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주는 툭툭이
책만 부여잡고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아이의 시선 속 내 모습은 달랐다. 반짝거리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을 수가 있어?" 큰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니까 읽는 거야."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만 변화가 생기나 싶은 순간 아이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의 변화를 눈치채고도 섣불리 무언가 시작할 용기는 없었다. 스스로 조차 똑바로 세우기도 벅찼던 때라 그저 '그렇구나. 책에 관심이 생기는구나.' 하고 지켜볼 수밖에. 엄마로서 무언가 해줄 순 없어도 최소한 관심을 넓혀갈 기회는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건 유치원 숙제로 꾸역꾸역 해오던 동화이야기의 연장선, 바로 독서기록장. 그래서 그걸 어떻게 했냐고? 그냥 책상 위에 툭 하고 던져둔 게 다였다. 말 그대로 '이런 게 있다.'는 기회만 준 것.
이후에도 나의 툭툭이는 계속되었다. 내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함께 빌려온 아이의 책도 소파 위에 툭, 새로 산 문제집도 책상 위에 툭, 좋아하는 종이접기 책도 하나 사서 식탁 위에 툭, 심지어 내가 읽은 많은 책들도 거실 한 쪽에 그냥 쌓아뒀을걸?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을 지나다니는 쪽 구석에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가 읽는 책 내가 봐도 돼? 한 권만 골라서 읽어보고 싶어." 나의 툭툭이를 아이는 생각 없이 봐온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그녀는 언젠가 커서 자기도 어른이 읽는 책을 읽고 싶다며 하나의 꿈을 마음속 깊이 심었다.
밤낮없이 책만 달고 살았던 시기에 새벽시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읽는 책은 또 달랐지.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긴 머리를 귀신같이 풀고선 한 손에는 책 한 권 다른 손에는 독서기록장을 들고 서서는 나를 향해 배시시 웃는 게 아닌가. 너무 이른 새벽이라 얼굴도 팅팅 부은 채로 책 읽는 엄마 옆에서 같이 읽겠다고 온 아이를 본 순간 사랑스러움에 꼭 껴안아 주었다.
이후에도 아이는 책에 있어서는 늘 나와 함께였다. 카페를 갈 때 책을 챙기면 스스로 자신의 책을 챙기고,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소파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놀다가도 멈춰서는 책 한 권을 들고 내 옆에 앉아 함께 책을 읽었다.(과장 아니고 진짜!) 이때 중요한 것은 절대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쳐다보는 순간 책 읽기 종료.
부모라면 자식에게 무엇이든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당연하다. 나의 툭툭이는 절대 결코 의도한 게 아니었으며 이러한 상황으로 이어진 것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아이마다 성향도 다 다를 테고, '큰아이의 성향과 나의 툭툭이가 잘 맞아떨어져서 벌어진 좋은 결과겠지'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8번째 독서기록장과 엄마와 함께하는 책 읽기에 대한 그녀의 집요함에 진정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오늘의 툭툭이로 마무리된 이 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