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 설국의 난임 일기
그동안 무럭무럭 자라 우렁차게 뛰고 있을 심장 소리를 들으려 병원에 온 우리는, 아기의 심장이 멈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 봐도 들리는 건 내 심장 소리뿐이었다.
아가는 6주차에 성장을 멈추고 이미 떠나 있었다. 초기 유산은 흔한 일이라며 대부분 염색체 이상이 원인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하루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치의는 조심스럽게 혹시 아이를 더 품어 보겠냐고 물었다. 조용하고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수술은 3일 뒤로 잡혔다.
수술 날짜를 잡은 바로 그 날 저녁부터 복통과 하혈이 시작됐다. 마치 우리가 자신을 보내기로 한 줄 알고 섭섭해서 먼저 떠나려는 듯, 밤새 배를 쥐어짜는 복통이 이어졌다. 하혈도 멈추지 않았다. 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끙끙 앓는 소리조차 참아내던 영겁의 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자마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예정된 수술 일자에 맞춰 내원하라는 답뿐이었다. 앞으로 이틀, 줄었다 커졌다 하는 고통을 참으며,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를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
이렇게나 아프고 괴로운 채로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무작정 영화관에 갔다. 어떤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은 즐겁고 조금은 아름다웠던 장면을 보며, 내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지만 좋은 기억만 안고서 다시 엄마 아빠에게 와 달라고 속삭였다. 집에 오는 길에는 장을 봤다. 새로 국을 끓이고 몇 가지 반찬도 만들었다. 아기 새처럼 작은 입에 넣어주고 싶었던, 내가 제일 잘하는 반찬들로만 상을 차렸다.
뱃속 아가를 보내던 날, 여전히 하혈이 있었던 탓에 일회용 속옷을 입고 수술대에 올랐다. 채취를 위해 이식을 위해, 오직 너를 만나기 위해 올랐던 수술대에서 눈을 감았다. 아마도 아이의 태명을 불렀던 것도 같다. 회복실에서 깨어나 보니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지혈도 잘 돼서 충분히 몸이 회복되고 난 뒤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탈의실에 들어서자, 누워 있을 땐 새지 않았던 뱃속에 고여 있었던 피가 왈칵하고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누가 볼 새라 황급히 탈의실에 비치된 물티슈와 휴지를 움켜쥐고 곳곳에 흩어진 흔적을 닦아냈다. 비었던 휴지통이 금세 피 묻은 휴지로 수북해졌다.
쪼그려 앉아 바닥을 훔치는 동안 마음만은 꼿꼿해지려 애썼다. 너의 마지막 모습을 누구에게도 흠 잡히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단 몇 주지만 우리는 부모였고, 남부럽지 않게 행복했다. 작은 존재가 얼마나 큰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 새 생명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됐다.
내 아이를 만나 다행이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축복이었다. 미처 보지 못한 너의 첫 옹알이, 첫 걸음마, 내 키를 훌쩍 넘기며 자라나는 모든 순간을 꿈꾸며 나는 몇 번이고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원망 대신 희망에 기대어, 우리는 여전히 너를 기다린다.
너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