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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키 Okeiki Oct 18. 2024

#3: 시험관하니 보이는 것들

카후나의 난임일기

며칠 전 시험관 1차를 준비하는 친구를 만났다.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 뭐가 가장 힘들었어?” 

“외로웠어.”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벌써 답하고 있었다. 


평소 누구보다 말이 잘 통하는 남편과도 시험관을 하는 중엔 먹통이 되는 상황이 잦았다. 하루는 과배란 기간에 초음파를 보고 나와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난포(채취할 난자가 될 후보들)가 3개밖에 안 보여. 적어서 어쩌지?ㅠㅠ” 

“오케이.” 


세상에나, 어떻게, 이렇게나 말이 안 통할 수 있지? 실망이 가득해 보낸 문자에 오케이라니. 


시험관을 하는 건 분명 우리 둘이 맞는데, 치료의 주체도 나, 주사를 맞는 것도 나, 진료를 받고 몸이 변하는 것도 온통 다 나,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구성하는 행위가 다르니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기대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다들 힘들지 않냐며 위로만 하려 했다. 그게 아니면 주사는 안 아픈지, 멍은 안 드는지, 이런 것만 물어왔다. 당시 내가 필요한 건 위로보다 응원이었다. 지금 잘하고 있다는 응원 메시지를 받고 싶었다. 어떤 친구들은 시험관을 하고 있는 내 상황을 여러 번 말했음에도 자연 임신이 될 수 있으니 한 번 해보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난임 치료를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친구들과의 대화는 계속 겉돌았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겉도는 대화가 계속 되다보니 자연스레 연락하는 횟수가 줄었다. 


속 이야기를 아무와도 못하는 답답한 상태로 금세 시험관 6차수가 되었다. 이쯤 되니 내 속을 뒤집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더는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저 이번 차수 잘 될까요? 난포는 잘 자랄까요? 이런 불안한 마음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단박에 나아질 것 같은 마음이었다.


끙끙 앓다가 인터넷 시험관 카페에 마음을 담아 긴 글을 올렸다. 처음으로 인터넷에, 불특정 누군가에게 쓴 게시물. 한 시간을 공들여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감정을 나누고 싶다고 썼다. 일주일간 읽은 사람은 600명이 넘었지만 단 두 명만이 간단한 댓글을 써주었다. 카페에선 정보공유는 활발했지만 감정공유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를 기웃거리다 오픈채팅방이 있다는 게시물을 보았다. 행동파답게 바로 찾아갔다. 그 곳에 50명이 모여 있었다. 주로 정보 공유를 위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잇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위안이 있었다.


현재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 기쁜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곳에서 마음을 나누고 지내며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내 기분이 칙칙한 게 지극히 정상이구나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른다. 


채취 후 마취에서 막 깨어나 채취 개수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나 이제 막 이식하고 난 2~3일차의 불안감 같은 것을 나눌 수 있다니. 없던 자매가 생긴 기분, 외국어로 말하다 모국어로 말했을 때의 후련함을 느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 그 기분! 


그 날 이후로 답답함과 우울함이 쌓일 때마다 오픈채팅방에 문자를 남겼다. 


카후나: 아침부터 처지는 이야기지만 저는 채취 이후 가장 멘탈이 힘들더라고요. 할 때마다 그러네요ㅠㅠ 나쁜 결과가 학습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호르몬 변화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어지는 목요일 아침입니다. 어젯밤에는 이상하게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잠도 거의 못 잤네요. 이번 차수는 꽤 잘 넘어간다고 했는데 쉽게 지나가는 차수란 없나 봐요 저에겐. 


댕냥이: 힘드신 마음 당연하다고 봐요… 마음잡기가 말이 쉬운 것 같고요ㅜ 그래도 노력의 결실이 올 거예요! 


희망: 힘내세요ㅜ 전 이번 8차인데 매번 채취 때마다 힘든듯해요.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고 인터넷 카페엔 발길을 끊었다.


그 전엔 카페에 있는 모든 글을 두 번 이상 읽었고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될 내용이 있을까 새벽 2~3시까지 서성이며 댓글까지 모두 독파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불행한 사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꼬박 글들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좋은 일은 생각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데도 그런 일들은 그 곳에 올라오지 않는 다는 것.


카페에 있는 글만 읽다가 그게 시험관 세계의 현실인 줄 알고 그동안 불안만 키워왔던 나를 마주했다. 


당시 친한 친구의 임신 소식도 상처가 되어 울던 때였는데, 오픈채팅방 동료들의 임신은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다. 그간의 슬픔을 잘 아니까.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서 “누군가의 슬픔을 알면 질투하게 되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지난 2년 간 가족, 친한 친구들보다 더 의지를 많이 한 동료들. 그분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우울하게 고립되어 있었을지.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응원해 준다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 사람을 살리는 일인지 그 전에는 몰랐다.


시험관을 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보게 된 것이다.

말이 통하는 동료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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