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속 이야기 4화
요즘은 중고등학생들도 혼자 산부인과에 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스무 살이 한참 넘어서까지도 산부인과는 임신하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 물론, 산부인과 의사로서 이런 변화는 아주 반갑고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10대 아이들이 접수되면 일단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대부분은 생리통과 생리불순으로 내원한 경우이지만 성병이나 성폭력, 임신과 같은 곤란한 일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10대 여자아이들은 나이와 학교를 불문하고 한쪽 다리만 걷어올린 학교 체육복 긴바지와 회색 후드집업을 입고, 몸집만 한 검은색 가방을 앞으로 맨 채 진료실로 들어온다. 입술까지 허예져서는 학교 가다가 너무 아파서 왔다던지, 갑자기 생리를 또 한다던지 하는 말을 한다.
가끔 함께 들어온 엄마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저도 그랬는데, 이것도 유전인가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 멋쩍게 들어온 아빠는 딸아이의 “아빠 나가 있어.”차가운 한 마디에 민망함을 숨기지 못한 채 나간다.
10대 환자 대부분이 생리와 관련된 증상으로 병원에 오는 걸 보면 생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존재인 것 같다. 가슴처럼 밖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음모나 겨드랑이털처럼 보기 싫다고 면도기로 밀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성교육시간에 처음 생리에 대해 배웠다. 여자는 일정 나이가 되면 아기를 갖게 되는 준비의 일환으로 자궁이라고 하는 아기집을 단단히 다져두지만 아기가 찾아오지 않으면 그 집을 허물어야 한다. 계속 몸에 가지고 있으면 나쁜 피가 되어 다음에 아기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나쁜 피를 내보내는데 그걸 ‘월경’이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이 설명은 꽤나 훌륭하지만 우리는 괜히 쑥스러워서 책상만 쳐다보고 있었고 성교육은 그렇게 끝이 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한 친구가 흰 반바지를 입고 앉아있었는데 우연찮게 본 친구의 가랑이에 갈색 얼룩이 보였다. 친구는 슬쩍 보더니 간장을 흘린 것 같다고 했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다음 날 친구는 어제 바지에 묻은 게 ‘그거’라고 했다.
그게 뭔지 배우긴 했어도 실제로 어떻게 찾아오는지 잘 몰랐던 것이다. 생물학적 이론 이후에 실제적인 내용들을 가르쳐주었으면 친구는 간장 같은 건 떠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학교 성교육시간에 생리가 시작될 때 겪게 되는 증상이나 생리의 양상, 생리대의 사용법과 뒤처리 방법 등을 실제로 보여주고 설명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성별이 다른 여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기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아이가 생리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엄마와 함께 생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첫 생리는 중학생이 되었던 해, 나의 생일날이었다. 아랫배가 사르르 한 것이 기분이 나빴다. 화장실에 갔더니 속옷에 갈색으로 묻어있는 것을 보고 단번에 알았다. 이게 그건가보다. 이미 친구들 중 몇몇은 초경을 겪었기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엄마, 나 그거 시작했나 봐.”
초경, 월경, 생리. 이런 단어를 말하는 게 왜 그리도 부끄러웠을까.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생리해?”라고 물으셨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고 큰딸.” 하시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오셨다. 엄마는 그걸 꺼내서 이렇게 붙여서 사용하고 다 쓴 것은 까만 봉지에 싸서 잘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날, 나의 생일파티는 생리축하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케이크만 있었을 파티에는 엄마가 몰래 준비한 장미꽃 한 송이가 더해졌다. 아무도 ‘생리’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우리 딸이 진짜 여자가 되었다고 했고, 아빠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동생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대놓고 파티까지 했어도 생리는 늘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생리’라는 단어를 내뱉는 것은 늘 불편한 일이었다. 매달 겪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여자끼리도 그 단어를 직접 말하지 않고 ‘그날’ ‘마법’ ‘대자연’ 등 다양한 대체어로 통용되었다. 마치 드러내면 안 되는 금기된 단어처럼.
생리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이자 정상적으로 생식능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단편적인 생물학적 사실만 전달하는 성교육에서 벗어나 생리의 의미, 임신과의 연관성, 생리의 양상, 생리대 사용법 및 속옷 착용법 등 실제적인 정보와 함께 생리는 숨겨야 할 일도, 지저분한 일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도 아니라는 인식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 집도 그렇게 엄한 분위기가 아니었고 엄마는 한없이 다정한 분이셨지만 나 역시 부모님께 생리에 대해서 얘기한 기억이 없다. 엄마가 다달이 사다주시는 생리대가 부족해도 엄마에게 생리대 필요하다는 말 한마디 하기가 어려웠다. 용기를 내 찾아간 슈퍼 앞, 밖에서 직원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한 후에 들어가 제품을 재빨리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바닥만 바라본 채로 이렇게 말했다. ‘까만 봉지에 넣어주세요..’
생리는 감춰야 하는 일일까.
생리가 다가올 때 느껴지는 온몸의 불쾌함, 더부룩한 아랫배, 생리혈이 나올 때의 울컥하는 찝찝함, 생리대 사용으로 따끔거리는 외음부, 수영장도 못 가는 불편함, 생리혈이 샐 까봐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피곤함, 여행이나 중요한 일정과 겹치기라도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마음까지 불편하다면 여자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억울할까.
조금이라도 예민하게 반응하면 오늘 그날이냐는 비난을 받았다. 생리휴가를 내면 핑계 아니냐는 시선을 참아야 했다. 생리 중이라는 말을 했다고 먼저 남자를 유혹한 헤픈 여자 취급을 받는 일도 있었다. 생리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딸의 그날은 언제일까. 그게 언제이더라도 그 때에는 생리가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