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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맘 뤼 Dec 02. 2024

자폐 완치 사례가 대부분 허구인 이유

자폐 성향 존중하기 (2)

앨리스가 자폐스펙트럼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에 내가 가장 열심히 했던 일 중의 하나는 인터넷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본 것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자폐 완치 사례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자폐에 대해서 잘 모르던 내가 충분히 혹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 영상이나 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폐 완치 사례를 전혀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폐는 질병이 아니라 신경발달장애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질병이 아니다. 특정 원인으로 인해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다른 질병과는 달리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의 발달 상태와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질병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이 처한 특정 상태(신경발달장애)로 보아야 한다.    

  

주류의학에서는 공식적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치료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자폐 치료법들은 다 무엇일까? 사실 자폐 치료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며 근거기반치료라고 알려진 ABA를 비롯해 모든 발달치료들은 아동의 생활적응능력 및 사회성 향상에 도움을 주는 교육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아이가 아무리 치료를 많이 받아도 자폐를 치료할 수는 없다.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적인 치료와는 근본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널려있는 자폐 완치 후기는 거짓일까? 요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장내 미생물 치료나 경두개자기자극술(TMS)와 같은 치료들은 효과가 없는 것일까? 나는 의학자가 아닌 일개 양육자이며 현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모든 자폐 치료들의 효과에 대해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치료를 했든 간에 적어도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완치 후기라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자폐 완치 후기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 

첫 번째 조건은 자폐 진단을 내린 의사와 자폐 완치 판정을 내린 의사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에는 진단 검사가 있지만 정신과 전문의의 임상적 판단이 검사 결과 그 자체보다 진단에 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같은 진단 검사 결과를 가지고도 정신과 전문의들 사이에서 자폐 진단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앨리스의 경우만 하더라도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진단을 내렸던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가 모두 있었다.)      


따라서 특정 치료행위가 자폐 완치에 영향을 끼친 것인지 아닌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폐 당사자가 특정 치료를 하기 전에 그에게 자폐 진단을 내렸던 의사와 특정 치료 이후 자폐 완치 판정을 내렸던 의사가 반드시 동일 인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자폐 완치 사례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두 번째 조건은 자폐 완치 사례에서 내세우는 자폐 완치의 기준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을 궁극적으로 해결한 상태를 의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음

-제한적 또는 반복적 행동 및 관심     


따라서 자폐 완치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두 가지 주요 증상(진단 기준)이 궁극적으로 해결된 상태여야만 한다. 그런데 자폐 완치 후기를 아무리 찾아봐도 자폐 완치 이후 자폐 당사자였던 아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현재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후기는 없다. 대신 대부분의 후기가 아이의 상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태는 아이의 눈 맞춤, 집중력, 소화력, 배변능력, 감각 예민, 학습능력 등 아이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아우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여기에 언급된 아동의 건강 상태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이 좋아졌다는 것은 자폐가 치료된 것이 아니라 건강 혹은 사회적응능력이 좋아진 것이다. 대부분의 자폐 완치 치료 후기들은 이와 같이 자폐 완치 후기라기보다는 아이의 상태(적응능력) 호전 후기에 가깝다.      


2. 자폐인들도 마스킹을 통해 정형인을 흉내 낼 수 있다.

만약에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자폐 진단을 받을 정도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잘 안 되었지만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는 눈 맞춤과 말투가 자연스러워지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면 자폐가 완치된 것일까?     


사실 자폐인들도 마스킹(masking: 위장)을 통해 자신을 신경정형인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자폐인들은 성장함에 따라 마스킹을 연습하고 발달시킨다. 특히 여성 자폐인들이 더 그렇다. 그렇다면 마스킹을 잘하는 자폐인은 정형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는 영국 모델 크리스틴 맥기네스(Christine Mcguinness)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세 자녀가 모두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본인 또한 성인이 되어 자폐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BBC 다큐멘터리(Unmasking My Autism)에 출연하여 자신의 마스킹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항상 대화를 연습해 왔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신경정형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폐인들은 어마어마한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사례와 같이 마스킹을 매우 잘하는 자폐인은 타인이 보았을 때 신경정형인과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변에서 어떻게 그 사람을 바라보든 본인 스스로는 사회적 기준에 맞는 마스킹을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이미 받은 사람이 성인기가 되어서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잘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마스킹을 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완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사실상 모든) 사람들은 자폐를 치료하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폐스펙트럼장애와 함께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자폐스펙트럼장애와 함께 (필요하면 마스킹을 하면서)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자폐 완치 사례를 찾아보기보다는 성인이 된 자폐 당사자들이 직접 쓴 글이나 출연한 영상을 찾아본다. 세상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어도 직업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현재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생활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떻게 극복하는지 실제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찾다 보면 내 아이가 닮았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멘토 같은 분들도 종종 접하게 된다.      


따라서 자폐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나의 희망은 허구에 가까운 자폐 완치제가 아니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나는 자폐 완치 사례를 절대 믿지 않는다. 나의 희망은 자폐를 가지고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자폐인들의 존재다. 그들은 허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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