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쁨이의 단풍일지

1

by Joy Nov 19. 2024

오늘도 눈을 뜨면 보이는 색다른 풍경, 밖에 나가면 들리는 다양한 언어, 나는 캐나다에 있다.

어렸을 땐 막연히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외국에 살 수 있던 기회는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다른 우선순위가 생겼었고 그렇게 미루기만 했던 나의 오랜 소망이었다. 그게 이렇게 갑자기 이뤄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의 캐나다 워홀 생활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내 기억은 더 늦기 전에 이 글에 남기고 싶어졌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게 다 지치고 힘들어서 휴식이 필요한 나날들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날아오는 상사의 말도 안 되는 트집과 폭언들, 평소였으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던 일들이지만 그날은 유독 그냥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바로 상사에게 내 의견을 쏟아냈고 당연하게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고 휴게실로 도망갔다. 당시 나는 내 일에 대한 회의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며칠 전에 본 워홀 모집공고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노트북을 켜고 워홀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하나씩 채워지는 신청서를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워홀을 하고 있는 내 모습도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작성하니 모든 칸이 채워져 있었다. 신청서를 작성할 때만 해도 '아 설마 이게 되겠어?'라는 생각도 있었다. 캐나다 워홀은 운이 좋아야 바로 당첨될 수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주 후 나는 워홀을 준비하고 있었다.

워홀을 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갈수만 있게 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티를 내지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워홀에 대한 생각은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결정해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는데 걱정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내가 워홀을 가겠다고 선택한 건 오기였을 수도 있다. 그때 당시 부모님도 만나던 사람도 내 결정을 응원해주지 않았었다. 물론 너무 급작스러운 결정이었고 진행 속도가 빨랐던 만큼 모두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나는 겁이 많았고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필요한 시기였다. 부정적인 말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걱정이 많아졌지만 이상한 오기가 생겨버렸다. 원래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고 싶고 가지지 못하는 것이 더 탐나는 법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들 나를 응원만 해줬더라면 조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워홀에 대한 가치를 오랜 시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나는 가기러 결정했다.

간다고 마음을 먹은 후에는 꽤나 부지런히 움직였어야 했다. 워홀은 준비할 게 많았고 그 당시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마무리 단계여서 시간이 부족한 상태였다. 나는 워홀도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내서 틈틈이 준비한 결과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워홀 준비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찰나였다. 워홀을 간다면 퇴사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회사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민 끝에 나는 생각한 것보다 이른 퇴사를 결정했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캐나다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볼 수 있었고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캐나다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 나에겐 마지막 시험이 남아있었다.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다. 세상이 내 워홀을 반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거절하기에 너무 좋은 기회였고 많이 흔들렸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워홀에 대한 의지가 컸고, 다시 이런 용기를 낼 자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다음 주면 캐나다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캐나다로 떠나는 날이 되었고 공항으로 가는 기분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설레고 기대감에 가득할 것 같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짐이 너무 많고 무거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고 비행기가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어떤 새로운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기나긴 비행 끝에 드디어 캐나다에 도착했다. 밖으로 나가니 차가운 공기가 나를 반겼다. 이 차가운 공기마저도 나를 설레게 했다. 도착하자마자 캐나다에 살고 있는 지인이 나를 마중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짐이 많아 불편한 나를 배려해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지인과 함께 집으로 가서 짐만 놓고 바로 나와 밥을 먹으러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캐나다에서 처음 먹은 음식은 한식이었다. 같은 한식이지만 캐나다에서 먹으니 느낌부터가 달랐다. 괜히 더 맛있는 기분이 들었다. 밥을 먹은 후에 시내를 둘러보러 갔다.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는 한국어가 아닌 다양한 언어,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거리, 모든 것이 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시내를 둘러보면서 정말 캐나다에 도착했다는 게 실감 났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모르지만 나의 캐나다 생활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