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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치료 쇼핑보다 더 중요한 상호작용놀이

잘 모르면 큰돈 날리는 발달치료의 세계 (8)

by 앨리스맘 뤼

현재 만 5세 고기능 자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나는 앨리스의 발달치료와 관련해서는 후회나 미련이 없다. 신생아 시기부터 아이의 발달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아이의 다름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눈치챘으며, 아이가 주당 25 세션의 집중재활을 받을 수 있도록 육아휴직 후 열심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앨리스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난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달지연을 빠르게 극복했고 현재는 또래 수준의 발달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아쉬운 점은 하나 있다. 앨리스가 놀이치료를 하기 전에는 내가 아이에게 직접 상호작용놀이(두 사람 이상이 서로 순서를 주고받으며 하는 놀이)를 해주었던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앨리스뿐만이 아니라 나도 놀이치료를 통해 상호작용놀이를 처음 배웠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시간을 되돌려 앨리스가 신생아 시기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당시 유행하는 교구나 필수 장난감을 사는 대신 무조건 아이와 상호작용놀이를 매일 30분 이상 할 생각이다. 앨리스와 나는 지금도 하루에 최소 20분 이상 상호작용놀이를 하고 있다. 내가 워킹맘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앨리스 또한 이제 발달지연 아이가 아님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상호작용놀이를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장에서는 상호작용놀이란 무엇이고 가정에서 상호작용놀이를 하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발달놀이치료를 분류하는 기준

앨리스는 32개월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의 발달놀이치료를 받았다. 덕분에 나도 수년간 다양한 놀이치료를 접하며 각 놀이치료의 특징과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놀이 치료의 종류는 매우 많으며, 각 치료는 다양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치료사가 아닌 양육자의 입장에서 보는 놀이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동주도놀이’를 하는 놀이치료

-놀이 중 철저하게 아동의 주도를 따른다. 그래서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DIR플로어타임, RT는 원칙적으로 아동주도놀이를 표방한다. PCIT의 경우 CDI(놀이 파트)에서 아동주도놀이를 한다.

-단점: 철저하게 아이에게 놀이의 주도권이 있다. 따라서 아이가 놀이할 의지가 ‘전혀’ 없거나 자신의 놀이에 타인을 허용하지 않으면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어렵다. 아동이 놀이를 시작할 때까지 치료사는 때로는 매우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며 아동의 아주 작은 신호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따라서 아동주도놀이를 해야 하는 치료에서도 필요에 따라 치료사가 놀이를 주도할 수도 있다.)


▶‘상호작용놀이’를 하는 놀이치료

-치료시간 중 치료사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아동과 놀이 주도권을 주고받는다. 치료사가 의도적, 전략적으로 놀이에 개입한다. 상호작용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장난감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한만 사용한다.

-발달놀이치료의 놀이, 치료놀이, ESDM의 신체 놀이(사회적 놀이)가 상호작용놀이에 해당한다. PCIT의 경우 PDI(훈육 파트)에서 상호작용놀이를 한다.

-단점: 아이와 동등하게 놀이 주도권을 주고받기 어렵다. 아이가 놀이 주도권을 독점하고 규칙을 무시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규칙이 없는 아동주도놀이와는 다르게 놀이마다 확고한 규칙이 있어 놀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주로 치료사가 놀이를 고르기 때문에 놀이가 아동의 취향에 맞지 않는 경우 놀이거부로 이어진다.


상호작용놀이를 가정에서 꼭 해야 하는 이유?

상호작용놀이와 아동주도놀이는 모든 아동의 발달에 꼭 필요한 놀이다. 하지만 아동주도놀이를 통해 양육자가 아이와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동이 먼저 놀이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아동의 의지와 발달 수준에 따라 놀이를 시작하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아동이 자신의 놀이에 다른 사람의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치료사처럼 오로지 놀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독립적인 공간이 없는 평범한 양육자라면 아동주도놀이에 흥미를 잃고 쉽게 포기할 수도 있다.


반면에 상호작용놀이는 놀이의 주도권이 양육자에게 있다. (물론 아이가 놀이가 익숙해지면 양육자와 주도권을 주고받는다.) 양육자가 먼저 놀이를 주도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아동과 양육자의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양육자가 놀이에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상호작용놀이는 아이가 성장해서 또래와 함께 하는 놀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가 또래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원한다면 반드시 익혀야 할 기본 소양이다. 따라서 상호작용이 어려운 아이일수록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꾸준하게 양육자와 상호작용놀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육자와의 상호작용놀이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센터에서 발달치료를 받는 것만으로 아동의 발달을 끌어올리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발달치료를 통해 눈에 보이는 효과를 만들려면 정말로 많은 시간을 치료에 투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ABA 조기 중재 프로그램은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주당 25 세션 이상의 치료시간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 ABA, 2019). 그런데 아이의 조기 중재를 위해 그 정도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단 25 세션 이상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양육자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해야 한다. 그리고 실비 보험과 치료비 바우처가 적용이 안 되는 기관에서 치료 수업을 듣는다면 한 달에 수백만 원의 치료비를 감당해야 한다. 물론 치료를 위해 집을 팔거나 직장을 그만두며 권장시간대로 집중개입을 해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치료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는 양육자가 가정에서 채워주는 것이 필수이다. 그리고 실제로 양육자와 아동의 상호작용놀이는 치료사가 발달놀이치료를 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상호작용놀이의 놀라운 효과

상호작용놀이의 효과를 정리하면 크게 다음 네 가지와 같다.


가. 아동과 양육자 간 긍정적 정서 교류

아이와 양육자의 사이가 좋아진다. 매일 놀이를 하며 얼굴을 마주 보기 때문이다.


