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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춤이 되고 타인에게 관심을 보여도 자폐인가요?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오해와 진실 (7)

by 앨리스맘 뤼

아이가 자폐 성향을 보일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을 선뜻 방문하는 것이 어려운 양육자들은 인터넷 카페에 이런 질문을 많이 올린다.


“ㅇㅇ이 되는데 자폐인가요?”

여기서 ㅇㅇ에는 여러 가지 말이 들어갈 수 있다. ㅇㅇ은 눈 맞춤이 되기도 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되기도 한다. 애교가 되기도 하고, 눈치가 되기도 한다. 학습이 되기도 하고, 언어가 되기도 한다. 하여간에 성장기 아이들이 발달 과정상 당연히 해야 하고, 잘하면 좋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통해 아이의 자폐 여부를 알아낼 수는 없다. 앨리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앨리스는 매우 외향적인 성격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고 눈 맞춤도 대체로 잘되는 편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어휘력이 좋고 말이 엄청나게 많다. 또한, 학습도 좋아하며 외국어의 습득이 빠르다. 그렇다면 앨리스는 자폐가 아닌가? 하지만 앨리스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어떤 특정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자폐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의 자폐 여부를 판단할 때는 질문을 반대로 해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다 잘해도 ‘이것’이 안되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DSM-5(미국정신의학회 정신장애진단분류체계)의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진단 기준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DSM-5에서 말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인 어려움이 있음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 (현재 또는 과거력)


첫 번째 진단기준인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은 자폐인이 사회적인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아예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은 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사회적 맥락의 이해와 반응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과 공통적인 흥미나 감정을 공유하기가 어렵고, 대화의 흐름에 적절히 참여하지 못하며, 비언어적인 신호를 잘 이해하지 못하여 교우 관계나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외향적이어도 ‘사회적 맥락의 이해와 반응’에 어려움이 있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진단기준인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이란 우리가 흔히 ‘상동행동’이라고 부르는 의미 없는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나 극도로 제한되거나 특이한 관심사에 몰두하는 것을 뜻한다. 이 진단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첫 번째 진단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아닌 사회적의사소통장애로 진단받게 된다. 사회적의사소통장애는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은 없으나 사회적 상호작용에만 어려움을 보이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진단명이다.


그러나 영유아 시기에는 상동행동을 했던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되거나,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이상하지 않은 행동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또한, 타인에게 자신의 특이하고 집요한 관심사를 적절히 숨기기도 한다. 따라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사회적의사소통장애의 구분은 쉽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구분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들의 핵심적인 어려움은 사회성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어떤 특정 행동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아이의 자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스펙트럼’은 정말 다양한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대신 아이가 또래 수준의 ‘사회적 맥락의 이해와 반응’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최소한 사회적의사소통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진단은 언제나 소아정신과의 전문의에게 받아야 하며, 인터넷 정보나 발달센터에 의존하여 자가 진단을 내리는 것은 정확성이 떨어지므로 삼가야 한다. 전문의의 진단은 아이의 개별적인 발달 이력과 현재의 행동 양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지므로, 양육자는 전문의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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