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오해와 진실 (6)
아이가 발달지연 증세를 보인다고 해서 처음부터 아이를 소아정신과에 데리고 가는 과감한(?)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앨리스는 발달지연 증상과 관련하여 처음에는 동네 소아과 의사를 만났고, 그 후에 재활의학과 의사, 소아신경과 의사를 차례대로 만났으며, 소아정신과 의사를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다. 나에게 소아정신과는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이렇듯 앨리스는 신생아 때부터 정말 많은 의사들을 만났다. (난청으로 인해 만났던 이비인후과 의사들까지 포함하면 앨리스가 만났던 의사들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앨리스가 지금껏 만났던 모든 의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분들의 전문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앨리스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리스가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후 그 사실을 다른 의사들에게 알렸을 때 진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 의사들이 많아서 굉장히 놀랐다. 의료분야의 전문가들도 국내 탑 대학병원에서 받은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믿지 못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아마 의사들이 앨리스의 자폐를 인정하지 못한 이유는 앨리스가 진료실에서는 꽤 소통이 잘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정식으로 받은 진단을 단순히 “보이는” 면 때문에 의사들이 부정한다면 보통의 양육자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특히 아직 아이의 자폐 여부에 대해 확신이 없는 양육자가 “자폐 진단이 잘못된 것 같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무리 소아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의사”가 하는 말이니만큼 충분히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아무리 베테랑 소아정신과 전문의라 하더라도 잠깐의 관찰을 통해 아이가 자폐라고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의사들도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할 때는 자폐진단검사의 결과를 참고한다. 따라서 소아정신과 의사가 아닌 사람이 아이의 자폐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말을 믿으면 절대 안 된다. 자폐스펙트럼 진단은 자폐 진단 검사를 실시한 후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받는 것이다. 이외의 다른 모든 방법은 신뢰할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자폐성 장애의 이름이 자폐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적인 집단의 하나인 의료인들조차 자폐스펙트럼장애를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자폐스펙트럼장애에 통합되면서 전체 자폐인들 중 인지 기능과 언어 기능이 또래 평균 이상인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비율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비율은 성인으로 갈수록 높아지며 성인기에는 비율이 무려 50퍼센트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따라서 앨리스가 말을 잘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자폐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의료인들부터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아주 넓은 범주의 신경발달장애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회 전체의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 어서 빨리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처럼 다양함을 인정받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에 대해 단순히 잘 모르고 있는 의사들과는 달리,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좀 더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의사들도 있다. 유튜브에 “자폐 치료”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현재(2024년 10월) 기준으로 자폐 치료는 주류의학에서 불가능하다. 그러니 자폐는 완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의사는 특정한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거짓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의사들의 상당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다. (어쩌면 그들도 자폐에 대해서는 양육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전문가일 수도 있다.) 부디 “의사”라는 타이틀에 현혹되어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