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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닿은 시간

by 이윤지

“마지막에는 시골에 집을 짓고 농사지으며 살고 싶어. 가축도 키우고 연못도 만들고 과일나무도 심을 거야.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도 데려올 수 있도록.” 어릴 적 아빠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이 들면 누구나 하는 말쯤으로 생각하며 그 말을 가볍게 넘겼다.


그런 아빠가 외곽에 땅을 구해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상추, 오이, 고추로 시작해 콩, 가지,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수박까지 열 가지가 넘는 농작물을 키우셨다. 밭도 조금씩 넓혀 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아빠가 우리 가족을 텃밭에 초대했다. 다섯 살, 세 살 된 손주들에게 농사 체험시켜주기 위함이었다. 아빠의 두껍고 투박한 손과 내 아이의 작고 부드러운 손이 맞닿아 오이를 따는 순간, 나는 마음 한편에 따뜻한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하는 시간을 앞으로 더 자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아이가 아닌 아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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