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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

by 다니니

살아가며 생기는 작은 일 하나에서도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 일상에서 배운 것은 바로 "속도"이다.


나는 폐활량이 좋지 않아 달리기를 잘 하진 못한다. 단거리는 좀 하는 편이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특히 좋아하지 않는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달리기. "달려라 부론"이라는 좋은 취지의 모임을 지난겨울에 시작했었다. 처음 목표는 2.5km인가 3km였을 것이다. 처음이라 거리를 짧게 잡았지만 막상 달려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은 거리였다. 안 쉬고 한 번에 완주를 하고 나서는 엄청난 성취감을 느껴 꾸준히 운동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주를 한번 하고 나니 톡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자분들도 최소 3km 이상은 달리고 남자들은 기본 5km 시작에 8km 이상을 달리고 평균 속도 기록도 굉장히 좋았다. 갑자기 왜 승부욕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기록을 단축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운동하는 시간대도 불규칙적인데 장소도 가리지 않고 이상한 승부욕에 꽂혀 달리기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2개월 만에 몸에 이상이 생겨버렸다. 기침이 계속 나기 시작한 것이다. 감기인 줄 알고 엄한 약만 계속 먹었는데 한 달이 넘도록 멈추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식도염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생각 없이 밥 먹고 그렇게 뛰어댔으니 식도염이 재발하는 게 당연하다. 속이 안 좋아도 이 악물고 뛰었는데.. 그렇게 2개월 만에 달리기는 중단되었다.


2~3개월을 쉬고 다시 시작한 운동은 달리기가 아닌 걷기였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해서 3km는 전혀 부담되지 않게 운동을 하였다. 걷기였지만 목표를 잡고 하나씩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성취감은 보너스였다. 그러다 용기가 났는지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기록에 집착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컨디션에 맞춰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렸다.


땅에 닿는 발의 촉감이 느껴지고

호흡하는 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힘을 주지 않아도 흔들리는 팔은

마치 춤을 추듯 리듬을 타고 있었다.


"어라. 이건 무슨 느낌이지?" 꽤나 좋은 기분이었다. 내 몸과 더 친해지고 교감되는 것 같았다.


숨이 가빠지면 다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래도 힘이 들면 잠시 걸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주 천천히 숨을 고르고 나서 다시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마치 내 몸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힘들면 다독여주고 다시 힘이 나면 파이팅을 외쳐주는 느낌이었다.


조금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40년을 살면서도 나는 내 몸과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친하게 지낼 노력을 안 한 것인지 방법을 몰랐던 것 일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삶이라는 길에서 달리다 의지가 약해지면 더 혹사하고 다그쳐서라도 어떻게든 상황을 몰아붙이며 결과를 이뤄내려 했었다. "속도"를 맞춰주지 않았다. 숨이 차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그냥 계속 달리게 했다. 지쳐서 포기하면 나는 그런 나를 두고 그냥 내 갈 길을 갔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일까?


"앞으론 내가 더 잘할게"


"나 내 몸과 친구가 된 거 같은데."


걷고 천천히 달리며 "속도"를 맞춰 함께 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즐거웠다. 음악을 듣지 않고 오디오북도 듣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음악을 들을 땐 2배로 즐거웠고, 오디오북을 들으면 대화를 할 정도의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집착을 버리고 "속도"에 집중했다.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나만의 속도이다.



"속도"는 달리기 뿐만이 아닌 우리의 삶에서 항상 함께하는 존재일 것이다. 자신의 속도를 잘 아는 사람만이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지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의 속도를 의식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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