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쓴이의 학교에서 개인 전시에 발표될 글입니다.※
사람은 왜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인 걸까? Y는 늘 말했다. 왜 인간은 태어나야 하는 걸까? 왜 태어나서 살아야 하는 걸까? 왜 오래 살지 않고 죽으면 다들 그렇게 슬퍼하는 걸까? 오래 산다는 기준이 뭘까? 15년 정도도 오랜 시간이 아닐까? 죽음과 삶에 대한 Y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나는 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뭐라 대답하고 싶은데 딱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Y가 처음 자살시도를 한 것은 2023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Y가 나에게 헤어지면 죽겠다고 협박했던 것도 나와 헤어졌다는 이유로 자살을 감행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좀 좋지 않게 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사귀기 전처럼 친한 친구 관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고, Y는 우리가 함께 활동하던 창작팀에서도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자연히 Y를 잊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Y의 공통된 친구였던 한 아이에게 들었다. Y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그 날의 그 애는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었다. Y는 후에 차마 먼저 관계를 끊을 용기가 나지 않아 모두가 먼저 절연을 선언하도록 의도하고 기다렸노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 애는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지 않도록 기다렸던 거였다. 나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헤어지길 기다렸던 거였다-결과적으로 난 Y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으니 Y의 계획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제서야 그 애가 헤어지기 전에 보였던 행동들이 겨우 이해가 되었다. 전부 내가 학을 떼고 떠나기를 바랬던 거구나.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기겁했다. 얘가 드디어 미친 거구나. 얘랑은 다시는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만나면 안되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결심이 무색하게 나는 Y와 다시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살짝 유추해보건대, Y의 성격상 분명히 내게 부탁했을 것이다. 자신과 다시 친구가 되어 달라고 말이다.
그런 Y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귀게 되었다. 그때 Y는 잠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은 상태였다. Y는 자신을 다시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게 해줄 존재가 필요했고 그 존재가 나이길 바랬다. 따라서 그때도 Y가 먼저 고백했다. 나는 다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우리의 연인관계는 언제나 Y의 진심어린 고백과 나의 별 생각 없는 대답으로 시작되었다. 첫번째 결합도 그랬고, 첫번째 재결합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에 두번째 재결합도 그랬다.-.
첫번째 재결합 이후의 연애는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 떠나있을 것을 예감한 나는 Y에게 이별을 고했다. Y는 그때도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Y는 나와 헤어질 때마다 울었다. 그렇지만 Y에겐 떠나는 나를 붙잡을 용기도 자신감도 없었고, 항상 울음과 네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 뒤에 숨어 슬픔을 감내했다. 그리고 그 슬픔을 원동력 삼아 자살을 감행했다.
내가 병원에서 1년 가까이 썩는 동안, Y는 네 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그 중 몇번은 시도 미수로 그쳤다. 한번은 마포대교 난간 옆에 서 있다가 CCTV를 보고 출동한 경찰이 붙잡는 바람에 실패했고-종종 난간 옆에 오래 서있으면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Y는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서 있기만 했는데 출동해서 좀 억울했다고 했다. 억울할 게 있나-, 한번은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물에서 익사하겠다며 세면대를 에비앙으로 채워 머리를 집어넣었지만 Y의 형이 끌어내는 바람에 실패했고, 한번은 밧줄을 사다가 목을 세게 묶어 질식사를 하려 했지만 죽을 정도로 목을 세게 묶지 못해 실패했고, 한번은 동맥을 끊기 위해 무작정 커터칼로 손목을 깊게 베었다가 동맥에 진입하기도 전에 부모님께 발견되어 제지당해 실패했다고 한다.
나 역시 병원에 가기 몇달 전부터 우울감에 시달렸고 가끔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하기도 했기에, 퇴원하고 그 소식을 접했을 땐 전처럼 기겁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Y를 이해했던 것 같다. 너도 그랬던 거지? 너도 나만큼 자신도 모르는 이유 때문에 힘들었던 거지? 관심도 고팠겠지만, 순전히 관심받고 싶은 마음으로만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니었던 거지?
