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친구지요' 책이 나오기까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 내편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삼 년도 아니고 서른다섯 해를 함께 살았으니,
그는 내 속을 샅샅이 꿰고 있다.
특히 나의 게으름에는 한 치의 관용도 없다.
바쁘다는 말, 몸살이라는 핑계쯤은 가볍게 걷어낸다.
쉬는 건 그만하라며, 오늘도 그는 내 뒤에서 등을 민다.
실행보다 생각이 많은 나를 잘 알기에, 그는 늘 말한다.
“여보, 후회하더라도 일단 해봐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나아요.”
며칠 전에는 책 두 권을 내밀었다.
「아이의 작은 인생은 어린이집에서 시작된다」
「우리 아이 어린이집 생활이 궁금해요」
책을 쓰는 데 참고하라며,
인터넷을 검색해 작은 도서관에는 없는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찾아 대출해 왔다고 했다.
구비구비 길을 건너 내게까지 온 책.
그 외조가 고마워 마음이 찡해졌다.
나태할 틈을 주지 않고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람, 내편이다.
내 글과는 결이 다른 책이었지만, 공감하며 읽었다.
그러다 그는 또 한 발 더 나아간다.
“여보, 근처 대학교에 유아교육과 있잖아요.
교수님께 자문을 구해보면 어때요?”
적극적이어도 너무 적극적인 사람이다.
결국 나는 인쇄물을 준비해 투명 파일에 담았고,
조교실에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정중한 거절. 학기 중이라 시간이 어렵다는 답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한편이 서운해졌다.
쓸데없는 상상도 따라붙었다.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지…’
그런 나를 보고 내편은 먼저 말을 건넸다.
“내가 괜히 교수님을 만나 자문받아 보자고 했네요.
현장 경험이 거의 없으실 수도 있고,
지금 단계에서 코멘트가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 말로 마음이 정리되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할 몫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다시 방향을 바꿔 제안했다.
“날짜별 기록 말고,
아이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로 이어서 써보는 건 어때요?”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적응부터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장일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고치다 보니 어색한 문장, 맞지 않는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책 나오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논문 쓸 때 수없이 퇴짜 맞았어요.
그래서 책 내는 게 어렵다는 걸 알아요. 당신은 내가 봐줄게요.”
그는 나를 쥐었다 폈다 하며 다룰 줄 아는 듯.
포기하고 싶을 때는 다독이고, 망설일 때는 밀어주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잖아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편은 늘 내 뒤에서 든든하게 받치며 밀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 힘들어하는 건 나였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벌써 멈춰 섰을지도 모른다.
서른다섯 해를 함께 산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그는 매번 이렇게 보여준다.
내편이 응원하는 한, 나는 후퇴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
내편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