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속 이야기 2화
마흔 살이 넘어서 키가 1cm 나 컸다.
오랜 시간 수술실에서 비스듬한 자세로 일하면서 온몸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자세교정 목적으로 시작한 필라테스 덕분에 목과 어깨의 통증이 사라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지더니 1년 만에 키도 큰 것이었다.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여전히 말린 어깨가 눈에 거슬렸다. 전보다 나아지긴 했어도 긴장을 하거나 컴퓨터 업무를 할 때에는 여전히 목과 어깨부터 불편했다.
왜 내 어깨는 이리도 말려있는 걸까?
그건 바로 내가 바른 자세를 하지 않아서였다. 나는 대체 왜 바른 자세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 몸이 부끄러웠다. 감추고 싶었다.
"엄마, 나 여기가 아파. 찌찌. 뭐가 있는 것 같아."
"어머, 몽우리가 있네. 가슴 커지려고 그러는 거야."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어느 날 이후로 내 몸은 변화를 겪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이 되자 엄마는 속옷 꾸러미를 내밀었다.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색이었는지 선명하지 않지만 싫었던 기억만큼은 확실하다. 내가 그걸 입은 걸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살 터울의 여동생은 한 번 입어봐도 되냐며 눈치 없이 부러워했다.
등과 가슴을 조이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 답답했다. 겨울이라 두꺼운 옷을 입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지, 등 뒤에 속옷 자국이 날까 봐 실내에서도 겉옷을 벗지 않았고 누가 다가와 등을 쓰다듬을까 봐 긴장부터 했다. 친구들 모두 겪는 일이었고, 자랑스럽게 브래지어 어깨끈을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숨기고 싶었다.
다음 해 여름, 피서 준비로 수영복을 사러 갔다. 엄마가 브라캡이 달린 수영복을 골라주셨다. 아빠가 이제 이런 걸 입냐며 놀라움 반, 장난 반으로 말씀하셨다. 이만큼 큰 딸이 기특하고 한편으로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것이 아쉬워서 하셨던 말씀이었겠지만, 나는 그 상황이 싫었다. 왜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내 기분을 궁금해하지 않는지 짜증이 났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지만, 엄마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게 부끄러웠다. 그 수영복도 싫었고, 물놀이 후에 같이 샤워하는 것도 불편했다. 누군가 내 몸을 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 신체검사, 가슴둘레를 측정하시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엄청 크네.“ 나는 부끄러웠고 가슴을 숨기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체육시간 달리기라도 할 때면 팔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난감해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몸을 움츠렸다. 나는 마치 불판 위의 마른오징어처럼 점점 쪼그라들었다.
2차 성징에는 일련의 과정 sequence, 순서가 있다. 시기와 순서, 발달 속도의 개인차와 예외가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인 2차 성징은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유방이 발달하고 이후 음모, 겨드랑이털이 나오게 된다. 이후 성장속도는 최대치에 이르고 초경을 하게 된다. 따라서 아이의 키가 부쩍 자란 것이 느껴진다면 아이의 2차 성징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체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일단 사람은 눈에 드러나는 일들을 크게 신경 쓰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니 유난 떨 필요 없다 생각할 수도 있겠 지만, 아이의 건강한 신체상과 자아형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또래 친구들과 다른 외형적 변화는, 특히 유방의 발달은 통증이 동반되고 움직이는 데에 불편함이 생길 수 있으며 눈에 도드라지기 때문에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는 사실과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당황할 수 있고 다른 아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남자아이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당할 수도 있다. 아이가 자기 몸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부정적인 신체상을 갖게 하고 낮은 자존감, 우울, 불안, 식이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유방의 존재는 아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보여주는 여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단순히 크기와 모양으로 비교를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것은 미의 기준의 되지 못한다.
유방이 커지는 동안 통증이 있을 수 있고, 그 과정의 시작과 기간은 물론, 크기와 모양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유방의 피부보호와 유방 지지 및 활동성을 위한 브래지어 착용법을 엄마가 알려주어야 한다.
사춘기 시절 겪었던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여전히 내 몸 여기저기 근육통과 피로를 유발했다. 더 이상 수술실에서 일하지 않고, 늘 자세를 신경 쓰고 운동하면서도 여전히 아프고 비뚤어진 것은 웅크린 채로 자랐기 때문이었다. 누구라도 그런 변화에 대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면 내 몸이 좀 덜 아팠을까? 내 아이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신체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유치원생이었던 우리 딸은 원피스 한 벌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 옷은 엘사처럼 찌찌가 좀 이만큼 커야 예쁠 거 같아. 그치? 엘사는 찌찌가 이만한데 엄마는 왜 안 그래?"
나의 딸도 곧 그런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을 뿌듯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자신의 몸을 자랑스럽고 생각하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나의 딸의 어깨는 반듯한 직각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