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 없는 플레어스커트의 정체
노연기 오빠에게 편지를 부쳤다. 편지를 부치고 그 다음 날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외갓집에서 플레어스커트를 얻어다 주었다. 외갓집의 언니가 중학생 때 입었던 교복치마였다.
갑자기 교복치마가 생긴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득두와 코스모스 핀 길을 함께 걷게 되는 소원도 이루어졌다.
플레어스커트 자락이 늦가을 바람에 살랑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코스모스 저절로 핀 걸었다.
또 누군가 나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관음증을 앓을 것을 상상하니 더욱 가을 소녀의 감성을 깊어졌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굴러오는 자전거 바퀴 소리에 내 가슴은 레일이 깔렸다. 기차가 달려도 될 긴 레일자국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역시나 득두가 뭔가 홀린 모습으로 자전거에서 내려서 걷고 있었다.
즉각적인 플레어스커트의 효과에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바람에 펄렁거리는 치마자락을 어색하게 모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득두가 자전거를 끌며 걷기 편하게 자갈이 소복히 쌓인 쪽으로 비켜서 걸었다.
득두는 우리가 자주 다녀서 반들반들한 길이 난 쪽으로 걸었다.
허영미처럼 다소곳이 먼산을 보는 듯이 걸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엉망진창이 되었다.
심장은 뛰고, 다리는 자갈에 미끌려 비틀거리고, 손은 떨렸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득두는 나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오산희 ......"
득두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오자, 휘청거려서 코스모스 꽃밭으로 쓰러질 뻔 했다.
세상에, 노연기 오빠에게 편지를 썼을 뿐인데, 마술같은 일이 펼쳐졌다.
노연기 오빠에게
혹시 우리 동네에 다녀가셨나요? 그 먼길을 다녀가셨나요?
어제 노연기 오빠에게 편지를 부치고, 오는데 가을 바람은 차암 시원했습니다
비 내린 후의 늦가을 바람은 깨끗하고 개운했답니다.
그 개운한 바람의 느낌은 득두를 보면 알 수 없는 설레임과 허영미의 존재에 대해 글로 적은
후폭풍인 듯합니다. 후폭풍은 간결하고 썰렁했습니다.
그래도 노연기 오빠가 내 편지를 읽었다는 확신은 뚜렷했습니다.
노연기 오빠,
나도 외갓집 언니가 물려준 플레어스커트가 생겼어요.
엄마를 통해 노연기 오빠가 보내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깽깽이 춤을 추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자전거 멈추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득두였습니다. 내가 득두와 이 꽃길을 함께 걷고 싶었던 것처럼 그 아이도 그랬나봅니다.
노연기 오빠에게 편지를 하자마자 이렇게 두 가지가 즉시 이루어졌습니다.
득두가 나의 이름을 불렀고, 순간 세상이 멈춘 기분이었답니다.
그런데 득두는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냈습니다.
작은 종이 가방이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그 가방을 받았어요.
"오산희......그것..영미..허영미에게 좀..."
허영미라는 이름이 득우의 입에서 발화되는 순간, 다 알았습니다.

그래도 플레어스커트가 생겼고, 득두와 나란히 걷는 바람이 이루어졌습니다.
노연기 오빠,
이렇게 빨리 제가 바라는 소원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소원을 이루고도 이렇게 마음에 찬바람이 부는 경험은 처음이었답니다. 너무도 빠르게 스친 순간이었지만 이루어진건 사실이니까요.
"J 지난 밤 꿈 속에, J 만났던 모습은 내 가슴 속 깊이 ~~"
동네에서 J에게 노래는 계속 메아리쳤습니다.
노연기 오빠, 나의 J여!
나의 소원을 급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만 2000년 전, 오늘, 오산희 올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산희는 허영미에게 득두의 선물을 전달할까요?
3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