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면 큰돈 날리는 발달치료의 세계 (5)
※이 글에서 쓰는 ‘치료’는 발달치료의 줄임말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현재 의학적인 치료법이 없으며, 발달치료는 사실상 교육이나 훈련이라 볼 수 있다.
앨리스의 실제 치료 스케줄은 어땠을까
앨리스는 31개월에 재활병원 낮병동을 종결한 이후 쭉 발달놀이치료를 받았다. 아이가 자폐인 경우 보통 ABA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앨리스의 경우에는 기능이 좋으니 (학습이나 모방에 지장이 없음) 발달놀이치료를 하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물론 고기능 자폐는 무조건 ABA보다는 발달놀이치료라는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발달놀이치료를 필두로 하여 앨리스가 받았던 시기별 치료 수업의 종류와 각 수업을 들었던 이유를 정리한 것이다.
4세 (만 3세 경) 치료 스케줄 (32개월 ~ 41개월)
-발달놀이치료 주 1회
ABA보다는 발달놀이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로 병원에서 발달놀이치료를 시작했다. 장난감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하는 상호작용놀이 수업이었다.
-감각통합치료 주 1회
앨리스는 낮병동을 종결한 후에도 여전히 대근육이 느리고 몸을 잘 쓰지 못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대근육 활동 위주의 감각통합치료를 받았다.
-언어치료 주 1회
앨리스는 언어 지연은 없었으나 화용 언어의 지연이 있었고 조음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청각전문 언어센터에서 주 1회 언어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집에서 센터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집 근처의 발달센터로 옮긴 후, 조음 위주의 언어치료를 계속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조음치료를 시작해서인지 특별한 효과는 보지 못하고 하반기에 언어치료를 종결하였다.
-ESDM 부모교육 (총 12회기)
ESDM 부모교육을 주 1회, 총 12회기 수강하였다. ESDM이 놀이 중심인 점, 그리고 교육이 100% 부모교육으로 진행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와 매주 노는 영상을 찍고 ABA 전문가의 꼼꼼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반응성교수(RT) (총 4회기)
은평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무료로 RT 수업 지원을 받았다. 한국 RT 센터에서 4회기를 수강했다.
-부모아동상호작용치료(PCIT) (총 8회기)
역시 은평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무료로 지원을 받았다. 아동발달센터에서 PCIT 중에서도 아동주도상호작용(CDI)을 수강할 수 있었다. 아이의 놀이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플로어타임(DIR Floortime) 주 2회
놀이 기반의 치료 중, 자폐스펙트럼 아이에게 좀 더 특화된 치료를 찾아보다가 플로어타임을 알게 되었다. 아동의 리드를 따르는 놀이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앨리스도 수업을 매우 좋아하여 주 2회의 수업을 수강했다.
-치료놀이(Theraplay) 주 1회
PCIT 치료사의 추천으로 PCIT 종료 후 시작했다.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상호작용놀이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부모 자녀 간 상호작용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5세 (만 4세 경) 치료 스케줄 (42개월 ~ 53개월)
-감각통합치료 주 1회 (유지)
-치료놀이 주 1회 (유지)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주 1회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에게 흔히 보이는 인지왜곡현상의 조절을 위해 CBT 수업을 추가했다.
-언어치료 주 1회
화용 언어 수업을 받기 위해 수업을 시작했다. 인지행동치료와 큰 차별점을 느끼지 못하여 3개월 후 종결했다.
-플로어타임 주 2회
작년과 똑같이 주 2회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놀이 중심의 치료를 다른 곳에서도 받는다는 점, 집에서의 거리가 상당한 점 등을 고려하여 연말에 종결했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주 1회(6개월)
재활병원에서 외래 치료 순번이 돌아와서 치료를 시작했다. 이동 거리에 비해 치료시간이 너무 짧고 스케줄 관리가 힘들어 6개월 정도 유지 후 종결했다.
-농학교 감각통합치료(6개월)
농학교에서 난청 아이들에게 월 2회 감각통합치료를 지원하는 혜택을 통해 6개월간 감각통합치료를 추가로 받았다.
6세 (만 5세 경) 치료스케줄 (54개월 ~ 65개월)
-인지행동치료 주 1회 (유지)
-치료놀이 주 1회 (유지)
가족 상호작용놀이에서 또래와의 상호작용놀이로 변경되었다. (짝치료)
-감각통합치료 주 1회(6개월)
작년과 똑같이 유지하다가 스케줄 문제로 종결했다.
-특수체육 주 1회
감각통합치료 종결 후 대근육 활동을 위해 새로 시작했다.
-언어치료 주 1회
57개월 언어평가 결과 조음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이 있어서 조음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PCIT (4개월)
2022년도에 치료 대기를 걸었는데, 2024년도에 대기가 풀려 수업을 시작했다. 놀이 상황에서 올바른 상호작용 방법 및 훈육 방법을 배우는 것이 목표였다. 4개월간 앨리스와 함께 실습한 후 수료했다.
-음악치료 주 1회(5개월)
즐겁게 악기를 배우며 소근육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연습을 하기 위해 시작했다. 개별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면서 종결했다.
이 밖에도 앨리스는 두 돌 이후 이비인후과에서 3개월마다 청능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같은 이비인후과에서 매년 6개월씩 월 2회의 청각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만 3세~5세 자폐스펙트럼 치료 설계 직접 해보기
▶만 3세 이상의 아이들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까?
만 3세는 자폐진단검사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시기다. 따라서 이전까지는 전반적 발달지연 진단을 받았던 아이라도 소아정신과의 진단 결과에 맞게 치료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특히 자폐진단검사 결과 자폐스펙트럼장애로 확인된 경우에는 사회적 상호작용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치료를 주치료로 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치료법은 ABA이다.
