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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용순 씨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

by Yuni

성은 박이요, 이름은 용순이라는 우리 할머니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다. 아내도, 엄마도, 할머니도 아닌 평생을 용순 씨라고 부르고 싶은 내 사랑 용순 씨. 다른 이름으론 '욕쟁이 할머니'라고도 불리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여인인 그녀는 우리 가족 모두의 중심이자 알록달록 무지개 같은 4대의 끈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를 쓰는 공간인데 우리 용순 씨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하지. 그래서 나는 너무도 소중한 기억을 써 내려가본다.


세상에서 가장 깊지만 작은 두 눈을 가진 한 여자. 눈물이 정말 많은 사랑스러운 이 여자는 울기만 하면 눈꺼풀이 위아래로 달라붙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눈이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용순 씨 눈 달라붙으면 안 되니까." 라며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곤 했다. 여린 마음속에 어쩜 그리 다양한 욕이 한가득 들어있는지 그런 그녀를 볼 때면 이상하게도 왜 그렇게 안심이 되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용순 씨라는 애칭을 가족 중 나 혼자 쓰던 중에 우연히 그녀의 표정을 보게 된다. 웃음 속에 감춰진 기분 좋은 부끄러움이랄까. 그 순간의 종소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할머니도 여자구나.' 스스로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지면서도 뒤늦은 깨달음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선 곧장 향한 곳은 화려한 꽃과 핑크색 옷이 가득한, 누구도 쉽게 소화하지 못할 할머니 옷을 파는 옷가게였다. '우리 사랑스러운 용순 씨는 핑크색을 좋아하니까'라며 고른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디건세트 한 벌. 정말이지 돈이라고는 하나도 아깝지 않은, 설렘 가득한 마음에서 고른 선물이었다. 무사히 전달된 선물과 함께 그녀는 보답으로 꼭 달라붙은 두 눈을 보여주었다. 뭉클함과 함께 말이다.


내가 언제라도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게 늘 항상 두 팔 벌려 나를 향해 서있는 우리 용순씨. 결혼 전에도 출산 후에도 토끼 같은 아이들이 커서 재롱을 부릴 때에도 너무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녀 앞에선 언제나 내가 1번이라는 것을. 이것만큼이나 튼튼한 울타리가 존재할까? 나를 향한 온기를 항상 불어넣는 이리도 따뜻한 품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용순 씨만 만나면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던 것 같다.


'4대의 끈'이라 불리는 내 사랑 용순 씨. 이제는 소중한 그 이름을 그녀의 증손녀들까지도 너무나 달달하게 부른다. 그녀는 종종 말한다. 지금의 그녀에게 누가 이렇게 이름을 많이 불러주겠냐고, 이 나이에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냐고 말이다. 별 것 아닌 안부전화 한 통에 그녀의 마음속이 나를 향한 고마움으로 가득 차지 않도록 이제는 내가 먼저 두 팔 벌려 그녀를 향해 서있을 차례가 아닌가? 그녀 만큼이나 따뜻할진 모르겠지만 있는 힘껏 여린 그녀를 폭 안아주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용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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