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다리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 믿지 말아야 하는 이유

잘 모르면 큰돈 날리는 발달치료의 세계 (1)

by 앨리스맘 뤼

앨리스는 생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견인반응(아이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팔을 당길 때 목과 몸이 일직선을 이루는 것)이 잘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블로그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견인반응”이라는 검색어로 블로그를 샅샅이 뒤져본 후, 마침내 앨리스와 비슷한 개월 수일 때 견인반응을 하지 못했던 아이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 아이는 병원에 가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 블로그의 다른 글을 더 살펴보니 별 이상 없이 발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의 현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은 후 안심했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 일로 괜한 고민을 한 내가 살짝 부끄러웠다. 이전에도 육아와 관련해 작은 일에 과도하게 걱정한 적이 매우 많았는데, 이번 일도 그런 상황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남편에게, 다른 애들은 6개월쯤에는 견인반응이 되는데 앨리스는 되지 않는다는 말만 해두었다.


그런데 성격이 매우 급한 남편이 상의도 없이 바로 동네 소아과 의원을 예약해 버렸다. 남편이 ‘발달지연’을 감기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결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앨리스는 굉장히 이른 시기(6개월)에 발달지연 문제로 의원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대학병원 진료의뢰서를 받게 되었다. 아이의 대근육 발달이 느린 것은 사실이니 구체적인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병원의 예약 일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원에서 받은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의 재활의학과를 예약했고, 재활의학과의 초진을 보고 물리치료 처방을 받았다. 얼떨떨했다. 대근육 발달이 느린 것은 알았지만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치료를 바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약 4개월 정도를 기다린 후 아이가 10개월이 되어서야 대학병원에서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앨리스는 물리치료 대기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견인반응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근육 발달이 여전히 또래보다 느린 것은 사실이라 물리치료는 계획대로 시작되었다. 치료를 시작하기 직전에 받은 발달평가에서 앨리스는 대근육 발달이 9개월 이상 지연되었다는 결과를 받았다. 또한, 재활의학과 재진에서는 소근육도 느리다는 소견을 받아 작업치료 처방도 내려졌다. 점점 더 불안해진 나는 다른 병원에서도 물리치료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래서 앨리스는 한동안 주 2회의 물리치료와 주 1회의 작업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으나 대근육 발달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재활의학과 교수는 엄마가 집에서 운동을 제대로 시키지 않을 거면 차라리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라고 했다. 나는 앨리스의 발달지연이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가 싶어서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앨리스와 함께 입원 재활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침에 입원하고 오후에 퇴원하는 낮병동(6시간 이상 병원에 상주하며 치료를 받는 입원의 한 형태)이라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앨리스가 15개월이 되었을 때 집 근처 재활병원의 낮병동에 입소했다. 그때가 바로 나와 앨리스가 치열한 발달재활치료의 세계에 입문한 시점이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앨리스의 견인반응 때문에 동네 의원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쯤 앨리스의 발달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앨리스가 10개월이 되기 전에 견인반응에 성공했으니 돌까지는 아이의 다름을 몰랐을 것 같기도 하다. 뒤집기도, 네발 기기도, 걷기도 모두 느렸지만, 19개월쯤에 다 해냈으니 그냥 걸음마가 느린 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24개월쯤에 반향어를 시작할 때는 말을 배우는 시기니까 계속 말을 따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다. 무엇보다도 앨리스에게는 난청이라는 확실한 언어 지연의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계속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지나치다가, 앨리스가 결국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매번 갈등을 일으켰다면 나는 무엇이 이유라고 생각했을까. 앨리스가 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음을 알 수는 있었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다 난관에 부딪히면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부모들의 글을 참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핑크빛 경험이 내 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이 거짓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의 경험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아이와 내 아이는 다르다. 결국에 괜찮아진다는 말은 개인의 경험에 한정된 것이며, 내 아이도 결국에 괜찮아질지는 시간이 지나야 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냥 기다리기만 했는데 그 사람들의 아이들과 같이 저절로 괜찮아지지 않았다면 그때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아이가 눈에 띄는 발달지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을 두고 아이를 믿고 기다린다는 표현을 쓰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다면 병원에 가는 것은 아이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병원에 가는 것은 아이를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더 빨리 알아내고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부모라도 자신의 자녀를 믿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만에 하나, 아이가 진짜 발달장애로 밝혀지면 어떨까 두려운 마음에, 혹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에 병원에 방문하지 않는 것은 아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아이의 발달에 관해서라면 기다리면 다 괜찮아진다는 다른 사람의 말은 절대로 믿지 말자.

keyword
이전 08화눈 맞춤이 되고 타인에게 관심을 보여도 자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