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폐가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믿으면 안 되는 이유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오해와 진실 (6)

by 앨리스맘 뤼

아이가 발달지연 증세를 보인다고 해서 처음부터 아이를 소아정신과에 데리고 가는 과감한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앨리스의 발달 지연 증상과 관련하여 처음에는 동네 소아과 의사를 만났고, 그 후에 재활의학과 의사, 소아신경과 의사를 차례대로 만났으며, 소아정신과 의사는 가장 마지막에 만났다. 나에게 소아정신과는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소아정신과를 선택한 것은 앨리스의 진단과 치료 방향 설정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렇듯 앨리스는 신생아 때부터 정말 많은 의사를 만났다. (난청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만나는 이비인후과 의사까지 포함하면 의사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나는 앨리스의 엄마로서 앨리스가 지금껏 만났던 모든 의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들의 전문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앨리스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앨리스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후, 그 사실을 앨리스를 진료하는 다른 의사에게 알렸을 때, 진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 의사가 많았던 점은 놀라웠다. 국내 탑 대학병원에서 받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같은 병원의 의사도 믿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마 의사들이 앨리스의 자폐 진단을 믿지 못한 이유는 앨리스가 진료실에서는 꽤 소통이 잘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정식으로 받은 진단을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면 때문에 다른 의사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양육자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아이가 자폐 진단은 받았으나 아직 그 진단에 확신은 없는 양육자가 “자폐 진단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의사의 말을 듣는다면 (설사 그 사람이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의사’가 하는 말이니만큼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전문의의 진단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양육자는 더욱 많은 불안과 의구심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아무리 베테랑 소아정신과 전문의라 하더라도 자폐진단검사 없이 관찰만으로 한 아이가 자폐라고 진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의사들도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할 때는 자폐진단검사의 결과를 참고한다. 따라서 소아정신과 의사가 아닌 사람이 아이의 자폐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자폐 진단 검사를 실시한 후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검사 결과를 참고하여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외의 다른 모든 방법은 신뢰할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양육자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은 하되, 명확한 진단 절차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자폐성 장애가 DSM-5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로 바뀌었음에도 의료인들조차 자폐스펙트럼장애를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자폐인들 중 지능이 또래 평균 이상인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비율은 상당하다. (분당서울대 유희정 교수는 2022년도 오티즘엑스포에서 전체 성인기 자폐인 중 고기능 자폐인의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는다고 했다) 따라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더라도 앨리스처럼 말을 잘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의료인들부터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아주 넓은 범주의 신경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의 편견을 내려놓아야 자폐를 바라보는 사회 전체의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가 단지 의료계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 모든 사람들이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더 폭넓게 이해하고 다양한 모습의 자폐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처럼 다양함을 인정받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좀 더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의사들도 있다. 유튜브에 ‘자폐 치료’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현재 (2025년 2월) 기준으로 주류의학에서 효과가 확실하게 입증된 자폐 치료제나 치료 방법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의사들의 상당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다. (어쩌면 그들도 자폐에 대해서는 양육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전문가일 수도 있다.) 부디 ‘의사’라는 타이틀에 현혹되어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기를 바란다. 자녀의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양육자는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을 선택하고, 검증된 정보에 기반하여 아이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keyword
이전 06화자폐 진단,  발달 검사만 믿으면 안 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