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파민네이션, 맞다. 나는 독파민에 중독되어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기원을 찾고자 인생을 거꾸로 타고 가보니 6살 때부터였다. 내가 책에 중독된 것이. 6살 때까지 나는 <빨간 모자>를 외우곤 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3살 때부터 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의 기억으로는 6살 때 책을 줄줄 외면 우리 엄마는 세상을 바꿀 천재라고 했다. 칭찬이 참으로 달콤했다. 어린아이였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초콜릿을 먹을 때보다 짜릿했다. 그 달콤함을 또 맛보고 싶었다. 아마도 그렇게 나의 독파민이 시작된 것 같다.
아쉽게도 그 뒤로 나의 기억력은 정상 범위로 돌아왔고 더 이상 책을 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독이라는 것이 어디 쉽게 끊어지겠는가. 책을 읽으면 우리 엄마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화책이든, 소설이든 종류는 상관이 없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밤새도록 읽고, 초등학생 시절엔 <해리 포터> 출간일을 목 놓아 기다렸다. 우리 엄마는 그때까지도 내가 천재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았던 그 시절, 초등학생 꼬마가 <해리 포터> 국내 출간일을 알아내고 책을 사달라고 졸랐으니까.
34살이 된 지금도 다르지 않다. 책을 왜 읽느냐고? 멋있으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는데도 난 아직도 '간살간죽'이다.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다는 말이다.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사람들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긍정의 의미라는 것도. 나는 아직도 그 달콤함에 중독되어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요즘 말로 '힙'하다. 독서는 왜 '힙'할까?
독서가 힙한 이유를 물어본다면, 독서가 취미인 사람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대화를 해보면 말 한마디에 힘이 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말하는 것이 없다. 한마디, 한마디에 자기의 생각과 철학이 뚜렷하게 담겨있다. 또 그가 쓰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속이 편안해지는 맞춤법, 호흡 곤란이 오지 않는 띄어쓰기, 본인의 생각과 삶을 자연스럽게 버무려 글을 써내는 능력까지. 이 모든 것이 결국 책을 읽으며 사유하는 힘을 길렀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나는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멋있어 보여서 책을 읽는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사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에게 빙의해 나의 삶을 반추한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저렇게 살겠노라 나의 삶을 반성한다. 에세이를 읽으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느껴보며 내 삶과의 교집합을 찾아본다. 고전을 읽으면 몇백 년 전에도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 하며 지금 내 삶에서 용기를 얻고 살아간다. 그 어떤 책을 읽어도 내 삶과 맞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끊임없이 나의 삶을 돌아보고 사유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책을 읽는 그 순간이다.
하루에 몇 시간을 이렇게 사유하는데 어떻게 안 멋질 수가 있을까? 사유의 깊이와 넓이는 다르겠지만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늘 생각한다. 그 생각은 언젠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독서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로 ‘힙’하다고 생각한다. 힙한 게 유행이라면, 단연코 독서가 유행해야 한다. 나는 이제 책을 읽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것은 최고의 달콤함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이가 사유하는 어른으로 성장한 지금,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것이 어쩌면 가장 멋진 일 아닐까? 독파민네이션에 중독된 나 자신, 정말 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