ABA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근거기반치료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모든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에게 ABA가 필수인 것은 아니다. 언어 지연이 거의 없고 모방과 자조 능력이 또래와 비슷한 경우 굳이 ABA 방식이 아니어도 또래처럼 배울 수 있다. 반대로 언어, 모방, 자조 능력이 또래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경우, 혹은 문제행동이 심해서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는 아이에게 ABA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ABA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ABA가 주치료가 되고 그 이외의 치료들은 부치료가 된다. 앨리스처럼 ABA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사회적 상호작용능력 향상을 위한 발달놀이치료가 주치료가 되고 그 이외의 치료는 부치료가 된다.
▶ABA가 주치료가 되는 경우
ABA 치료의 특징은 비싸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치료비 자체가 비싸다기보다는 보험이나 바우처 적용이 되지 않아서 비싸다.) ABA 일대일 치료의 경우 보통 1 세션의 비용이 10만 원 내외이며, 대부분 바우처와 실비가 적용되지 않는다. ABA 조기 교실은 ABA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소집단 그룹 수업이며, 하루에 3시간 이상 진행한다. 낮병동과 같이 집중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소 비용이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ABA를 시작했다면 짧은 기간 동안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양육자도 ABA의 기본 원리를 익혀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양육자도 치료사가 되어야 한다.
▶발달놀이치료가 주치료가 되는 경우
언어 지연이 거의 없고 모방과 자조 능력이 또래와 비슷하다면 ABA 치료가 필수는 아니다. 이런 경우 사회적 상호작용능력을 기르기 위한 발달놀이치료(놀이치료, 치료놀이, 플로어타임, RT, PCIT 등)가 주치료가 된다. 이때 실비가 가능한 병원 부설 발달센터와 바우처 적용이 가능한 기관에서 발달놀이치료를 받으면 지출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플로어타임, RT, 치료놀이, PCIT 등 특정 치료를 주력으로 하는 센터의 경우 보험과 바우처 적용이 안 되는 곳이 많다. 따라서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특정 치료를 고집하기보다는 바우처 이용이 가능한 센터에서 놀이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그 밖의 치료
ABA와 발달놀이치료 이외에도 언어치료, 작업치료(감각통합치료), 인지(행동)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자폐스펙트럼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발달치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치료의 우선순위
모든 사람은 한정된 재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간혹 감각통합치료나 언어치료를 주치료로 생각하고 ABA나 놀이치료보다 더 자주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특별한 의학적 이유나 주치의의 요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주치료는 사회적 상호작용능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여야 한다. 따라서 만 3세~5세의 유아에게 적합한 치료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다.
-사회성 발달치료: ABA, 발달놀이치료
-언어치료(언어 지연이 있는 경우)
-인지(행동)치료
-작업치료 (감각통합치료)
경제적, 시간적인 문제로 원하는 치료를 다 받기는 어렵다. 따라서 반드시 치료의 우선순위에 따라 치료하도록 한다. (※본문의 우선순위는 글쓴이 개인의 주관적 의견이다. 치료 계획에 대해서는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 후 최종 결정은 양육자가 한다.)
▶치료는 얼마나 해야 할까?
조기 진단과 조기개입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의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최고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치료를 얼마나 많이 받아야 할까? ABA의 경우, 조기개입을 위해 권장하는 치료 시간은 주당 25시간 이상이다(한국ABA, 2019). 다른 발달치료들도 치료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효과가 좋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최소 권장 시간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ABA를 비롯한 모든 발달치료들은 실제로는 의료 행위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훈련 혹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 권장 시간보다 치료 수업을 적게 받는다고 해도 치명적이지 않다. 최소 권장 시간보다 치료 수업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치료의 효과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어떤 치료 수업을 얼마나 받을 것인가는 결국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양육자가 직접 정하는 것이다. 아이의 발달 수준과 진단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양육자의 경제력이다. 발달치료는 끝을 알 수 없는 장기레이스이다. 아이가 독립을 할 때까지 가능한 오랫동안 꾸준히 지원하려면 적절하게 치료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ABA나 발달놀이치료와 같은 주치료를 좀 더 자주 받을 수도 있겠고, 잘 알려지지 않은 치료를 시도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실비 청구가 가능한 병원 센터나 바우처 사용이 가능한 발달센터를 주로 이용하여 치료비를 계획적으로 절감하는 것이 좋다. 치료 비용과 치료 효과는 절대 정비례하지 않는다. (앨리스는 병원 센터, 바우처 센터, 바우처 적용이 안 되는 센터 등 다양한 가격대의 치료 수업에 모두 참여해 보았지만, 수업의 가격과 만족도는 전혀 비례하지 않았다.) 치료의 횟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독립하는 그날까지 필요한 지원을 적절하게 제공을 받을 수 있는가이다.
※ABA와 발달놀이치료는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ABA 치료는 주로 ABA 전문기관에서 받을 수 있다. 센터 이름에 ABA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발달놀이치료는 주로 일반 아동발달센터에서 ‘놀이치료’라는 이름으로 받을 수 있다. (간혹 병원부설 아동발달센터에 ABA나 놀이치료가 개설되는 경우도 있다.) 어디서 놀이치료를 받든 아이의 성향을 미리 이야기하고 발달놀이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는 곳에서 시작하면 된다. ESDM은 ABA 센터에서, RT, PCIT, 플로어타임은 각 치료를 전문으로 다루는 특정 센터에서 받을 수 있다. (간혹 일반 아동발달센터에 개설되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복지관에서도 사설 센터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각종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기가 매우 긴 편이라 집 근처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