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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in Oct 25. 2024

내가 없으면 밥이 입에 들어 갈까?

아줌마가 밥을 짓는다. 미리 섞은 찹쌀과 현미가 들어간 쌀을  한두 번 씻고

정수기 물을 받아 쿠쿠밥솥 취사를 누른다.

29분 후 '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잘  저어 주세요' 소리가 나온다

아줌마가 아무 느낌 없이 밥주걱을  들고 가쪽에서부터 밥을  

잘 저어 준다.

맛있는 밥은 주인아저씨가 가장 먼저 먹게  된다.

아줌마는 거실로 글을 쓰러 간다


그때다. 갑자기 주방에서  누가 공적이 가장 큰가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방금 일을  마친  밥솥이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내가 없으면 어디에  쌀을 넣을 거야? 나처럼  첨단 공간이 없다고 생각해 봐? 고슬고슬한

밥이  어떻게 만들어지겠어? 누가 감이 나를  앞지를 수 있다는 거지?"

가소롭다는 듯이 전기선이 말했다.

"내가 전기 에너지로  에너지를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너는 밥통일  뿐이야

밥통주제에 무슨 큰소리?"


"치  그렇담 한전에 감사하는 게  더 빠르겠다. 정전이 되면 네가 무슨 소용 있냐고?"

밥솥이 지지 않고 말한다.


주걱이 기침을 한번 하더니

"밥이 다 되면  뭘 해?  날렵한 내가 밥을 저어주지 않으면  떡이지 그게 밥인가?"

밥솥옆에 서있던  흰색  주걱이 완고하게  얘기한다.

그때

싱크대 위 건조대 에서  작은 밥그릇이 낙랑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럼 주인님은 밥통째로 밥을 먹겠니? 밥그릇이  없으면  어디에  밥을 넣어  먹겠어?

웃기는 무생물들이야 나처럼 귀엽고 귀하게 생긴거 봤어? 봤어?  흥!


"거참  듣자 듣자  하니 못 들어주겠구먼 귀가 간지러워."

밥그릇 밑 싱크대 안쪽 작은 철망에 들어있는 초록 수세미가 말한다

"수세미로 그릇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계속  씻지 않고  

먹을 수 있나?  그렇게  계속 먹다가는  윽  생각만 해도 더럽다!"


식탁이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말한다.

"야들아 말 다했냐?  주걱으로  밥을  이쁜 그릇에 펐어,  어따 놓고 먹을것인디?

들고  먹을래? 서서 먹을래?

주인 와서 하는거 안 봤냐? 넓고  판판한 내 위에  태블릿 켜고 드라마 봅시 롱

여유 있게  밥 먹는 거  안 봤냐고? 나만큼 주인의 식사에  기여하는 것이  세상천지

어딨 겄냐? 안그냐?  식탁은 과학이여!"

식탁은  멀리 전라도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수저통속  은색 수저가 우아하게  말한다.

"제가 알맞게 가장 적당하게 밥을  담지 않으면  주인 입으로  어떻게  밥이 들어가겠어요?

주걱으로 먹으면  볼만하겠어요? 호호호! 아님 손으로 먹으면  되나? 야만인!



식탁옆 동그란 걸이에 걸려있던  키친 타월이 하품을 하며 거든다.

"수저 너는 더러운 거 그렇게 싫어하면서 식탁이  더러우면  거기 누워  있을 수  있겠어?

식탁 너는 아무리 넓고  판판하면  뭘 해?  과학이 뭐 어떻다고?    생각해 봐?

더러우면  누가 거기서 식사를 해?

내가 꼼꼼하게 구석구석  닦아  주니까 네들이  빛나는 거야  누군가를  반짝반짝해주는 게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야. 고상하지 않니?  보람 있고."

키친 타월의 말에 모두의 눈이 키친 타월을  존경스럽게 쳐다보았다.

키친 타월은  조상이 나무다. 그 나무는 책도 만든다.

그래서 키친 타월이 먹물이 좀 들어간 거 같다

똑똑해!


주인이 돌아왔다

주방은  평온하다. 모든 게 제자리를  잡고 있다

주인은 여느 때처럼 손을 씻고  자신만의 늦은 식사를  준비한다

행주로 식탁을 한번 닦고 키친 타월을 뜯어 한번 더 닦는다

주인은 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밥그릇에  밥을  담아  식탁에 올린다.

숙련된 손놀림으로 준비한 요리도 올려 놓는다.

태블릿을 켜서  지난밤에  보던 드라마를 이어서 보며  식사를 한다

다 먹은 후 만족한 얼굴로 설거지를 재빠르게  한다.

식탁에 앉은 주인은 드라마를 늦게 까지  보고  열두 시가  다돼 가면  씻으러 간다.

주인은 코를  너무 세게 푼다  그것도 여러 번. 욕실은  식탁에서 가까워

숨죽이고  있던 것들이 모두 귀를 막는다.

은색 수저가 아직  마르지 않은 몸을 흔들며  말한다."아이 더러워"

모두 쿡쿡 웃음을 참고 있다.

주인이 빨리 잠들기를 바란다. 그래야  남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마침내 주인의 코 고는 소리가 나자  주방의 식구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모이게 된다

끝나지  않을 얘기는 할머니가 화장실 갈 때  다시 살짝  그 치치지만  할머니

귀가 안 들리는 것을  어느 날  알게 된다.

밥그릇이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밥주걱이 자신이 귀여운 건 인정해 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밥주걱과  자주 부딪히면서  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화장실 가시던 할머니가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한 걸  알고

할머니가 나타나도 조금도 조용히 할 생각이 없는 것들이다.


이 얘기는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할까?

누군가의 배를 채워야 하는 무리들은 이 거룩한 일을 하기 위해 매일 논쟁하고

자기의 일을 해나간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도 할 줄 안다. 예를 들면  밥솥과 전기선은  이어 살고 있다

안 그러면 이 고요한 집에서 뭔가 부서져 나가야 할 판이다.


이 집 아줌마는 성격이 좋은  사람이다

한 번도 자신들을 탓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설거지를 할 때 빨리 하는 바람에  좀 어지러운 거 빼고는 깔끔하고 청결하게

유지해 주는 편이라   이 집에서 오래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감들을 가지고 있다.

주걱이 싱크대 뒤로 자꾸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같은 주걱으로 교체되는 통에 감쪽같이 몰랐다.

자기들의 공로를 앞세우며 끝도 없이 잘난 맛에 살아가지만  혼자 살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기구가 없다.


오늘 밤도 주인은 코를 훌쩍이며  드라마를 본다.

주인은 곧 씻을 것이다  타이밍 맞춰 귀를 잘 막아줘야  한다.

주인이 불면증 없이 잘 자도록 기도도 해야 한다.

갱년기인지 자꾸 뒤척이면  우리는 모두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조용히 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다.

뭘  선택할 수 있었다면 싸우지도 않을 거다. 잘난 체 하는 꼴도 안 봐도 된다.

적당히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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