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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Oct 15. 2024

영혼이 동결된 박제사

연빈이는 나의 아내이자 소울이의 엄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가장 기뻐하는 모습이나 가장 슬픈 모습부터 떠올리곤 한다.

 

연빈이가 가장 기뻐한 것은 박제 및 표본 제작공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을 때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그 시험에 합격하면 천연기념동물에 대한 박제가 허락된다. 자연사박물관이나 동물원 같은 공공기관의 박제사가 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자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 내 아내는 박제사다.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박물관의 전시기획자로 일하던 연빈이는 어느 날 돌연 박제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와 결혼한 지 2년째 되던 해다.

 

소울이를 낳기 전이라 박제사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그녀의 때늦은 도전을 말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런던자연사박물관의 박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영국 리딩대학의 박제학 과정까지 수료한 연빈이가 한국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이 바로 그 자격증 시험이다.


필기와 실기로 나뉘어 매년 한 번씩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그 시험은 합격자가 1년에 한두 명 나올 정도로 어렵다. 두 번이나 낙방한 끝에 합격해서인지 연빈이는 자격증 취득에 성공한 후 그 어느 때보다 기뻐했다.

 

예전의 박물관 근무 경력과 박제의 기원국인 영국에서의 유학, 그리고 자격증 취득 덕분이었는지 연빈이는 자연사박물관의 박제사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연빈이를 통해 알게 된 동물의 박제 과정은 평소 내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달랐다. 흔히 박제라고 하면 뼈와 이빨, 가죽 등 해당 동물의 신체 모두를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뼈 대신 마네킹을, 안구는 유리로 만든 의안을, 이빨은 치과에서 하듯이 본을 떠서 따로 제작해 사용한다.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그 동물의 가죽과 발톱, 수염 정도다. 따라서 박제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가죽을 벗겨서 보존 처리하는 과정이다. 가죽이 손상되지 않게끔 잘 벗겨서 남은 살점을 제거한 다음 소금으로 방부 처리를 하고 화학약품 등으로 오랫동안 보존되도록 하는 작업이다.

 

각각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가죽을 벗겨 살과 내장을 떼어내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칼을 다루는 솜씨다. 때문에 흔히 박제를 칼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아내는 붓 대신 칼을 잡은 셈이다.

 

박제 작업에 정해진 규칙이나 방법은 없지만, 아내는 특히 표본으로 만들려는 동물의 습성과 생태 환경에 대한 공부를 중요시했다. 아내가 하는 박제 작업의 대부분은 디오라마로 만들기 때문이다. 디오라마란 나무나 바위, 연못 등을 이용해 해당 동물이 살던 서식 환경을 그대로 재연한 다음 박제된 동물을 역동적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자세로 연출하는 기법이다.

 

“나는 그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좋았고 가장 활기찼던 모습을 재연해주고 싶어. 그래야 그들의 영혼이 거기로 찾아와 편안히 쉴 수 있을 테니까.”


아내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영혼을 동결시키는 작업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따지고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체를 미라로 만든 것도 영혼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거기에 안주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제도 동물의 영생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에든버러의 박물관에 있는 돌리 말이야.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아내가 가장 거부감을 보인 박제는 바로 영국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복제 양 돌리다.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복제된 세계 최초의 포유동물로서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할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돌리는 죽은 후 박제가 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여섯 살짜리 핀란드산 도싯 양의 유방에서 떼어낸 체세포를 세포핵이 제거된 277개의 난자에 주입해서 29개의 배아를 얻은 다음, 그중 13개를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한 결과 단 하나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 돌리다.


출생 당시 6LL3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린 돌리의 일생은 그야말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삶이었다. 시험관과 씨 없는 난자, 대리모의 자궁을 옮겨 다니며 인간의 관리 하에 생명을 얻은 돌리는 평생을 실험실의 투명한 유리 우리 안에서 살았다.

 

심지어는 그가 낳은 네 마리의 새끼마저 복제 양도 정상적인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루어진 실험의 일부였다. 그처럼 많은 실험과 관찰 속에서 돌리가 얻은 것은 자연 환경에서 태어나고 안락한 우리에서 살았던 다른 사육 양보다 훨씬 일찍 찾아온 죽음이었다.


돌리의 사인으로 알려진 진행성 폐질환은 실험실 환경에서 생활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죽음조차 인간의 선택으로 행해졌다. 돌리를 힘들게 탄생시킨 연구진은 심각한 폐질환이 나타나자 안락사시켰다. 이후 돌리는 박제가 된 채 박물관의 유리장 안으로 들어가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일생을 인간을 위해 살았던 돌리가 죽은 후에도 박제품으로 남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박제되어 있는 환경이었다. 돌리의 박제가 있는 박물관은 체험형 구조여서 다른 전시물들은 그대로 전시되어 있지만 유독 돌리만 유리장 속에 들어 있다. 심지어 그 유리장은 돌리의 다각적인 모습을 관람객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자동으로 빙글빙글 돌게 만들어져 있다.


유리장 안에 조성된 환경도 아내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 몇 개뿐이었으니까. 양이 살아야 하는 생태 환경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돌리가 평생을 보냈던 실험실 환경을 재현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 갖고서야 돌리의 영혼이 찾아오겠어? 아마 찾아오고 싶어도 거기가 너무 싫어서 오지 않을걸.”


