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차/볼리비아-페루] 야간버스 타고 패키지 투어하면서 국경 넘기
A.M.7:00
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싸고 호스텔 체크아웃을 했다. 조식 준비로 한창 분주한 호스텔 로비 한쪽에 캐리어를 세워 놓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7시쯤 초록 옷을 입은 한 남자가 호스텔 로비까지 친히 나를 모시러 들어왔다. 호스텔 앞에는 초록 버스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버스에 그려진 초록 옷 입은 라마가 양팔을 활짝 벌린 채 Eat, Sleep, Hop을 외치고 있었다.
이 버스는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페루 쿠스코까지 나를 모셔다 줄 페루홉(Peru Hop)이라는 야간버스다. 무슨 야간버스를 이 아침부터 타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이 바로 야간버스계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남미여행 출발 하루 전, 왕복 비행기표를 끊으면서 유일하게 미리 예약한 현지 교통편이 딱 2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페루홉이다. 비행기도 아니고 고작 야간버스 따위를 며칠이나 미리 예약한다는 것은 내 여행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볼리비아 비자 신청서류 중 하나가 출국 교통편 증빙이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신세계.
'페루홉? 어머, 이건 타야 돼!'
본래 야간버스 체질인 나는 여행을 다니며 꽤나 다양한 야간버스 회사들을 경험해 봤는데, 이런 서비스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일단 주요 숙소까지 픽업, 드랍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버스터미널에 갈 필요가 없다. 게다가, 야간버스 한 대당 가이드가 한 명이 따라붙어 승객들을 케어한다. 이 정도면 황제버스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버스의 마지막 승객이었던 나까지 탑승을 마치자 가이드는 각종 공지 사항과 하루 일정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바디랭귀지나 누군가의 통역에 의존해야 하는 보통의 야간버스와는 달리 가이드가 직접 영어로 설명을 해주니 모든 것이 명확하다. 뿐만 아니라 whatsapp 그룹 채팅방에 승객들을 모두 모아놓고 실시간으로 공지를 전달해 준다. 세심한 우리의 가이드는 혹여나 승객들이 버스를 잃어버릴까 차량번호가 적힌 카드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두도록 했다.
A.M.8:10
1시간쯤 달려 버스는 어느 주유소에 잠시 우리를 내려주었다. 본격적인 여정을 앞두고 화장실과 매점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너무 배가 고픈데 매점에 먹을 것이라곤 과자뿐이었다. 가장 큰 과자를 집었다. 부피가 너무 커서 버스에 타자마자 후회했지만, 이 과자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 야금야금 비상식량으로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무슨 야간버스에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이건 그냥 야간버스가 아니다. 페루홉은 볼리비아에서 페루로 국경을 넘어가면서 여행을 할 수 있는, 쉽게 말해 투어 결합 야간버스다. 가는 길에 포토스팟에서 잠시 하차도 하고, 코파카바나, 푸노, 아레키파 등 주요 관광도시에서 자유시간도 준다. 단체 점심식사, 태양의 섬 투어 등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며, 심지어 원한다면 중간에 1~2박 숙박 후 다음 페루홉 버스를 타고 가던 길을 마저 갈 수도 있으니 일종의 세미 패키지 투어라고 할 수 있겠다.
라파즈에서 쿠스코까지는 육로로 장장 15시간이 걸린다. 어차피 하루 버릴 거 고된 이동 길에 이렇게 중간중간 쉬면서 여행까지 시켜주다니 이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참고로, 대부분의 한국인 남미 여행객들은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볼리비아홉'을 타는데, 목적지에 따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대세를 거슬러 시계 방향으로 남미를 돌았기 때문에 '페루홉'을 타야만 했다.
A.M. 9:40
다음으로 버스가 정차한 곳은 어느 호숫가였다. 가이드는 모두 짐을 놓고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다.
San Pablo de Tiquina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육로 이동 수단이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모두 대기 중인 작은 보트로 올라탔다.
그리고 우리의 버스 역시 바지선에 올라탔다. 승객들도, 버스도 모두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이동시간은 체감상 대략 10분 내외 정도로 그리 길지 않았다.
