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머물다.
놀이공원을 다른 말로 "꿈과 환상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막연한 도전에 낯선 것들 투성이었던 20대의 나에게 또한 그러한 곳이 있었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 채워진 곳, 바로 공항.
타국생활엔 외로움이 항상 따른다. 스스로가 원해서 간 곳일지라도 혼자라는 것은 또 다르니까. 그런 낯선 타국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건 생각 외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국사람은 찾아볼 수도 없는 한적한 시골 동네였기에 새벽 일찍 큰 배낭을 메고 공항을 가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조용한 공항에서 바삐 움직이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해맑은 인사가 오고 가는 분위기마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때 필요했던 건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자유로운 여행엔 늘 실수가 함께 한다. 때는 자유로움의 끝이라 부를 수 있는 그곳, 라스베이거스에서였다.
게임이라고는 1도 모르는 내가 혼자서 갔던 여행이었고 신나는 발걸음에 귀만 열심히 팔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를 주워듣게 된다. 누군가 한국말로 속삭이며,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검정봉투에 소지품을 들고 다니면 아무도 안 가져간대!" 이 무슨 신박한 소리야? 순진하다 해야 할지 어리석다 해야 할지 나는 그 말을 아주 착실히 도 이행했다. 너무나 웃긴 몰꼴로.
그렇게 자유로운 20대를 지나 안정적이지만 책임감이 따르는 30대를 살아내고 있다. 지금의 나에겐 공항이라는 곳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지만, 그래도 공항은 공항 아닌가?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여러 상황들 속에 이번 겨울 첫 여행을 앞두고 가족 모두가 설렘을 맘껏 누리는 중이다. 물론 모르지 않는다. 그 여행이 시작됨과 동시에 혼자 누렸던 여행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공항에서 느꼈던 꿈과 환상 따위 저 멀리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 폭발적으로 귀여운 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겨울을 기다리면서 내가 그린 기대 속에 푹 빠져 지내는 중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과 함께라 많은 곳을 방문하긴 어렵겠지만 가는 곳마다 나의 시선을 글 속에, 그리고 사진 속에 고이 담아보면 어떨까. 현지에서 마치 함께 여행 중인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그때 온몸 가득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사르르 퍼진다.
공항에 머물 듯 여행에 머물 듯, 이미 나는 여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