퇴원하고 나서도 Y의 베스트 프렌드로써 Y를 걱정했던 나는 가능한 날마다 전화를 걸었고, 전화가 안 될 것 같은 날에는 메세지를 보냈다. 대화 중간중간에 내가 항상 듣고 싶었던 말을 자연스럽게 넣었다. 넌 다른사람에겐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소중한 사람이라거나, 네가 사라지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슬플거라던가 등등... 내가 퇴원한 직후에는 텍스트에서도 목소리에서도 우울함이 뚝뚝 떨어지는 Y였는데, 내가 매일같이 그렇게 정성을 쏟으니 예전의 Y와 조금 비슷해졌다. 물론 예전처럼 생기있는 모습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지만.
내가 없는 동안 Y에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Y는 내가 퇴원하고 나서 한번도 그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Y는 그림을 잘 그렸고, 회화가 주 분야였다(고 기억한다). Y는 미술을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어서 부모님께 미술 학원에 보내 달라고 말씀드려봤다고도 했다. 그러나 Y의 부모님은 완강하셨고, Y는 혼자 열심히 그림을 독학했다. Y는 부모님이 반대해도 반드시 미술로 대학을 갈 거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림을 독학하는 것도 입시를 위한 미술이니까 입시 미술이라고 했다. 나는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Y는 그림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우와, 소리가 날 정도의 실력이었다고 기억한다. 가끔 Y는 일러스트도 곧잘 그렸다.
어느 순간, 그런 Y가 한번도 그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채자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Y는 그림에 진심이었으니까. 그래서 물었다.
"너 왜 요즘 그림 얘기 안 해?"
Y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부모님이 모든 미술 도구를 갖다 버리셨다고. 앞으로 미술 시간이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림 그리지 말라고 경고 받았다고 말이다. 왜냐고 묻자, "성적이 완전 하락했거든. 알잖아, 우리 부모님 성적 떨어지는 거에 민감한 거."라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입원 한 사이에 했던 자살 시도 중에 그 이유 때문인 것도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역시 Y의 부모님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예전부터 Y의 부모님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를 Y에게 자주 내리곤 하셨다-. 물론 Y의 성적이 처참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 아들이 걱정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아들이 삶의 이유로 삼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을 앗아가는 것이 과연 옳을 것일까? 아들이 지금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아들에게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더 악효과를 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난 그 문제에서 제 3자일 뿐이니까.
Y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게 고백했다. 이번에 나는 Y의 마음이 진심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나를 좋아하던 마음이 아직까지도 이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울한 감정을 잠깐이나마 타파해준다는 고마움을 사랑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때의 Y는 정상적으로 보여도 아직 불안정한 상태였다. 때문에 내가 거절하면 많이 낙심할 게 분명했다. 나는 Y가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올 때까지 Y를 최대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사귀게 된 것이었다.
Y와 다시 사귀고 나서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Y가 내게 느끼는 감정이 그저 착각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솔직히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인간에게는 '감'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의 감은 Y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라고 알려주었다. Y의 말과 행동들 전부가 '나를 사랑한다'는 텍스트를 가리키고 있는 듯 했다. 나중에 Y에게도 물어보는 것으로 그것은 확신이 되었다. Y는 처음 봤을 때부터 늘 변함없이 나를 좋아했다고 했다.
한동안 우리는 평화로웠다. 뭐 정말 평화롭다고 할 수는 없었다. Y는 끊임없이 자해를 했고, 가끔씩 응급실에 가기도 했으니까. 응급실에 간 것만으로도 큰 사건이긴 하지만 Y와 있다보니 좀 무뎌진 것 같다. 이젠 걱정은 되어도 큰 사건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튼 Y가 다시 자살시도를 한 것은 나름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던 때였다. 그 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늘 우린 내가 하교할 때 쯤 전화를 했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바이올린 학원으로 가던 그때 Y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지금 Y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당장에라도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 Y를 사랑하진 않았다. Y에 대한 걱정은 내가 지금 당장 행해야 하는 의무-바이올린 학원-에 비하면 뒷전이었던 것 같다. 나는 Y의 어머니께 지금은 갈 수 없고 나중에 꼭 찾아가겠다 말씀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얘는 분명히 직접 투신한 거다, 하는 확신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가 줄수 없다는 미안함과 걱정스러움, Y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몸이 덜덜 떨렸다. 가지 않기를 선택한 주제에 왜 그딴 감정들을 느끼는 건지, 난 아직도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Y에게 느끼는 감정이 우정뿐이더라도 정말 걱정되면 찾아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Y를 생각하는 마음은 전부 가짜였던 것이다. 그때 느꼈던 감정도 가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정신을 조금 차렸다. 누구에게라도 이 일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남자 친구가 투신한 것 같아. 친구는 놀라며 나를 위로해주었고, 나는 그 덕분에 슬픔을 조금 덜었다. 친구의 격려에 힘을 얻은 나는 친구와 잠시 대화하다가 전화를 끝냈다. 그리고 바이올린 학원에 갔다.