가는 길에는 오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청량한 호수를 감상하면 된다. 윤슬이 쉴 새 없이 반짝이는 청록색 호수,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운 푸른 산, 새파란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반대편 마을에 도착해 있다. 그 잠깐 사이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남미 땅을 밟은 이래로 아타카마, 우유니의 메마른 사막만 떠돌다 마침내 남미의 촉촉함을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트의 목적지는 호수 반대편 마을인 San Pedro de Tiquina이다. 두 마을이 작은 호수를 끼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만큼 이름도 한 끝 차이다. 먼저 도착한 승객들은 아직 한창 호수를 건너고 있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오늘 하루 나와 놀아 줄 친구 물색에 들어갔다. 가장 만만한 타겟은 역시나 나홀로 여행자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승객 무리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오늘의 타겟을 찾아 나섰다. 페루홉에는 어딜 가나 한 명씩은 있다는 그 흔한 한국인 여행자가 없어 보였다. 아예 혼자 온 사람 자체가 없어 보였다. 그때 어디선가 외로운 동족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선착장을 혼자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오늘의 타겟 발견...! 내 또래로 보이는 그녀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었다.
"버스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거죠~?"
그냥 아무 말이나 던졌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일본인이었다. 내가 왜 너무나도 당연하게 한국어를 건넸는지는 잘 모르겠다.
"헉 스미마셍!!! 근데 혹시 너도 혼자 왔니~?"
A.M.11:00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1시간쯤 달렸을까. 가이드가 승객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라면서. 비몽사몽 한 채로 강렬한 햇빛 때문에 쳐놓은 커튼을 열어젖혔다.
'와! 바다다!!!'
잠이 확 깨는 풍경이었다. 버스가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내 자리 쪽 창문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바다를 보고 흥분한 옆자리 사람이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면서 핸드폰을 넘겨줬다. 사진을 찍으려니 창밖으로 나무들이 연달아 등장하다가 해안도로가 그대로 끝나버렸다. 감질맛 나는 풍경이었다.
버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화로운 바다 마을이 펼쳐진 뷰포인트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남해의 어촌 마을을 내려다보는 듯한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건 바다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바다다. 하지만 해발 3,812m에 바다가 있을 리 만무했다.
여긴 육지 속 바다다. 볼리비아와 페루 국경 사이에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호수이자 남미 최대의 호수인 '티티카카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아 만들어진 천연 호수인데 그 면적이 무려 8,300㎢, 감이 오지 않는다면 충청남도보다 약간 더 작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볼리비아에서는 이 호수에 해군을 주둔시킨다고 한다.
다들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코발트블루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바다, 수평선을 덮은 몽글몽글한 구름층, 그리고 애니 속에 등장할법한 평화로운 어촌 마을,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버스에서 그냥 스칠 뻔만 풍경을 잠깐이나마 내려서 감상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우리는 국경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의 항구도시, 코파카바나에 입성했다. 아무리 봐도 호수라는 단어가 영 어색하다. 바다인 듯 바다 아닌 바다 같은 너... 그냥 바다라고 불러도 될까.
A.M.11:20
버스는 우리를 어느 노란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승객들은 이 호텔 짐 보관소에 캐리어를 맡겨 두고 코파카바나에서 주어진 자유시간을 온전히 즐기면 된다.
이제 막 친구가 된 오늘의 여행 동지 사유리짱(이름을 까먹었다.)이 새로운 나홀로 여행객 다나카상(역시나 이름을 까먹었다.)을 소개시켜 주었다. 둘은 이 버스의 유일한 일본인으로, 코파카바나에 도착해서야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사유리짱은 단체 점심을 예약해 두어서 다른 승객 무리들과 함께 페루홉 연계 식당으로 떠났다. 다나카상은 따로 점심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1시에 '태양의 섬'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100% 자유여행을 택한 나는 점심 식사는 다나카상과, 오후 여행은 사유리짱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나는 다나카상이 생선을 좋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를 호숫가로 이끌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면 가끔 이상한 충동이 들 때가 있다. 나홀로 여행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의식하지는 않고 있을 때, 각자만의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멀찍이 맴돌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그 사이 투명한 벽에 기스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눈치게임처럼 누구 하나가 기스를 내주면 그 견고해 보이던 벽이 와르르 허물어지고 순식간에 서로가 연결되는 그 순간의 짜릿한 쾌감이 있달까. 나와 사유리짱과 다나카상도 불과 몇 초만에 남남에서 우리가 되었다.
