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소파에 앉아있는 시각은 4시 10분이지만 내 머릿속은 어제 낮 12시에 만나서 한 지인과의 대화를 곱씹고 있고 잠시 뒤엔 일 년 전에 한 치과 예약에 맞춰 나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어제 12시에 가 있고 몸은 일 년 전 내 결정을 따르고 있는 것.
살면서 오롯이 현재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현재는 얼마나 될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과거 선택으로 산 것이고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과거에 살기로 약속한 사람이고 수년 전 쓰려고 산 그릇에 밥을 담아서 식사한다. 지금 내 취향은 좀 더 화려한 식기에 끌리지만 수년 전에 산 아주 단조로운 식기가 멀쩡한 관계로 그 식기에 음식을 담는다.
그러고 보면 과거 선택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면 경제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관계적으로든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아마 하루 일상 중 거의 80퍼센트 이상이 과거에 한 내 약속, 내 말을 지키려고 현재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삐딱해지기로 작정한 뒤였을 것 같다. ) 난 약속이란 걸 가능하면 최대한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의 마음이, 일주일 전 마음이, 일 년 전 마음이 오늘을 침범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어제 한 약속, 일주일 전 한 약속, 일 년 전 한 약속으로 오늘을 떠안기 싫었다. 그건 이미 오늘 내 하루를 온통 침범해 점령하고 있는데 또다시 다가올 오늘을 과거가 될 지금 정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하루하루가, 오늘이, 다 어제 내가 나한테 내준 숙제를 해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아무런 약속도 되어있지 않은 채 백지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휴일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젖히고 오늘 햇살을 받으며 '아 오늘은 하루종일 한강에 가서 앉아 있어야겠다'하면 아무 걸리는 것 없이 자유롭게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참 나 지난주에 오늘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했었지, 하고 오늘 내 마음을 어제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지우고 싶지 않았다.
우스운 것은 이렇게 과거와 이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나는 소파에 앉아서 시시 때때로 과거의 기억을 꺼내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저 한양도성 벽에 갇힌 듯 나는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지내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나란 인간의 모순점을 찾게 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넓어졌다). 모순적이긴 하나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구제하냐는 심정으로 과거를 되새기는 나를 구출할 방법을 찾는다. 소파에 파묻혀 어둑한 얼굴로 과거의 씁쓸한 기억에 빠져있는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사진기를 가방에 넣고 신발을 신는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며 오늘 이 순간 빛을 머금고 있는 나뭇잎을 눈에 담고 사진기 렌즈에 담는다.
사진은 그런 면에서 완벽히 현재에 파묻히는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다. 조금 전도 아니고 조금 이따가도 아닌 지금. 아까 갔던 거기가 아니고 앞으로 갈 저기가 아닌 바로 눈앞에 펼쳐진 여기를 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를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카메라를 들고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