그때부터 Y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언제고 Y가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앞선 글에 나왔듯 엄마에게 Y와의 관계를 알리지 않았던 나는 Y에게 찾아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자친구 실격이다.
그러다가 Y가 잠깐 일어났었다고 Y의 부모님께 들었다. 다시 혼수상태로 빠졌지만. 나는 한참동안 Y가 내 세상에 없고 나서야 알았다. 아, 난 Y를 생각보다 많이 사랑했구나. Y가 너무 보고싶었다. 물론 이렇게 말해놓고 나는 Y를 우선으로 두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고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나는 Y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그냥, 사랑한단 착각만을 곱씹을 뿐이라고.
내가 유일하게 Y의 병원에 간 날은 Y가 완전히 혼수상태에서 깬 날이었다. 그날은 예상보다 학교가 조금 많이 일찍 끝났고 시간이 빈 김에 오랜만에 Y를 보러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착한 Y의 병실에는 Y가 없었다. 짐을 정리하시던 Y의 부모님께 들었다. 오늘 아침에 Y가 깨어났고 혼수상태에서 완전히 깨어났다고 의사가 말했기에 Y를 다른 병원의 정신과 병동으로 전원했다고 말이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병원을 나왔다. 화가 났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으면서 나한테 전화 한 통 안 한거야? 거기다가 나랑 헤어지지도 않고 자살 시도를 한 건데, 걱정했을 나한테 사과 한마디 안 한거야? 한편으론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랑 대화하는 것보단 훨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테니까 몇개월만 기다리면 다시 생기 넘치는 Y를 볼 수 있겠지. 물론 그 기대는 금방 깨졌다. Y가 일명 찡찡퇴원, 그러니까 부모님을 졸라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퇴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퇴원한 Y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처럼 밝고 자연스럽게. 그래서 나는 더 화가 났다. 얘는 내가 애초에 걱정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구나. 얘는 치료를 받지 않고 빨리 죽어버려서 날 보지 않길 바라는 건가?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그만 Y에게 해선 안 될 말들을 하고야 말았다. 말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Y는 아무 말도 없다가 작게 미안하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Y에게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차단당한 뒤였다.
다음 날, 나는 Y에게 장문의 메일을 썼다. 심하게 말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나는 네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정말 걱정했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 다행히 Y는 메일은 차단하지 않았는지 그를 읽었다. Y는 모든 차단을 풀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화해했고 (이 글을 작성한 날을 기준으로)어제 안전하게 50일을 맞았다. 참고로 Y가 투신한 건 형이 노골적으로 죽으라고 도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당장 자살교사방조죄로 신고하자고 말했지만, Y는 신고하려면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고 절대로 동의해주지 않으실 거라고 말했다. 이미 한번 말해봤는데 부모님 두 분 다 믿지 않으셨다고. 그가 전에 에비앙 사건에서 Y를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Y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하니 좀 짜증이 났다. 나는 언젠가 Y의 형에게 크게 엿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소식이 있다. Y가 퇴원을 하고 나서 단 한번도 자해나 자살시도를 하지 않았다! 3일 정도밖에 안 지났으니 더 지켜봐야겠지만 Y에게 있어서 3일동안 참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니 모두 축하해주길 바란다.
어제 Y가 말했다. 너는 날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가 널 좋아할 수 있도록 허락만 해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내가 우선이 아니더라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네 말대로 착각일 뿐이라도 어쨌거나 사랑이기만 하면 된다고. 그 말을 듣고 난 울었다. Y가 날 사랑해주는 만큼 사랑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 나는 Y를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해보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