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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토록 유쾌한 가녀장이라니

by 샐리윤

가녀장을 들어보았는가? 나는 처음 들어봤다. 살면서 가부장은 들어봤어도 가녀장이라니,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 선언이 참으로 멋졌다. 그녀는 말한다.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슬아는 가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진다. 낮잠출판사는 슬아가 사장으로, 엄마 복희와 아빠 웅이가 직원으로 있는 수평적 조직이다. 슬아는 글을 쓰는 작가이다. 복희는 요리 천재이다. 된장 담그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웅이는 청소를 잘한다. 청소뿐만이겠는가, 세상에 공구가 필요한 일이라면 못 하는 것이 없다. 셋은 각자 잘하는 일이 다르다. 서로에게 못하는 걸 강요하지 않는다. 인정한다. 그러고는 각자 잘하는 일을 각자의 자리에서 해낼 뿐이다. 그렇게 서로를 보완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의지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가족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한 이 셋의 관계성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어제 뉴스 보니까 트렁크 대통령 걔 진짜 미쳤더라.….”, “나도 삼십 대 땐 로즈시절이었어.” 복희식 오류이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복희라는 캐릭터는 우리 엄마도, 내 친구 하영이 어머니도, 옆집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군수님을 군청님이라고 부르는 나의 모습도. 한 번쯤은 보았던 누군가의 모습, “작가라 그런지 예민해~”라고 대꾸하는 얼렁뚱땅 처세술까지. 너무나도 입체적이고 귀여운 여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슬아는 개떡같이 말하는 복희의 말을 찰떡같이 잘도 알아듣는다. 이들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하다.


가부장 제도에서 자라온 웅이는 어떨까? 그는 아침마다 걸레질을 하고, 슬아의 수행 기사 역할을 하고, 아침마다 위스키가 들어간 커피를 타서 복희에게 바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부장과는 다르다.(물론 웅이 같은 가부장도 많다) 순응하고 인정하고 함께 살아간다. 강요는 없다. 그리고 조언하기도 한다. "남자를 만날 거면. ··· 너를 존경할 줄 아는 애를 만나." 살다 보니 알게 된 웅이다. 웅이가 슬아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슬아는 가녀장으로 살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 복희가 없는 미래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때론 힘들고 슬프지만 담담하게 이겨낸다. “거절하세요.”와 같은 단호함과 뭣이 중한지를 간파하는 대담함까지 정말 멋진 가녀장의 모습이다. 월요일은 어김없이 돌아오니 다시 잘 해보라고 응원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나 당당한 가녀장은 처음이다. 나는 꿈을 꾸어보려고 한다. 가녀장이 되는 꿈. 유쾌한 슬아처럼 가녀장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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