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1년 전쯤 읽었다. 주위에 책이 한 권
있었다.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고기를 안 먹겠다 선언하고 이상 행동을 하며 가족들을 곤란하게 한다
어린 시절 폭력 앞에 무기력했던 그녀는 억압된 그 상처들을 마주하게 된다.
언니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혜는 숲으로 가서 나무가 되려 한다
모든 폭력을 거부한다.
당시 책을 읽고 난 후 충격과 불편감을 떨쳐 내기 위해 빨리 잊었다.
그리고는 한강이란 작가님도 잊었다
출처:네이버
노벨문학상으르 다시 부상한 한강작가님.
한강 작가님의 책 중 '소년이 온다'를 읽어 보고 싶다.
내용은 모르지만 5.18을 다루고 있다고 들었다.
책도 구하기 힘들겠지만 심호흡을 좀 더 해야 읽을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한강작가님이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고 비슷한 또래로 내 어린 시절도 광주였다
< 나의 이야기 >
1980년 6학년이었다
변두리 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기가 시작된
이른 봄에 부모님을 따라 도시의 중심부로
전학을 가게 된다
9층짜리 하얀 교회 건물이었는데 거기 1층에 거주하게 된다
흰색 철문 안쪽으로 길게 들어가야 비로소 살림집이 나온다
시청과 광주역의 중간 지점으로 2차선 도로가 바로 앞을 지난다
교회 오른쪽엔 빈병들을 엄청나게 쌓아놓은 고물상이 있었다
9층 현대식 건물옆에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다.
도로 오른편으로 계속 가면 광주역이 나오고 거기에서 좌측으로 돌면
도청으로 향하는 큰 도로가 펼쳐진다
집 앞 왼편으론 시청과 mbc 방송국이 있었다
일요일이었을 거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
" 언니야 군인들이 사람들 다 때려죽인대 가보자"
놀란 눈동자엔 이미 호기심이 잔뜩이었고
나를 설득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광주역을 지나 도청 쪽으로 뛰었다. 흠칫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왔던 길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짐발이)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을 군인들이 곤봉으로 내리쳤고 그 사람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건너편 서석병원으로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가고 있었고 뛰어오는 길가에는 남자 구두 한 짝과
브래지어가 굴러 다니는 걸 보았다
다음날부터 동네 부녀들은 팥죽색 양동이에서 시원한 물에 담갔던 음료를 건넸고 은박지에 싼
김밥을 차에 올려줬다, 1톤 트럭뒤에 탄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그것들을 받았다.
당시 성인이었던 큰오빠와 고등학생이었던 작은 오빠가 언제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없다
작은 사무실에 출근하던 둘째 언니를 아버지와 막내 작은 아버지가 회사에 가서 데리고 왔다
근처에 mbc방송국이 그 시간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다. 집에서도 보였다
사실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방송국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다음 날 아침
집 앞 도로는 은빛으로 유난히 반짝였다.
햇빛에 눈부실 정도로 빛나던 정체 모를 형체들.
다가가서 본 그것들의 실상은 옆집 고물상의 병들이 깨지고 그위를 차들이 달린 결과물이다.
빛을 받아 아름다웠고 현실이 아닌듯한 묘한 느낌이었다
열흘 정도의 섬뜩이는 소요는 끝이 나고 있었다.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긴장감이 온 도시를 삼키고 있었다
총기를 가진 사복 입은 시민군들이 교회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녁 6시쯤이었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자리가 싸우기에 유리하다 판단한 것 같다
우리 가족들은 시민 군들의 충고에 따라 저녁을 먹고 도로가에서 떨어진 이모집으로
피난을 갔다
새벽 총소리에 좁은 잠자리까지 어떻게 아침을 맞이했는지 모르겠다
오후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무서웠지만 대문에 들어서면서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군인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며 재빠르게 대문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마지막날 지프차에 대형태극기로 동생의 시신을 덮고 메가폰을 들고 호소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외면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으로 와서 살면서 광주는 꺼내지 않았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다
아니 못 읽을 것도 같다.
폭력의 현장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단장을 했겠지만
어린 나는 언제든 그때 그 현장으로 갈 수 있다.
살아남아 있는 부채감도 있다
상처와 피해의식을 논하며 살지 않았지만
움츠림은 늘 도사렸다.
그해가 다 가기도 전에 우리 가족은 다시 변두리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