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대함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24시간 잠들지 않는 브런치 책방의 문을 두드렸다. 새벽에 잠이 깬 적은 많지만 오늘같이 새벽시간에 갑자기 글이 쓰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라 낯설다. 모두가 잠든 고요함 속에 들리는 건 어항 물소리뿐인 지금이 글을 쓰기에 가장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태어나서 글을 써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니까. 내가 이곳의 문을 어떤 과정을 통해 처음 두드리게 되었는지 새벽시간을 빌미 삼아 좀 더 솔직해져보려 한다.
마음에 어둠이 드리우던 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으로 버텼다. "버텼다"라고 표현하는 데엔 정말 책을 읽는 동안에만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론 바쁘게 글자들을 읽고 머릿속으로는 그 내용에 대한 생각을, 귀로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을 책 읽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해야 티끌만큼이라도 마음에 공간이 생기니까. 책을 읽는다기보단 글자들을 열심히 읽어 내려간 시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감과 동시에 나는 내가 가진 돌덩이들을 하나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말로써 털어놓지 못할 마음이라면 최소한 글이라도 적어볼까?'
처음 접했던 소설을 시작으로 자녀교육서, 그리고 에세이 등 점점 다양해지는 책들 덕분이었을까 글로서 마음을 써 내려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보잘것없는 내 글을 읽어준다고 생각되면 그리도 고마울 수가 없었고,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감춰왔던 일들을 글로 풀어낸 나를 돌아보며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다. 글의 힘은 정말이지 위대했다. 더 과감해질 수 있는 곳이자 내 마음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든 나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곳. 차마 말로 하지 못하고 가슴속 깊숙이 묻어놨던 아픔들을 대범하게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곳. 나에게는 글을 쓰는 공간이 그런 곳이었다.
글로서 털어낸 만큼 내 안의 여유 또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중이다. 비록 처음엔 들키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돌려쓰기 바빴지만 매일 조금씩 써가다 보니 알게 된 사실 하나. '솔직함이 빠져버리니 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 왔던 지난날과 크게 다를 게 없구나.' 내가 쓰는 글이 점점 나아질 것이란 확신은 없다. 하지만 최대한 솔직한 내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것이란 말에 적어도 책임은 질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노트북 앞에 앉아 생각을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이 나는 너무 행복하다. 마음속에서 귀여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사이 내가 바라왔던 평안함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