나. 아동의 각성 및 주의 조절

상호작용놀이에는 각성을 올리는 놀이와 낮추는 놀이가 모두 있다. 적절하게 배치하여 레퍼토리로 만들면 양육자가 아동의 각성 수준을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다. 전반적인 발달 및 사회성 향상

상호작용놀이를 매일 반복할수록 아동의 전반적인 발달 및 사회성이 좋아진다.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은 아이의 소근육 운동, 뇌발달,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작업기억력을 높여 지능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EBS 이미 완벽한 아이, 2024).


라. 유능감과 자기주도성 형성

상호작용놀이는 결국 또래들과 하게 될 놀이이기도 하다. 양육자와 꾸준히 상호작용놀이를 하여 놀이가 완전히 익숙해지면 또래와도 어렵지 않게 상호작용놀이를 할 수 있게 된다. 또래와의 상호작용놀이는 아이의 유능감 및 자기주도성을 형성하게 한다 (EBS 이미 완벽한 아이, 2024).


※상호작용놀이 4년 차 앨리스가 실제로 보여주는 효과

32개월에 처음으로 상호작용놀이를 시작한 앨리스는 이제 68개월이 되었다. (2025년 3월 기준) 앨리스는 처음에는 아주 작은 놀이규칙도 지키기 어려워했으며 치료사가 놀이를 시작하려고 하면 도망가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잘 아는 놀이에 대해서는 놀이규칙을 스스로 잘 지키고, 다른 사람의 차례에는 참고 기다릴 수 있다. 놀이규칙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은 곧 또래들과도 상호작용놀이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앨리스는 익숙한 놀이를 할 때는 또래들의 놀이에 잘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규칙이 복잡하거나 잘 모르는 놀이를 할 때는 규칙을 무시하거나 자기 위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도가 필요하다.


상호작용놀이의 원칙

상호작용놀이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을 잘 지킨다면 그 어떤 놀이도 좋은 상호작용놀이가 될 수 있다.


-동작, 눈 맞춤, 소리, 단어 등을 이용하여 놀이 순서를 주고받는다.

-놀이 루틴을 3회 이상 반복한다.

-놀이 중 아동의 언어적/비언어적 단서를 읽는다.

-짧은 놀이를 연결하여 하나의 긴 놀이(레퍼토리)를 만든다.


상호작용놀이 진행 방법

기본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함께하는 규칙이 있는 모든 놀이는 상호작용놀이이다. 다만, 여러 가지 놀이를 할 때 아래의 규칙을 지킨다면 더 좋은 놀이 레퍼토리를 만들 수 있다.


-앉아서 하는 놀이(각성을 낮추는 놀이)로 시작하여 활동반경이 큰 놀이(각성을 올리는 놀이) 순으로 배치한다.

-앉아서 하는 놀이의 경우 아이를 침대/소파/빈백에 눕혀서 진행한다. (편안한 환경 조성)

-놀이를 완전히 끝내기 전에는 앉거나 누워서 하는 놀이로 다시 각성을 낮춘다.

-새로운 놀이를 시작할 때는 절차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으로 시작하여 익숙해지면 복잡한 규칙으로 바꾼다.

다음 중 상호작용놀이가 아닌 것은?

상호작용놀이는 특별히 놀이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놀이이다. 하지만 상호작용놀이가 아닌 것을 상호작용놀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수많은 놀이 중 상호작용놀이가 아닌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


▶역할 놀이

역할 놀이는 얼핏 보면 상호작용놀이처럼 느껴진다.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둘 이상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할 놀이는 내가 아닌 다른 자아가 되는 놀이이다. 반면 상호작용놀이는 지금 내가 여기서 하는 놀이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자아가 되는 놀이는 상대가 있어도 상호작용놀이라고 할 수 없다. 띠라서 양육자는 상호작용놀이 시간에 아이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생명체나 물건)인 것처럼 연기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하지만 역할 놀이도 아이의 발달에 꼭 필요한 놀이이므로 상호작용놀이 시간이 아닐 때 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


▶상대방이 필요 없는 놀이

상호작용놀이는 보통 신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장난감이 있는 놀이는 상호작용놀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난감이 있어도 놀이 상대가 필요한 놀이는 상호작용놀이이다. 다시 말해 놀이 상대가 필요 없다면 상호작용놀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블록놀이는 상호작용놀이일까? 블록을 이용하여 특정한 모양을 만드는 놀이는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만들어도 상호작용놀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놀이 상대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블록으로 탑을 쌓고 다른 사람이 블록을 던져서 탑을 쓰러트리는 놀이는 어떨까? 이 경우 놀이 참가자 사이에 주도권이 오고 가서 놀이 상대가 없다면 놀이가 성립이 안 된다. 그래서 상호작용놀이가 맞다.


그렇다면 그리기와 만들기는 어떨까? 그리기와 만들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활동이라 상호작용놀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그리기나 만들기를 하며 놀이 주도권을 주고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보드게임은 어떨까? 준비물이 있는 놀이지만 1인용 게임이 아닌 이상 주도권을 주고받을 놀이 상대가 필요하므로 상호작용놀이가 맞다. 아이의 나이가 점점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상호작용놀이에서 보드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상호작용놀이의 예시는 유튜브 마이레인보우베이비 채널의 재생목록 <상호작용놀이>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myrainbowbaby


※상호작용놀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완전한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경우, 네이버 블로그 마이레인보우베이비에서 매달 모집하는 <상호작용놀이 챌린지>에 참여할 수 있다.

http://blog.naver.com/myrainbow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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