나는 다나카상을 이 구역 맛집으로 유명한 송어구이 12번 집으로 인도했다. 엄연히 말하자면 한국인 맛집이다. 간판부터 한국어로 '송어 튀김 맛집'이라고 새겨진 것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겼다.
벽면에 붙은 거대한 메뉴판에도 메뉴 하나하나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누가 적었을까. 이곳의 시그니처는 송어구이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송어를 구워 소스를 뿌리고 밥과 감자튀김과 함께 주는데 이 별거 아닌 생선구이가 어마어마하게 맛있다. 매운맛, 레몬, 갈릭 등 종류도 다양해서 하나씩 시켜 나눠 먹었다.
포차 감성 가득한 식당에서 평화로운 항구를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낭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송어구이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건 아마도 다나카상 덕분일 것이다. 그의 다시다 같은 이야기보따리가 감칠맛을 더해 주었다. 그는 내 또래의 일본 언론사 기자였는데 해외 특파원 생활 중 휴가를 왔다고 했다. 그는 취미가 여행이라고 했다. 취미로서의 여행이라. 언젠가부터 나는 취미 목록에서 여행을 삭제했다.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지만, 연례행사 그 이상으로 자주 여행을 떠나다 보니 밥 먹고 잠자는 것처럼 일상의 일부로 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만 여행인 것은 아니니까 어찌 보면 여행은 사이클이 조금 긴 일상적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다나카상의 조금 특별한 여행 취향을 들어 보건대, 그는 여행을 취미로 꼽을 만했다. 그의 여행은 일상적 수준은 아니었다.
그는 여행경보가 뜬 나라들만 골라골라 여행을 다니는 것 같았다. 그에게 여행지 추천을 부탁했더니, 이라크를 추천했다. 귀를 의심했다.
"뭐? 이라크?"
이라크는 여행금지 국가가 아니었던가...? 그다음으로는 이란을 추천했다. 그 어디서도 추천받아 본 적 없는 이색 여행지였다. 미안하다. 내 여행 짬밥으로는 아마도 가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대개는 이미 다녀왔거나 언젠가 다녀올 예정인 곳들을 추천해 주기 마련인데, 그의 입에서는 아마도 영영 갈 일이 없을 여행지가 튀어나왔다. 그는 최근에 다녀온 n번째 이라크 여행 사진을 보여주면서 잔뜩 설렌 목소리로 이곳저곳을 설명해 줬다. 심지어 볼 게 너무 많아서 몇 번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삼삼한 송어구이가 이토록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자극적인 조미료 같은 다나카상의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태양의 섬 투어 시간이 다가와 그는 서둘러 식당을 먼저 떠났다. 그와 함께 찍은 셀카를 공유받는 것을 깜빡했다. 하지만 언젠가 이라크 여행을 좋아하는 일본인을 수소문한다면 그를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P.M.13:00
사유리짱과의 약속까지 시간이 떴다. 나는 이 동네에서 가장 힙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곳은 오직 여행자들만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여행자들의 기운을 받아 밀린 여행기를 적어보려고 했으나 좀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남미여행도 열흘쯤 되니 벌써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피곤한 글씨체로 몇 줄 끄적인 그날의 기록에는 몇몇 숙제만이 적혀 있었다. 남미여행의 추억을 담은 자작곡을 만들 것, 제발 날씨운이 좋아서 마추픽추 보기에 성공할 것 등등. 심지어 사유리짱과 다나카상의 본명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대충 시간을 때우고 오늘의 숙제 '코파카바나 전망대 오르기'를 해치우기 위해 사유리짱을 만나러 갔다.
사유리짱은 일찌감찌 약속 장소에 나와 항구를 구경하고 있었다. 페루홉에 다시 탑승해야 하는 5시까지 우리는 코파카바나를 한 바퀴를 돌아볼 예정이었다.
