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심한 건 불안장애 쪽이다. 이 정도 불안장애가 있으면 내가 먼저 고백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저 사람 뭔가 문제가 있구나.’하고 짐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불안장애가 있다고 밝혔을 때 친구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역시, 그래서 그랬던 거였구나.’하고 풀리지 않았던 실마리를 드디어 찾아낸 것 같은 반응들이었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먼저 고백할 필요는 없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밝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혼자만 알고 있어야지.’하고 꽁꽁 숨겨놨던 비밀을 나도 모르게 술술 불어버리는 날이 있듯이 내 불안장애도 어쩌다 보니 친구들 앞에서 경계심 없이 후루룩 말해버린 날이 있었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내가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하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게 된 상황보다 더 기이한 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 두 명 또한 내 얘기를 듣고 격한 리액션을 보이며 “야, 너두? 야, 나두!”라고 외친 것이었다.
정말 의외라고 생각했다. 두 친구는 나와 다르게 극 E인 MBTI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니.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예상에도 없던 정신과 토크를 하며, 어떤 약을 먹고 있고, 어떤 상담을 받고 있고, 증세가 많이 좋아져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등 실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 누구도 정신과 다닌다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의 도움을 받으니 훨씬 낫다고 공감해 주며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잘했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결국엔 우울도, 불안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겪는 인류 공통의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많은 위안이 됐던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다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훨씬 가볍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세 사람이 신나게 정신과 토크를 하고 나니 정말 정신질환이 ‘마음의 감기’ 정도로 느껴졌다. 하지만 원치 않게 내 정신질환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거나 들키게 되면 그것처럼 당혹스러운 일도 없는 거 같다. 나는 두 번 들킨(?) 적이 있는데, 한 번은 직장상사에게, 한 번은 엄마에게 들켰다.
직장상사는 내가 약 먹는 걸 보고 무슨 문제가 있구나 짐작만 하고 있다고 말을 건네주었다. 그 뒤로는 딱히 언급이 없어서 찜찜하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는데 문제는 엄마에게 들킨 일이었다. 가족에게는 웬만하면 정신과를 다닌다고 말하기 싫었던 게 첫째, 걱정을 너무 할까 봐, 둘째, 정신과 다니는 걸 정신력이 약해서라고 생각할까 봐, 였다. 어느 날 엄마는 내 가방에서 뭔가를 찾으시다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달려 나오는 정신과 약봉투를 발견하셨다. 매일 3포씩 먹는 3주 치의 분량이어서 잠깐 먹고 마는 감기약이나 위장약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당황을 잘하고 당황하면 백지화가 돼버리는 나는 당연히 순발력이 제로에 수렴하여 결국 그게 정신과약이라는 걸 실토하고 말았다.
무슨 약이냐는 질문에 나는 불안장애약이라고 고백했다. 앞에 쓴 적이 있지만 엄마도 나와 같이 얼굴이 붉어지는 신체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이거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서 약까지 먹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실 것 같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홍조를 인싸력으로 모두 극복하고 일상생활을 너무 잘하시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엄마는 엄마도 얼굴이 똑같이 빨개지지만 다 극복했다, 굳이 정신과까지 다녀야 하냐,라고 내가 걱정돼서 하는 잔소리를 퍼부으셨다. 예상한 대로의 잔소리에 불효녀 모드로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말을 못 한 거 아니냐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증상들을 줄줄이 나열하고 나서야 엄마는 잠시 말이 없으시더니 정신과 다니는 나를 일단은 받아들이기로 하신 것 같았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그걸 굳이 약까지 먹어야 되냐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불안장애를 고백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오피셜 한 관계의 사람들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유대감이 있고 친한 관계에서도 반드시 밝힐 이유는 없다. 나는 나를 오래 봐온 친구들이 말은 안 했지만 나를 잠정적 불안장애 환자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장애를 밝혔을 때 위화감이 전혀 없어서 편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있다.
나는 내가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내 불안장애를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겨주면서도 내가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하거나 내가 힘들 거 같은 상황이 되면 내게 먼저 그 상황에 대해 공유해 주고 괜찮은지 의사를 물어준다. 불안장애는 회피가 아닌 대면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최대한 몸으로 부딪혀 보려는 중인데, 친구들은 내가 불안장애가 있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까지도 알기 때문에 내가 약간 어색하게 뚝딱거려도 그러려니 해준다. 어쨌든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나를 배려해주는 중이다.
하지만 오피셜 한 관계에서 정신질환 밝히는 걸 굳이 말리는 이유는 그게 어떤 ‘핑계’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불안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로 인해 주변에 의도치 않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어디서든 내 1인분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인데, 내가 1인분을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내 몫까지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내게는 정말 힘든 이 정신질환이 다른 사람에게는 ‘핑계’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한 아르바이트생이 잘못하면 매니저가 모든 아르바이트생을 집합시켜서 혼내는 시스템이었는데 유독 한 친구가 자주 지각을 하고, 업무 시간에 자리를 계속 비우고, 업무 지시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단체로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와는 SNS 맞팔이었는데 매일 밤 술 먹고 놀러 다니는 포스팅을 올리고 다음 날 제시간에 출근 못 해서 다 같이 혼날 때마다 속에서 얼마나 화가 들끓던지. 결국 그 친구는 자기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피해를 입는 것 같다며 일을 그만둔다고 했는데, 그 친구가 그만두면서 했던 말에 모두들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게 기억난다.
“사실은 우울증이 있어서 그랬어.”
나는 그 친구의 단편적인 모습들밖에 보지 못했다. SNS에 올린 매일 밤 술 먹는 모습, 본인을 돌보지 않는 자기 파괴적인 썰들, 업무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까지. 분명 그 친구도 그 친구만의 고충이 있었을 테지만 주변을 너무 고생시킨 탓에 그 친구의 우울증은 그 친구가 지고 가는 십자가의 느낌보다는 구실 좋은 핑곗거리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종종 나는 그 친구 생각이 난다. 회사에서 일할 때 불안장애 때문에 얼굴이 빨개지고, 땀을 뻘뻘 흘리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이 1인분을 못하는 그 친구의 모습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완벽하게 1인분의 인생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얼추 1인분을 살아내려는 노력은 해줘야 정신질환도 너그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때때로 든다.
어쨌든 가만히 흘러가는 대로만 산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내 몫의 인생을 살아야 우울증과 불안장애도 점점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주변이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 정신질환에 대한 고백은 우선 전문가에게 가장 먼저 해보고, 내가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내 한 몸을 챙길 수 있을 때, 유대감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정도만 돼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