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네 모습도 사랑해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아이를 낳고 불어난 몸으로 굴러다니던 시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는 나에게 에너지를 좀 되찾아보라며 신랑의 권유로 PT를 등록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를 직면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때라 사방이 전신거울로 둘러싸인 그곳은 너무도 낯설었다. 난 내 모습을 보기 싫은데 자꾸 보게 되니까. 그렇게 지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로 불타오르던 때라 일단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주말에도, 가족여행을 갈 때에도 예외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만 나만 모르고 있었던 무시무시한 식단과 매일 2시간의 운동량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내 얼굴빛을 고구마 색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생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자존감이라는 걸 가지게 된다. 스스로 최고의 뿌듯함을 느낄 때쯤 PT는 마무리되었고 쌤은 말했다. 보통은 1~2년 유지하다가 몸 상태가 다시 원상복귀돼서 PT 재등록하러 온다고. 와, 귀신인 줄.
그렇다. 그렇게 3년이 흘러 내 발로 그 지옥 속에 다시 걸어 들어갔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몸만 변한 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마음속 일들로 인해 모든 걸 멈춰야 했던 시기의 난 그 어떠한 의지도 의욕도 사라진 상태였다. 머릿속으로는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걸 몸소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설 수 없었다. 그 순간 지인의 말에 다시금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아. 지금의 네 모습도 사랑해 줘." 뼈 때리는 한마디.
당시 좋았던 경험을 토대로 내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이번에는 잘해보고 싶었다. 음식에 대한 강박을 줄이기 위해 식단 이외의 음식도 조금씩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고(자기 합리화 첫 번째), 안 그래도 싫은 운동 더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 운동량을 깔끔하게 주 3~4회로 줄였다(자기 합리화 두 번째). 물론 쌤이 허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천국의 계단 한번 밟아 볼 거라고 당당히 올라갔다가 내가 아닌 에어팟을 천국으로 보내버릴 뻔한 걸 구해주셨으니 말은 잘 들어야겠다 싶었다. 쓸데없는 다짐이었지.
하루는 매일 먹었던 것처럼 익숙한 닭가슴살로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퍽퍽했지만 나름 맛있게 먹은 짜장, 그것도 사천 짜장 맛 닭가슴살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낸 식단 사진에 진지한 듯 쌤의 답장이 왔다. "혹시 탄 거예요?" 속으로 '아니 이 사람 뭐지?'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하나의 답장이 더 왔다. "아~ 버섯인가?"
낯설었다. 안 그래도 웃으면서 다 시키는 수업에 적응 중인데, 이거 어쩌지?
그때와 지금의 난 같은 듯 다르다. 최소한 내 아픔에 당당할 수 있고 털어낼 수 있으며 스트레스받지 않게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방법 또한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운동하는 데 있어서도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점점 배워가는 듯하다. 나는 종종 쌤에게 오래 보자고 이야기하곤 한다. 가늘고 길게 그 어떠한 강박 없이 운동하는 것이 내 목표이기에(물론 선생님의 목표는 다름). 오늘도 익숙하지 않은 전신거울 앞에서 다짐한다. 지금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