코파카바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면 전망대뿐이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이 작은 마을에 전망대 말고 다른 볼거리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코파카바나 전망대를 목적지로 찍고 가는 길에 지도에 관광지 표시가 붙은 곳들을 들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코파카바나 대성당이 나왔다. 다시 연예인 체험이 시작됐다. 한 가족 여행객이 우리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도대체 나를 왜 카메라 렌즈에 담으려는 것일까. 하긴, 내가 봐도 이 구역에서 동양인은 희귀템이긴 했다. 페루홉 버스에서만 봐도 그랬다. 그래도 참 묘한 일이다. 평범한 엑스트라 행인 1과 행인 2로 살아온 여자 둘이 어떤 세상에서는 하루아침에 특별 출연 게스트로 둔갑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우리는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인데 말이다. 대성당에서의 연예인 체험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둘러본 코파카바나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이 마을 또한 주민들에게는 평범하디 평범한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해발 3,812m에 호수를 품은 특별한 마을로 둔갑한다. 마을은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인데 말이다. 이 마을 주민들도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도대체 이 마을을 왜 카메라 렌즈에 담으려는 것일까 하고.
P.M.14:00
드디어 전망대로 올라가는 입구를 찾았다. 초입에서부터 가파른 경사가 우리를 압도했다.
우리는 느릿느릿 산을 탔다. 가벼운 언덕 산책을 상상했는데 경사로가 끝이 없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등산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고산지대다. 사람들이 전부 우리를 앞질러 갔다. 우리는 입으로 등산을 하느라 걸음이 가장 느렸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산만 타도 숨이 차는 마당에, 헉헉 대며 끊임없이 말을 하느라 숨소리는 가장 요란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발아래로 펼쳐진 마을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변해갔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경치를 감상하려고 아예 돌계단에 엉덩이를 깔고 철퍼덕 앉아버렸다. 그리고 또 수다가 시작됐다. 나는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에는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았다. 사유리짱의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여행에서 경치보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삶을 감상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20대 땐 나의 우주를 탐구하기 위해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면, 요즘은 낯선 이의 우주를 탐구하기 위해 나홀로 여행을 떠난다. 그때는 내 안에 내가 없어서 끊임없이 안으로 질문을 던졌다면, 요즘은 내 안에 내가 너무 커져서 밖으로 질문이 샌다. 내 안의 나는 호기심이 너무 강해서 가끔은 초면부터 질문 세례를 퍼붓는 실례를 범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주파수를 공유하는 이들을 만나면 신나서 안물안궁인 나의 우주를 구석구석 보여 주기도 한다. 사유리짱은 둘 다 당했다.
우리는 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일단 나이부터 동갑이었다. 그녀는 나와 나름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는 일본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너는 남미에 왜 왔어?"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물어봤다.
"미국에서 1년 동안 디즈니랜드 인턴십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미에 들렀어."
그녀는 적지 않은 나이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디즈니랜드 인턴십이라. 내 친구도 스무 살 무렵에 다녀와서 좀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대학생들 틈에 낀 소수의 할미였을 것이다.
"어, 나는 그때 프랑스에 있었는데!"
나도 비슷한 시기에 충동적으로 프랑스로 떠나 다 죽어가던 영혼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10대 후반, 20대 초반 친구들 틈에 낀 유일한 30대 할미였다. 사실 프랑스행은 나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우주의 부름' 같은 것이었다. 아마 그녀의 미국행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벼랑 끝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때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동아줄이 갑자기 눈앞에 뿅 하고 나타났을 것이다. 그 이끌림이 너무 강력해서 그 나이 먹고 쓸데없이 뭐 하러 가냐는 주변의 목소리 따위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이 결혼을 걱정할 나이에 혼자 죽어가는 영혼을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너는 어쩌다 남미에 오게 됐어?"
사유리짱이 물었다. 딱히 설명할 것이 없었다. 그냥 왔다. 남미에 온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뭐... 그냥 귀찮아서 몇 년 미루다가 갑자기 지금 당장 가야겠다는 충동이 들어서 하루 전에 비행기표만 사서 바로 왔어."
