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를 만드는 카후나의 난임 일기
임신, 마음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어찌나 자신만만했던지.
임신을 계획하고, 처음 6개월은 자임(자연임신)을 시도했다. 당시 남편의 직장은 북경. 매달 김포-북경 비행기를 타느라 돈도 엄청 썼던 기억이 있다(그만큼 절실하게 임신을 바랐다). 배란 테스트기도 참 열심히 챙겼다.
자임 시도 다섯 달, 여섯 달이 지나자 검색창에 자동으로 ‘난임’을 입력했다. 검사라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검사 받는게 무서워서,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네며 내가 나를 꼬셨다.
“건강검진처럼 받고 나면 안심이 될 거야. 별문제 없을 거야”
난임 병원의 첫 인상은 ‘저출산 시대가 맞다고?’ 였다. 사람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대기자 이름이 나오는 모니터에 내 순서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병원에 비치된 잡지와 브로슈어를 다 읽을 때쯤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초음파실로 들어서서 질 초음파로 자궁과 난소의 건강상태를 살폈다. 채혈도 했다. 피검사로 난소와 뇌에서 임신과 관련된 호르몬이 적절하게 분비되는지 본다고 말했다. 눈물이 핑 돌게 아팠던 나팔관 조영술로는 양쪽 나팔관이 막혀 있지 않는지 확인했다. 검사를 마치니 일주일 후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며, 내원하라고 안내했다.
원무과에서 진료비를 결제하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흠. 난임 병원은 다른 병원들과 좀 다른데’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듣게 되는 부드러운 말투, 그 말투를 계속 듣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간호사분이 참 친절했다. 처음이라 모르는 거 투성이인 나에게 다정한 말투로 세심하게 설명해주신 덕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질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총 세 군데의 난임 병원을 다녔는데, 모두가 그러했다. (물론 병원마다 다를 수 있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병원에 방문해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1분 정도 집중해서 모니터를 보던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카후나 님, 특이 사항은 없어요. 그런데 자연임신 하시기에는 나이가 많으시네요.”
당시 내 나이 38세. 한 번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나이 때문에 기죽어 본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읽으신 선생님이 나이별 임신 확률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자료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편 검사는 뭐가 이리 간단해?]
남편의 검사는 간단했다. 혼자 티브이가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 평소 하던 대로 정자를 채취하고 제출하는 방법. 물론 남편에겐 심리적으로 불편한 경험이었겠지만 내가 받은 검사보다는 간단하고 아프지도 않았다는 게 좀 억울했다. 등짝을 괜히 한 대 세게 때렸다. 그래야 마음이 좀 풀릴 것 같았던 그 기분. (그거 아시지요?)
남편이 북경으로 돌아가고 일주일 뒤, 혼자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 나의 결과를 기다리면서는 꽤 떨렸는데, 남편의 결과는 당연히 좋겠지, 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비뇨기과 의사 선생님은 아무런 말 없이 오랫동안 모니터를 보시더니 말을 고르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적어도 너무 적은 숫자의 정자만 찾을 수 있었다, 라며 당장 시험관을 권한다는 이야기였다.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영어가 잔뜩 적혀 무슨 말인지 당췌 알 수 없는 결과지를 받아 들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계단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워 뭘 느껴야 할지도 몰랐다. 이때 알았다.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슬프지도 않고 눈물도 나오지 않는 그저 멍한 상태.
그렇게 한 시간쯤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제야 남편에게 결과를 어떻게 전할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고민하다가 내 결과도 아니니 최대한 병원에서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일단 결과지를 스캔해서 이메일로 보내고 전화를 했다.
“놀라지 마.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희소 정자증이래.”
진료실에서 들었던 그 말을 그대로 편집하지 않고 전했다. 남편은 마흔셋 나이에 처음으로 자신의 몸에 대해 알게 된 사실에 놀란 것 같았으나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죽는 것도 아니고,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고. 이때, 남편의 의연함에 굉장히 놀랐다. 사람이 이렇게 담담할 수 있다니.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남편은 당시 부정의 단계였던 것 같다. 남편은 한 번 더 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우리는 바로 다른 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서울에서 제일 큰 대학병원을 찾았다. 오히려 이때 우리는 정자를 한 마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둘 다 당황해 귀까지 새빨개졌다. 정신없이 바쁜 대학 병원 대기실 소음 속에 앉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난임 병원에서 조직검사와 염색체 검사까지 마치고 알게 된 사실은 오직 시험관 시술로만 임신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난임 커플이 된 우리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시험관까지 하는데 ‘곧 임신하지 않을까?’, 뱃속의 희망이 뽀글거렸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시험관 1차 더 빨리 시도해! 한 달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나아.
AMH(Anti-mullerian hormone의 약자, 난소 나이를 알려주는 지표)는 숫자일 뿐이야. 집착하지 마. 이 수치와 난자 채취 개수는 비례하지 않아. 기죽을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