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만 괜찮지 않아.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가장 먼저 누구에게 알리고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결혼 전의 나는 이런 상황 속에 가장 먼저 가족들로부터 모든 걸 숨겼다. 최선을 다해서. 이상하게도 가까운 지인들에게 털어놓았던 속마음을 가족들에게는 철저하게 숨겨왔던 것이다. 스스로가 느낄 때 나라는 존재는 아무 일이 없어야 하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졌을까? 우는 법을 잊어버린 한 여자에 대해 써보려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거리를 늘 항상 유지하며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서 말이다. 학창 시절 교내에서 작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성인이 된 후 혼자 해결하지 못할 일이 터졌을 때에도 독립을 하면서 가족의 품이 너무 그리웠을 때에도 늘 그 거리를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했다.
30대 초반이었을까. 첫째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듣고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다 마음이 뻥하고 터져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였다. 나는 30년 인생 통틀어 엄마에게 처음으로 넋 놓고 엉엉 울었다. 결혼에 출산까지 한 여자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고 있었다. "나 엄마 집에 갈래. 그냥 혼자 갈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 일을 계기로 달라진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항상 우는 것이 낯설었고 멀찍이 서서 '나 괜찮아요'라는 듯 손만 흔들고 있었으니까.
진짜 괜찮아지는 방법을 몰랐기에 마음속 병은 깊어져갔고 시간이 흘러 30대 중반이 되었다. 더 이상 숨겨선 안될 정도로 우울증이 깊어졌을 때까지 나는 쓸데없이 열심히였다. 가족들이 알지 못하게. 그 노력이 우습게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온 가족이 알게 되었을 때의 난 후련함이 아닌 마치 벌거 벗겨진 기분 그 자체였다. 무엇을 위해서 모든 걸 믿어주는 가족들에게 이리도 들키지 않으려 했을까? 반대로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주길 바랐던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이후 벌어지는 나의 모든 변화가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도 하고, 정말 힘든 순간이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동아줄이 내려오게 된다. 약의 힘을 빌어 스스로 나아졌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쯤 누군가의 추천으로 에세이라는 것을 쓰게 되었다. 단, 혼자만 볼 수 있고 모든 것이 내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지극히 자유로운 공간에서. 에세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글을 한 편씩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가족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만 적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손으로 내 마음을, 그리고 내 글을 가족들에게 공유하면서 거리를 좁혀갔다. 손만 흔드는 게 아닌 '여기 좀 봐주세요'라는 듯이 말이다.
그 후 말이 아닌 글로써 우는 법을 알게 되었다. 말만큼이나마 글로 옮겨지는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느샌가 가족들 곁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글을 통해 재잘거리면서.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엔 내 이야기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완전히 변하지 않기에. 근데 그러면 또 어떠한가. 최소한 이제는 스스로 멀어져 손만 흔드는 바보 같은 행동 따위 하지 않는 것을. 말로 하지 못하면 글로 하면 된다. 스스로 멀어졌다면 스스로 돌아오기 더 쉬울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