뭔가 뜻을 찾겠다든가, 리프레쉬를 하겠다든가 하는 여행의 이유가 딱히 없었다. 원래 결핍이 있을 때 여행이 땡기는 법이고 그때 떠나야 효용이 극대화되지만 나는 이미 현실에서 벅차오르는 삶의 충만함을 찾은 상태였다. 그냥 왔다. 남미에. 굳이 설명하자면 이 또한 '우주의 부름'이라고 해야 할까.
P.M.15:00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 날씨는 몇 번이나 변덕을 부렸다. 쨍쨍했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몇 방울 비를 뿌리기도 하고 다시 해가 나오기도 했다. 오르막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칠 만큼 지친 우리, 도대체 얼마나 남은 걸까 푸념이 시작될 때쯤 전망대 비스무리한 것이 나왔다.
역시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이다. 뭘 하든 그만두고 싶어질 쯤이면 어떠한 형태로든 숨구멍이 튀어나온다. '봤지? 이제 다 왔다니까?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말해주는 이 전망대 예고편처럼.
그곳에는 몇 마리의 라마인지 알파카인지 모르겠는 가축들도 있었다. 동물에게 외모 발언은 적절하지 않지만 이 라마는 확대해보지 않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무 귀엽게 생겼잖아...? 우리는 동물들을 구경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잔뜩 지쳐 보이는 우리에게 하산하는 사람들이 이제 진짜 다 왔다며 힘을 불어넣어줬다. 아마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다 갔을 것이다. 여기서도 연예인 체험은 계속 됐다. 어떤 여행자가 라마까지 셋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덕분에 풍경 사진만 가득했던 갤러리가 풍성해졌다.
반대편 하늘에서 왠지 불길해 보이는 먹구름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구름보다 빠르게 전망대에 도착하려면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둘러 다시 길을 나섰다. 마지막 구간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암벽 클라이밍을 하듯, 맨 손으로 바위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거의 기어올랐다. 기어 내려오던 남자 둘이 이제 진짜 다 왔다고 파이팅을 외쳐줬다.
"진짜? 다 온 거 맞아요? 알유슈어?"
그들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끝도 없는 계단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길래 이토록 가는 길이 고될까.
"다 왔나 봐!!!"
마침내 평지길이 등장했다. 입을 다물고 등산에만 전념하여 먹구름 떼보다 조금 빨리 정상에 도착했다. 아직 파란 하늘이 남아있었다.
"와!!!!!"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 해발 3,812m에 바다가 있었다. 호수라기에는 너무 거대한 바다를 닮은 항구에 작은 배들이 잔잔한 물결을 타고 있었다. 험한 산을 탐험하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 조용히 숨어 고요함을 유지해 온 비밀의 마을을 발견한 느낌?
이 전망대의 포토스팟은 납작 바위다. 이 평평한 바위 위에 등을 깔고 누워 신선놀음을 하면 물아일체 샷이 완성된다. 신선놀음을 더 하고 싶었지만 뒤늦게 도착한 먹구름이 비를 흩뿌렸다.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처럼 새까만 구름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하산을 했다. 그날따라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다. 돌아가는 길에 몇 장의 가족사진이 더 생겼다.
돌아가는 길 우리는 또 입으로 산을 내려갔다. 사유리짱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그 재밌는 이야기들을 영영 듣지 못할 뻔했다. 역시 여행에서 후회는 '왜 괜히 말을 걸었을까'가 아니라 '왜 진작 말을 걸지 않았을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 만남을 운명으로 정의했다. 각자의 우주에서 궤도를 돌다가 한날한시에 볼리비아도 아닌 페루도 아닌 그 국경 어딘가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서 만난 희박한 확률만으로도 운명을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P.M.16:10
우리는 짐을 맡겨 둔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페루홉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호텔 정원을 돌아다녔다. 먹구름은 온데간데없고 호수는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태양의 섬 투어도 하고 어촌마을을 닮은 호수마을에서 1박을 하고 갔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원래 아쉬울 때 떠나야 하는 법이랬다.
