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기까지의 어려움
터널 끝이 어렴풋이 보이는 느낌이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일단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숨을 고르고 싶었다.
지난주에도 나는 내편을 지지고 볶고 닥달했다.
“여보, 다음은 뭐 해야 돼?”
“조금 있다 봐줄게요.”
“언제? 안 돼. 당신 나가면 나 혼자 뭐 해야 할지 모르잖아. 말하고 나가슈.”
“내가 뭘 안다고. 나도 몰라요.”
“에이, 겸손은. 당신은 나보다 낫잖아. 논문도 책으로 쓰고.”
마지못해 컴퓨터 앞에 앉은 내편.
“목차는 뺐어요?”
“응. 대충…”
잠시 침묵.
“이거 너무 길어요. 이렇게 긴 목차는 없어요.”
침을 꿀꺽 삼킨다.
“그럼 어떻게 해?”
“의미 있는 것만 뽑아서 세 줄로 요약해요.”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다 복사해 붙여놓았더니, 길다고 한다.
“슬러시 앞뒤를 띄어쓰기 하면 더 정리돼 보여요.”
“교사랑 엄마를 T, P로 하는 건 재미없어요. 그림으로 해보면 어때요?”
“알았어. 그건 도안 다운 받으면 되지.”
끝인 줄 알았더니 또 나온다.
“책 규격부터 정해야 해요. 그래야 페이지 수가 나와요.
300페이지 넘기면 안 되고요. 그 다음엔 표지 제목이랑 문구도 정해야 하고요.”
“그건 출판사에서 해주는 거 아니야?”
“아잇. 누가 내 책 제목을 대신 정해줘요. 작가가 정하는 거지.”
갈수록 태산이다.
하나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산이 눈앞에 선다.
고치고, 지우고, 바꾸고, 또 바꾸고.
“여보, 하라는 대로 다 했어.”
“벌써요?”
“응. 시키는 대로 하면 금방 해. 몰라서 못하는 거지.”
“잘했어요. 대단해요, 당신.”
병 주고 약 주고. 울리고 얼르고.
“이제 다음은 뭐야?”
“생각 좀 해보고요. 친구한테도 물어보고요.”
맨발 걷기를 하고 돌아왔더니 집이 조용했다.
안방에서 나온 내편이 말한다.
“여보, 오늘 열한 시에 친구 만나기로 했어요. 궁금한 거 있으면 그때 물어봐요.
어제 정리한 거, 제목이랑 목차 몇 장 인쇄해요.”
컴퓨터를 켜고 인쇄 버튼을 눌렀는데, 먹통이다.
“뭐야… 여보, 인쇄 안 돼.”
“아이고, 토너를 미리 바꿀 걸 그랬네요.”
하필 오늘이다. 프린터는 의리 없이 오늘 나를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찰칵, 찰칵.
이 없으면 잇몸이다.
열한 시, 우리는 만나 커피를 마셨다.
내편의 친구는 책을 두 권 낸 분이었다. 전화로 물을 때마다 친절히 답해 주시던 분.
심장이 쿵쾅거렸다.
일이 정말 제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친구는 메모지에 볼펜으로 써가며 내 글을 읽어주었다.
“이 정도면 출판사에 넘겨도 되겠어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많이 정리됐네요.”
“앞으로는 출판사랑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고치면 될 거예요.”
가장 듣고 싶던 말이었다.
“남편이 많이 도와줬어요. 저 혼자였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책 쓰는 게 원래 쉽지 않아요. 맡기면 진행은 훨씬 빨라질 거예요.”
이제야 내편과 언쟁하지 않고도 차분히 고치고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내편은 또.
“프롤로그도 써요. 머릿말도 같이 보내면 좋겠어요.”
여전히 재촉이다.
말하면 바로 글이 나오는 게 아닌데.
나는 안다.
그 재촉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는 걸.
둥둥 떠밀려 왔지만,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한 감이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겠지만, 지금 이만큼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배워간다는 것,
알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행복이고,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