아내는 죽은 후에라도 돌리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디오라마 환경으로 전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풀과 나무가 있고 바위와 물이 있는 자연 그대로의 환경 속에서 양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모습으로 말이다.

 

아내가 너무 진지해 보여 나는 괜히 딴죽을 걸었다. 생전에 살았던 환경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면 오히려 돌리의 영혼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농담 섞인 나의 말에도 아내는 여전히 진지했다.


“돌리는 어미 체세포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복제되었으니 영혼도 어미와 똑같을 거 아냐. 그러니 어미가 살았던 환경처럼 재현해 놓으면 영혼이 불편할 리가 있겠어?”


아내가 거기까지 생각한 줄은 미처 몰랐다. 아내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우선 돌리의 경우 어미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 유전학적 어미와 발생학적 어미, 그리고 임상학적 어미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돌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어미는 핀란드가 원산지인 핀쉬프 품종과 가장 오래된 양 품종의 하나인 도싯 품종을 교배한 핀란드 도싯이다.

 

주로 육류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도싯은 일 년 내내 새끼를 낳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보통의 양 품종은 가을에만 짝짓기를 하고 봄에 새끼를 낳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다산아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핀쉬프는 교배 프로그램에 자주 사용되는 품종이다. 연구진이 돌리의 유전학적 어미로 핀란드 도싯을 선택한 이유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핀란드 도싯의 유방에서 채취한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자신의 난자에 품어서 배아를 만든 발생학적 어미, 그리고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며 자궁을 제공해준 임상학적 어미는 모두 스코틀랜드산 블랙페이스 품종이다.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에 서식하는 이 품종은 이름처럼 얼굴이 검은 털로 뒤덮여 있는데, 털이 길고 광택이 있어서 양모 생산에 적합하다. 극한의 지형에서 서식하므로 어린 새끼를 잘 돌보는 모성 본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이 이처럼 다른 품종의 어미를 이용한 까닭은 그 품종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에서 태어난 돌리의 정확한 유전학적 친모를 가려내기 위함이었다. 만약 난자와 자궁을 제공한 어미를 닮아서 얼굴에 까만 털이 있다면 복제에 실패했다는 첫 번째 증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돌리는 연구진의 의도대로 체세포만을 제공한 유전학적 어미와 똑같이 하얀 얼굴로 태어났다.


그런데 얼굴이 하얗다고 해서 아내의 생각처럼 유전학적 어미와 돌리의 유전자가 100퍼센트 일치한 것은 아니다.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결합시키면 미토콘드리아 DNA는 유전학적 어미가 아닌, 난자를 제공한 발생학적 어미의 것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체세포보다 난자에 훨씬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돌리의 경우에도 세포 DNA 중 1퍼센트를 차지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는 유전학적 어미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하나의 수정란이 나뉘어져 두 명이 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도 모두 유전자가 100퍼센트 일치하지는 않는다. 수정 후 초기 배아 단계에서 한 세포주에서는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다른 세포주에서는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 같은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아 100퍼센트 똑같은 유전자로 태어난다고 해도 일란성 쌍둥이는 성장하면서 유전자가 약간씩 변할 수 있다. 생활 방식이나 성장 환경이 다르면 특정 유전자의 활동을 변화시키는 후성유전체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세포를 이용해 그대로 복제했다고 해도 다른 어미들의 난자와 자궁을 빌려서 태어난 돌리는 유전학적 어미와 유전자가 100퍼센트 일치하지 않으니 영혼이 똑같을 수도 없다. 아니, 유전자가 100퍼센트 일치해도 영혼마저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 영혼은 그렇다고 해. 근데 박물관에 전시된 돌리를 보는 순간 떠오른 사람 때문에 나는 더 화가 났어.”


“박제된 양을 보고 사람이 생각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돌리와 비슷한 삶을 살다가 마지막엔 돌리처럼 박제된 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여인이 있거든.”


“사람을 박제해서 전시했다고? 설마…….”


“남아프리카에서 코이산족으로 태어난 사라 바트만이란 여인이야. 영국으로 끌려가 쇼걸로 무대에 서야 했던 그녀는 프랑스 해부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지. 그러다 죽은 후 뇌와 생식기는 포르말린이 담긴 유리병에 들어가고 겉모습은 박제가 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었어.”


아내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해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사라 바트만은 강가에서 약혼식을 하던 중 백인의 습격으로 아버지와 약혼자를 잃은 후 케이프타운으로 끌려가 하인이 되었다.

 

그러다 주인과 함께 영국으로 가서 전국을 돌며 관객들의 색다른 욕망을 자극하는 쇼걸로 무대에 섰으며, 프랑스의 박제사에게 팔려 가서는 역시 옷을 벗은 채 해부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야 했다. 결국 과로에 지쳐 숨을 거두자 박제사는 그녀를 박제로 만들어 1985년까지 파리의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해 관람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했다.


이후 박물관 수장고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사라 바트만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의 노력으로 고향에 돌아가 국장으로 장례식 절차를 거친 후 사망한 지 187년 만에 매장되었다.

 

“아마 사라의 영혼은 지금도 편치 않을 거야. 남아공 정부는 그녀를 국모처럼 대접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창녀라고 수군대거든.”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내내 아내의 표정은 슬펐다. 하지만 그게 아내의 가장 슬픈 모습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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