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해도 괜찮아요
20대 초반의 나는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늘 그래왔듯 여기서도 이유는 없었다. 그저 혼자 밟아보고 맘껏 누려보고 싶은 곳이랄까? 너무도 막연했지. 그때 누군가의 속삭임에 내 귀는 끝도 없이 팔랑거렸고, 땡전 한 푼 없이 그곳을 밟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이럴 때 더 사랑스러운 엄마 아빠에게.
허락을 위한 PPT를 만들어 혼자서만 진지하게 발표를 했다. 매 달 생활비, 학비, 아르바이트 가능성, 언어문제, 안전문제, 기타 등 내가 조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적어서 말이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더 큰걸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무작정 밀고 나가는 딸이 어디 있냐고 뭐라 해도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멈출 내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오로지 영어에만 쏟아부었다. 내심 '여기 좀 보세요. 저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그렇게 나는 그토록 원했던 배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겁도 없이.
공부를 기대하고 지원해 주신 건 아닐 테니 부모님의 기대만큼이나 열심히 놀아보려 노력했다. 나름의 용기를 가지고 2% 부족한 'E'의 성향으로 탈바꿈하여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 것.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국의 서부에서 시작하여 동부까지 혼자서 밟게 된다. 가끔은 막연함이 주는 에너지를 부스터 삼아 앞뒤 재지 않고 나아갈 용기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건 너무 겁이 없는데? 싶은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배움의 시작점엔 무작정 밟았던 미국이 있었고 현재 진행형 중엔 매일 쓰고 있는 짧은 글들이 있다.
배움이 반드시 공부여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예상대로 공부는 못했음)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배운다는 건 종류불문 이유불문 그냥 푹 빠져하는 행위 그 자체이지 않을까? 강박을 이유삼아 책에 푹 빠져있을 때에도, 생각을 멈추기 위해 하루종일 그림만 그렸을 때에도, 다이어트 후폭풍으로 베이킹만 주구장창 했을 때에도 배움이라는 것이 가득하긴 했을걸? 그중 가장 큰 배움은 "나란 여자 참 중간 없이 집요하다."라는 거겠지.
철없고 겁 없던 때 내가 누릴 수 있었던 배움만큼 값어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복이겠지만 어두움 가득한 내 인생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딱 하나. 그것은 바로 무턱대고 배움의 시작점에 들어서서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마는 끈기. 미국 땅을 밟아보려 겁 없이 날뛰었던 20대의 나처럼 오늘의 나도 글로써 파닥거려봐야지. 집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