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엄마가 암이 없는데 딸이 암이 나올 수 있어요? 내 딸이 그랬다니까~”
오늘 검사실엔 찾은 한 어르신이
검사를 마친 뒤 한숨을 내시며 조용히 입을 여셨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씀드렸다.
“그럼요, 그럴 수 있죠. 따님이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보네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주먹만 한 암이 나왔다네요.
아니 근데, 병원을 안 가고 왜 날 찾아오냐고요.”
나는 가만히 그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많이 놀랐나 봐요. 병원에 갈 힘도 없었나 봐요.
엄마한테 가면, 힘이 나니까… 그래서 어르신을 찾은 거 아닐까요?”
그 말을 들은 어르신은 한참을 말없이 나를 바라보시더니 고개를 천천히, 깊이 끄덕이셨다.
“그랬겠죠… 참… 그랬겠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내가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떠세요? 수술은 다 하셨어요?”
“응. 다 잘라냈지 뭐. 벌써 5년이 지났어. 이제는 좀 괜찮아요.”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와… 너무 장하네요.
따님 정말 대단해요. 잘 이겨내셨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어르신은 말없이 미소 지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내 어깨를 토닥토닥 쓰다듬고는 느린 걸음으로 검사실을 나서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짧은 대화 속에 담긴 무게가 가슴 깊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때때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일을 마주할 때,
그걸 당장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찾아가곤 한다.
그 일이 사라지진 않더라도 그 앞에 설 용기를 조금이라도 얻고 싶어서.
그렇게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귀한 일일까.
그 대상이 엄마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혹은… 그냥 따뜻하게 말 들어주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그 어르신의 딸은
암이라는 무서운 진단 앞에서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렸고,
엄마에게 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품에 안기듯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르신은 딸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그 시간을 건넜다.
병과 두려움, 수술과 회복의 긴 시간들까지.
그 순간들이 얼마나 눈물겹고 얼마나 소중했을지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도 어쩌면 무언가를 마주할 힘이 필요해서 오는 건 아닐까.
몸이 아파서, 마음이 지쳐서,
혼자서는 조금 버거워서.
그런 마음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한 말 한마디,
조금 더 다정한 시선,
조용한 응원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아주 큰 힘은 아닐지 몰라도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숨이 된다면,
그걸로도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