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친구지요?' 책이 나오기까지
책 출판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내편의 칭찬이 큰 몫을 했다.
“당신은 글을 참 편하게 써요. 책 내도 되겠어요.”
기분 좋게 해주려는 인사말로 여겼다.
가볍게 흘려들었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 칭찬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나에게는 의욕을 슬그머니 깨우는 힘이 있었다.
두 번째로 나를 흔든 사람들은 블로그 이웃들이었다.
댓글로 건네는 응원과 칭찬에
‘혹시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건 아닐까’ 하는
행복한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지랖이 발동했다.
보육교사로 일하며 써 왔던 원아수첩.
그 기록들을 정리해 책으로 묶는다면,
유아교육을 배우는 학생들이나 초임 교사들에게
현장의 온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육교사로 지낼 때 매년 원아수첩을 정성껏 써서 보내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쓴 글을 나도 간직하고 싶어졌다.
여름 가정학습 전, 겨울 가정학습 전, 그리고 수료를 앞둔 2월.
세 번에 걸쳐 원아수첩 내용을 핸드폰으로 찍어 사진을 남겨 두었다.
유난히 적응이 힘들었고,
그만큼 깊은 정을 나눴던 아이들이었다.
혹시나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어머니들의 연락처도 사진을 찍어 남겨 두었었다.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모른 채로 말이다.
“여보, 당신 친구 책 내셨다며. 출판사 좀 알려달라고 할 수 있어?”
“그럼요. 얼마든지요.”
내편과 그의 친구는 계획이 생기면 바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출판사 대표를 빨리 만나게 되었다.
원아수첩의 내용을 책으로 내려 한다고 말했더니
원아 이름을 실명으로 쓰는 게 좋겠다는 제안.
이어서 아이들 부모님께 연락하여 허락받자는 내편.
알겠다고는 말했지만 나는 계속 미적거렸다.
“여보, 전화했어요?”
“아직… 생각 중이야.”
“생각만 하면 언제 책 내요.”
결국 내편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오늘 당장 하든지, 아니면 안 하는 거예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마음을 굳게 다지고 떨리는 손으로 카카오톡 문자를 보냈다.
원아수첩 내용도 어머니들께 전달했다.
그날 밤, 첫 답장이 왔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의 사진과 함께였다.
눈물이 났다.
다른 어머니의 흔쾌한 실명 허락과 성장한 아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감동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답이 없는 분들께는 결국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고,
원아수첩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다섯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모두 실명을 허락하였다.
이제 바빠졌다.
블로그 글을 하나하나 옮기고,
아이들 이름을 다시 써 내려갔다.
평일엔 시간이 부족해 주말을 온전히 나에게 내주기로 했다.
편집한 후 출판사의 거절 문자를 받아도 괜찮다.
문을 두드려 보기로 했다.
이웃의 도움, 어머니들의 허락,
그리고 무엇보다 내편의 재촉.
용기가 부족한 나를 그는 계속 앞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권의 책을 향해 한 발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