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면 큰돈 날리는 발달치료의 세계 (1)
앨리스는 생후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목을 가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견인반응은 잘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블로그를 검색해 보는 것이었다. “견인반응”이라는 검색어로 블로그를 샅샅이 뒤져본 후 마침내 앨리스와 비슷한 개월 수일 때 견인반응을 하지 못했던 다른 아이의 블로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병원에 가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 블로그의 다른 글을 더 살펴보니 별 이상 없이 발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의 현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은 후 (내가 원하는 답변을 찾아서 그런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럼 그렇지. 견인반응 정도야 늦을 수도 있지.”
평소처럼 별것도 아닌 일로 괜한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앨리스의 육아와 관련해서 큰일인 줄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매우 많았는데, 이번 건도 그런 상황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처음에는 아이의 발달지연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 정도는 개인적인 차이로 늦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남편에게 원래 다른 애들은 6개월쯤에는 견인반응이 되는데 앨리스는 되지 않는다는 말만 해두었다.
그런데 앨리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손이 매우 빠른 남편이 상의도 없이 바로 동네 소아과를 예약해 버렸다. 남편이 앨리스의 발달지연을 나보다도 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결국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굉장히 이른 시기(6개월)에 아이의 발달지연 문제로 소아과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의 진료의뢰서를 받게 되었다. 아이의 대근육 발달이 느린 것은 사실이니 구체적인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병원의 예약 일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아과에서 받은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의 재활의학과를 예약했고, 재활의학과의 초진을 보고 물리치료 오더를 받았다. 얼떨떨했다.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아이가 대근육이 느리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치료를 바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약 4개월 정도를 기다린 후 아이가 10개월이 되어서야 대학병원의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아이는 물리치료 대기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견인반응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이가 느리다는 것은 여전한 사실이기에 물리치료는 계획대로 시작되었다. 모든 발달재활치료에서는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발달 평가를 실시하는데, 앨리스는 물리치료를 시작하기 직전에 받은 발달평가에서 대근육 지연이 매우 심각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또래와 9개월 이상의 격차). 또한 재활의학과 교수의 재진에서는 소근육도 느리다는 소견을 받아 작업치료 오더도 내려졌다. 나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조급해졌다.
결국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의 물리치료는 너무 적다고 생각하고 다른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하나 더 추가했다. 몇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던 재활의학과 교수는 엄마가 집에서 운동을 제대로 시켜주지 않을 거면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라고 했다. 앨리스가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발달지연이 심각한가 싶어서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앨리스와 함께 입원해서 재활치료를 받는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입원 대신 집 근처 재활병원에서 낮병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앨리스가 15개월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가 바로 앨리스의 치열한 발달재활치료 여정의 시작점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때 앨리스의 견인반응 때문에 소아과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쯤 앨리스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결국 앨리스가 10개월이 되기 전에 견인반응에 성공했으니 돌까지는 아이의 다름을 눈치를 못 챘을 것 같기도 하다. 뒤집기도, 네발 기기도, 걷기도 모두 느렸지만 결국은 19개월쯤에 다 해냈으니 그냥 걸음마가 느린 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24개월쯤 심하게 반향어를 시작할 때는 말을 배우는 시기니까 계속 따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앨리스에게는 난청이라는 핑계 대기 좋은 발달지연의 이유가 확실히 있었다. 그렇게 계속 아이의 느림을 지나치다가, 앨리스가 결국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매번 갈등을 일으켰다면 나는 무엇이 이유라고 생각했을까. 앨리스가 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는 있었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다 난관에 부딪히면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부모들의 글을 참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핑크빛 경험이 내 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이 거짓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의 경험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아이와 내 아이는 다르다. 결국에 괜찮아진다는 말은 개인의 경험에 한정된 것이며, 내 아이도 결국에 괜찮아질지는 시간이 지나야 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냥 기다리기만 했는데 그 사람들의 아이들과 같이 저절로 괜찮아지지 않았다면 그때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아이가 눈에 띄는 발달지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을 두고 아이를 믿고 기다린다는 표현을 쓰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다면 병원에 가는 것은 아이를 못 믿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병원에 가는 것은 아이를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이 있는지 더 빨리 알아내고 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부모라도 자신의 자녀를 믿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만에 하나, 아이가 진짜 발달장애로 밝혀지면 어떨까 두려운 마음에, 혹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에 병원에 방문하지 않는 것은 아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아이의 발달에 관해서라면 기다리면 다 괜찮아진다는 다른 사람의 말은 절대로 믿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