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면 큰돈 날리는 발달치료의 세계 (2)
앨리스는 생후 10개월에 물리치료를 시작으로 발달재활치료(이후 발달치료)의 세계에 입문했다. 선천성 난청이 있는 경우 언어치료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앨리스는 언어치료보다 물리치료를 먼저 시작한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런데 앨리스가 단순발달지연이라고 생각했던 두 돌 전후에는 치료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당시 앨리스는 대부분의 치료를 재활병원 낮병동에서 받았는데, 재활병원에서 사용한 치료비는 실비청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낮병동은 입원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실비를 청구하면 입원 일당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앨리스는 낮병동에서 쓴 돈보다 보험사에서 돌려받은 돈이 더 많았다.
하지만 앨리스가 30개월이 된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낮병동을 다니며 해가 두 번 바뀌는 동안 앨리스는 발달 검사상 더 이상 느리지 않은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또래들과는 달랐다. 앨리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언어를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기 말만 했다. 그래서 앨리스는 또래에게 매우 관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그때부터 앨리스의 치료 방향을 발달지연 극복에서 사회적 의사소통능력의 향상으로 바꾸었다. 그에 맞추어 재활병원의 낮병동을 종결하고 발달놀이치료를 중심으로 새롭게 치료를 세팅했다.
치료 방향을 바꾼 후, 어느새 아이의 치료비는 내 연봉에 가까워졌다. 날을 잡고 치료비를 계산했던 적이 있었는데, 낮병동 종결 후 약 2년 동안 최소 오천만 원 이상이 사용되었다. (치료실을 다니며 사용한 주유비와 주차비 등의 부대비용을 고려하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일 년에 억대의 발달치료비를 쓰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특별히 치료비를 더 많이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한 월급쟁이 가족이 한 사람의 연봉에 해당하는 액수를 치료비로 사용했다면 반드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한 사람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오로지 아이의 발달치료에 쓰는 이 상황이 합리적인지 말이다.
일 년에 수천만 원이 들어간 발달치료는 효과가 있었을까?
이러한 상황이 합리적이려면 발달치료의 효과가 확실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발달치료의 효과를 100퍼센트 확신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발달치료를 시키는 양육자들은 다들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내 아이는 이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걷게 되었을 거고, 말도 잘하게 되지 않았을까? 발달치료의 효과는 시간의 효과 아닐까?
발달치료의 효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치료하든, 치료하지 않든 간에 아이들은 “성장”을 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성장 중 어떤 것이 치료의 효과이고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결과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발달치료는 애초에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발달치료는 이름만 “치료”일뿐 실제로는 훈련 혹은 교육이며 발달장애를 근본적으로 낫게 하는 의료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 전후에 신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발생했는지 의학적으로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발달치료라고 부르는 훈련 혹은 교육 행위에 과연 수천만 원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앨리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앨리스는 재활병원 낮병동을 그만둔 후 32개월부터 한 세션(50분)에 10만 원을 내는 발달놀이치료를 시작했다.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32개월의 앨리스와 현재(만 5세)의 앨리스를 비교해 보자면, 지금의 앨리스가 훨씬 다양한 말을 구사하며, 의사소통도 잘 되고, 놀이 규칙도 잘 이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앨리스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부분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발달놀이치료 시간에 치료사와 반복 연습한 것이 일반화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발달치료의 효과를 객관적인 수치로 표기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디까지가 치료적 개입으로 인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성장으로 인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유아 시기에 발달치료를 통한 조기중재는 추천하지만, 경제적인 올인은 추천하지 않는다. 자폐를 비롯해 발달지연 양상을 보이는 모든 아이의 양육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장기레이스이다. 양육자들의 최종 목표인 완전한 독립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아이가 독립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미취학 시기부터 경제적으로 무리하게 되면 부모도 아이도 오래 버틸 수 없다. 치료에 대한 투자는 중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지원을 위해서는 가족의 재정적 안정성과 정신적 여유를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아이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진로 설정과 자조 능력 향상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치료센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치료비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거나 실비를 청구할 수 있는 센터를 이용하여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면서도, 아이의 발달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자원이나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다. 절감된 치료비는 아이의 진로를 준비하는 데 쓴다. 치료가 부족한 부분은 양육자가 상호작용놀이로 채워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아이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장점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세션당 10만 원 이상의 치료비가 큰 부담이 없다면 놀이 기반의 치료(수업)는 아무리 많이 받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아이와의 상호작용놀이를 통해 필요한 발달을 지원하는 것이 좋다.)
치료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언급했지만, 나는 앨리스의 발달치료비로 수천만 원을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앨리스가 30개월이 된다고 해도 예전과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많은 돈을 쓰긴 했지만 감당 가능한 범주였고, 그 안에서 내가 앨리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치료는 다 시도해 보았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설사 투자한 만큼의 효과를 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양육자로서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을 찾는 것에 최선을 다하되, 각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맞춘 지속 가능한 지원의 선을 정하는 것이다.
발달치료 센터, 추천이 필요 없는 이유
나는 지금까지 유명하다는 발달치료 센터를 골라서 가본 경험이 많다. 하지만 센터의 유명세와 치료사의 실력은 비례하지 않았다. 내 아이를 가르치는 치료사는 센터장이 아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센터를 찾을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은 유명세보다는 센터에서 집까지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특정 센터에서 치료 수업을 시작하면 최소 6개월은 주 1회 이상 아이와 그 센터를 방문해야 하는데, 이는 양육자에게나 아이에게나 체력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치료를 받는다면 집에서 가까운 센터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좋다. 단, 그룹치료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많은 곳이 그룹을 짜기에도 좋기 때문에 집에서 멀더라도 유명한 곳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집에서 가까운 센터를 골랐다면 그때는 치료사의 자격을 확인해야 한다. 실비 청구가 가능한 병원 센터나 바우처 사용이 가능한 사설 센터의 경우는 이미 검증이 된 것이므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 이외의 경우라면 치료사나 센터 측에 직접 문의하여 자격이나 경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고려할 것은 치료사의 실력이다. 그런데 치료사의 실력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치료를 시작했다면 최소 한 달 이상은 지켜보며, 내 아이와 잘 맞는지, 치료실 밖에서 실천할 수 있는 팁을 주는지, 아이의 성장이나 문제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이 있는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추천에 의존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