감에 휩싸인다. 여기서 살아 있는 생명체라곤 나와 달달이뿐이다. 사육통의 천장에 들러붙은 채 꼼짝도 않고 있는 달달이를 보고 있으니,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창밖의 풍경과는 달리 우리 집 안의 모든 것들은 마치 정지 화면처럼 멈춰 있는 것만 같다.
정적을 깨트린 건 주방 쪽 세탁실의 전기세탁기가 내는 세탁 종료 알림음이다. 그제야 할 일을 찾기라도 한 듯 나는 세탁기 안의 빨래들을 가져와 안방 베란다의 건조대에 하나하나씩 넌다. 바로 그때 빨래 속에 소울이의 양말 한 짝이 들어 있는 게 보인다.
소울이가 떠난 뒤 이게 첫 빨래는 아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그것도 양말 한 켤레가 아닌 한 짝만 내 빨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걸까. 그것도 엄지발가락 부분이 구멍 난 채로…….
그 양말을 건조대에 널려고 집어 드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쏟아낸다. 소울이의 장례식장에서도, 소울이가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입관식에서도, 그리고 소울이의 관을 집어 삼킨 채 활활 타오르던 화장장의 화장로 안을 보고 있으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과 울음이 왜 이제야 터져 나오는 걸까. 나는 소울이의 구멍 난 양말 한 짝을 손에 쥔 채 한참을 울었다.
그날 저녁, 단풍이야기에 들어가 보니 보라매날다도 접속해 있다. 습관적으로 나는 보라매날다의 현재 위치부터 확인한다. 보라매날다가 있는 장소는 ‘고통의 미궁’이란 곳이다. 바로 그때 게임 화면 왼쪽 아래편의 대화창에 누군가 내게로 보내온 메모 내용이 떠 있는 게 보인다.
보낸 이는 보라매날다다. 한 번도 나를 아는 체 하지 않았던, 아니 나만 보면 도망치기 바빴던 보라매날다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 내용은 나를 더 놀라게 한다.
‘연빈이가 깨어난다면 박제된 사랑도 다시 시작되겠죠?’
보라매날다가 보내온 아리송한 메시지 내용은 나도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문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