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아빠와 데이트하고 있었다
말했다시피 엄마와 아빠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조물주와의 데이트는 고장군과 했던 것들과 달라야 했다. 자연을 찾아 나서는 편이 아니니 단풍은 패스. 아무래도 동성 자식이 더 편할 찜질방도 패스. 이래저래 넘기다 보니 아빠와 단둘이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나 싶던 겨울, <서울의 봄>이 흥행했다. 난 엄마의 음식취향만큼이나(이제는 아는 척하기 머쓱해졌지만) 아빠의 영화취향을 잘 아는 편이다. 아빤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실화 배경의 영화를 웬만하면 놓치지 않는다. 남들 다 본다는 천만영화도 마찬가지다. <극한직업>이 천만을 찍었을 때, 아빠가 데려간 덕에 우리 가족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았다.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천만영화, <서울의 봄>. 망설이지 않고 예매했다.
어쩌다 아빠의 영화취향을 아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위에 나열한 것은 아마 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물주가 어떤 관객인지 좀 더 자세히 안다.
초반 10분 안에 이목을 끄는 큰 사건이 터지지 않으면 집중력을 잃는다. 좋아하는 실존 인물이 나와도 예외는 없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타워>와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그랬다. 조금만 기다리면 어마어마한 빌딩이 화염에 휩싸여 애가 타들어갈 텐데, 아빠는 초반의 평화로운 장면들과 함께 잠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정 넘치는 연설 장면도 거의 나만 지켜봤다. 심지어 그 영화는 아빠가 데려간 덕에 보게 된 것이었는데도.
가족과 관련된 감동코드에 특히 약하다. 나는 아빠가 오열하는 것을 2013년에 거의 처음으로 목격했다. <7번 방의 선물>에서 류승룡 배우가 사형 집행장으로 가던 발길을 딸 예승이에게 돌리는 장면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짓지도 않은 죄를 잘못했다고 빌며 우는 명장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리자 안경에 습기가 차도록 오열하는 아빠가 보였다. 초등학생 시절이라 남은 기억이 거의 없는데 그 모습만은 선명하다. 50대를 넘긴 지금이야 다 같이 저녁 먹으며 보는 드라마 한 장면에도 눈물을 보이지만, 그땐 눈물이 거의 없던 40대였다.
결론은 간단했다. 아빠와 단둘이 영화관에 간 적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것이다. 난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빠와 데이트하고 있었다. 아마 엄마와 휴일이 겹치지 않았으니 둘이 다니기 시작했을 텐데, 동생은 왜 빠졌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한 번씩 단둘이 영화관에 갔던 기억만 남아있다. 엄마와 달리 아빠는 항상 캐러멜 팝콘을 사줬고, 버터 오징어의 출시를 함께 기뻐했다. 영화가 끝나고 늘 줄이 긴 여자 화장실에 혼자 다녀오면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크게 두 종류였다. 아빠가 영화에 대해 감탄하거나, 어떻게 잘 수 있냐며 내가 투덜대거나.
영화 산업이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간극만큼이나 크게 변화했다. 주로 영화관에 가지 않고 OTT로 부모님과 영화를 본다. 조금만 기다리면 영화들이 스크린에서 노트북 화면으로 넘어온다. 하지만 가끔은 굳이 영화관에 같이 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조용한 상영관에서 숨죽여 우는 아빠의 옆구리를 찌르며 놀리거나, 역시 이런 영화는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며 둘이서 신나게 아는 척하는 재미가 있다.
-‘굳이?’싶은 것들을 굳이 ‘같이’ 해보자
-아빠와 데이트하기 어색하다면, 영화관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 선정은 아빠의 취향에 맞게. 대화소재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