호텔 정원에는 엄마 알파카와 새끼 알파카가 있었다. 알파카들은 나의 카메라를 의식했다. 도대체 왜 자기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 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쉬운 마음에 코파카바나 마그넷을 사야겠다 싶어 호텔 직원에게 기념품 가게를 물어봤다. 모른다고 했다. 지도에도 검색되는 게 없긴 했지만 진짜 없을 리가 없었다. 남은 시간은 마그넷 찾아 삼만리에 할애하기로 하고 거의 모든 가게를 다 들어가 봤다. 기념품 가게는 없었지만 어느 옷가게에서 마그넷을 발견했다. 비록 못생긴 마그넷이었지만 이것도 추억이니까.
페루홉 버스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진짜 페루로 떠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인터넷이 끊겼다. 국경을 넘은 모양이었다. 유심칩을 갈아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유심핀이 없었다. 그나마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뾰족한 것이 볼펜이었다. 볼펜으로 작은 구멍을 열심히 찔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내 눈앞에 귀걸이가 뿅 하고 나타났다. 반대쪽 창문에 앉은 여자였다. 낑낑대는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나 보다. 조용히 자신의 귀걸이를 빼주는 이 눈물 나게 따뜻한 세상...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우리를 국경사무소에 내려 주었다. 가이드에 안내에 따라 우리는 차례대로 출국 심사를 받고 다 같이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드디어 페루에 도착했다.
볼리비아 돈을 털기 위해 너도나도 국경의 노점에서 쇼핑을 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뻥튀기밖에 살 게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뻥튀기가 이렇게 글로벌한 과자(?)였다니.
입국 심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진짜 야간버스에 탔다. 코파카바나에서 다들 열심히 돌아다녔는지 모두 곯아떨어졌다. 고요한 버스는 해가 지자 버스는 한층 더 안락한 수면실로 변신했다.
P.M.8:30
밤이 되어 버스는 푸노라는 도시의 어느 호스텔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쿠스코까지 더 이동할 사람들은 호스텔 로비에 옹기종기 모여 갈아 탈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너무 배가 고픈데 페루홉 패키지 투어에 안타깝게도 저녁식사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밥 먹을 시간조차 충분치 않아 나는 사유리짱, 다나카상과 함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호스텔 옆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 세트를 포장했다. 주인 여자가 자식들을 먼 길 떠나보내는 엄마처럼 정성을 다해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던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남미는 정말 따뜻한 동네다.
9시 반쯤 아까보다 훨씬 거대한 2층 버스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가이드도 바뀌어 있었다. 드디어 진짜 야간버스에 탔다. 나는 다리를 쭉 펴고 자기 위해 버스 2층 맨 앞자리 로드뷰 자리로 향했다. 전망대 때문에 진이 빠져서였을까 45도밖에 안 젖혀지는 버스 의자가 너무나도 편안했다.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해치우고 눈을 감았다.
너무 깊이 잤는지 눈 떠보니 이미 쿠스코였다. 새벽 5시, 한참 더 자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각자의 숙소로 데려다줄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사유리짱과 나는 작별인사를 했다. 마추픽추에 함께 올라가면 좋았을 텐데 하루 차이로 일정이 엇갈렸다. 사유리짱은 무려 곧바로 마추픽추에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아니, 그게 가능하다고...?'
그래 뭐, 나 또한 만만치 않은 강행군을 앞두고 있었다. 여행 중에는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곤 한다. 모든 게 가능하다.
A.M.05:30
미니버스는 아르마스 광장에 나를 내려주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쿠스코에 캐리어 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우유니 사막에서 만난 동행의 추천을 받아 예약한 호스텔로 가는 길. 그녀의 말처럼 정말 아르마스 광장 코 앞에 위치해 있었다.
쿠스코가 깨어나기 전 고요한 길거리. 지난밤 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는 몇몇 젊은이들만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미여행이 벌써 2/3쯤 지나갔다. 칠레에서도, 볼리비아에서도, 페루로 넘어오는 국경에서도, 혼자였던 덕분에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지막 국가 페루에서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게 될까. 부디 내가 스쳐가는 인연들을 알아볼 수 있기를. 그들을 놓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에 기스를 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