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발언 소설]가증스런 나의언니
최종회

비스켓으로 사기치는 친언니의 최후

에로스비스켓



악마같은 천희가 나처럼 비스킷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나의 분노가 닻을 내릴 실마리를 쉽게 찾았다. 천희에게 딱 한 번만 언니라고 부르기로 작정했다. 여태 팔촌 아짐이 조달해주던 쑥즙과 오징어 먹물의 권한은 나에게 넘겨달라는 부탁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천희가 40년이 넘게 자매로 가족부등본에 함께 했던 값을 치르게 하고 싶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긴말을 해 보기로 용기를 내었다. 일단 우리말의 시작을 호칭으로 하면 말이 술술 풀린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았다. “천희 언니, 언니, 언니….” 몇 번을 연습했다. 수천 번을 연습했지만 막상 천희 앞에서는 연습한 대로 나오지 않았다.

“천희 언니….”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천희를 불렀다. 천희는 많이 당황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감동과 감사의 눈빛이었다. 일단 안심하며 나의 요구 조건을 말했다. 천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허락했다. 게다가 팔촌 아짐이 나이가 많아 쑥즙과 오징어 먹물 조달하는 것을 힘들어하니 둘이서 의논하랬다. 쑥즙과 오징어 먹물 조달을 나에게 맡아달라는 것이다. 그 말을 할 때, 천희의 표정은 냉정하고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나는 이런 천희와 다시 엮이기 싫어져 내 목적만 달성하기로 했다.

가까운 시장의 약재상에 가니, 마치 생쑥이 있었다. 생쑥은 쉽게 구했지만 청산가리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것도 어렵지 않았다. 내가 셋방 옆의 철공소에 부탁했더니 쉽게 몇 조각 주었다. 천희와 대화하듯 말하니 모든 대화가 쉬워졌다. 모터의 마력이 높은 믹서기를 구입했다. 내 생애 최초로 목표 달성을 위해 최고급의 물건을 사봤다. 그 기쁨과 재미는 고소하고 시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이런 희열을 느끼는구나. 그 중에 한 명도 천희일 것이다.

믹서기에 청산가리를 넣어 생쑥을 몽글몽글하게 갈았다. 바로 씻어내고 오징어먹물과 청산가리를 곱디곱게 갈았다. 조금 남은 청산가리의 가루는 비스켓에 살살뿌렸다. 비스켓에 뿌려지는 청산가리는 천희의 눈처럼 반짝였다. 믹서기는 디마트의 재활용 쓰레기통에 즉각 버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야간에 작업을 하기로 정해졌었다. 약제실의 문도 자동유리문이었다. 역시나 수양버들 문양이 멋스럽게 썬팅된 문이었다. 나는 가장 아끼는 옷을 입고 쑥즙과 오징어먹물을 들고 약제실로 들어갔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셔라이, 원장 동생임다.”

“네, 디마트 아지…매, 어서오세…”

천희 앞에서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직원이 나를 내리깔며 바라봤다. 천희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나의 체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 우러러보이면 그만인. 역시 나는 그곳에서 짓밟힌 억울함의 닻을 내리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 건방진 남자 직원은 약제실 비밀번호를 가르쳐주고 퇴근했다. 그 남자 직원이 미리 풀어헤쳐놓은 비스켓 무더기는 무덤처럼 보였다. 나도 슬슬 쑥즙과 오징어 먹물이 담긴 보자기를 풀었다. 혹시나 CCTV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나를 몰래 지켜보는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나의 업무는 비스켓에 쑥즙을 들이고, 오징어 먹물을 들이는 일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약제실을 나섰다. 또 천희의 진료실에 들러 비스켓을 두고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희 너는 내가 자매로 살아있는 한 영웅이 될 수 없다.

너는 천년 묵은 미꾸라지일 뿐이다.“




되살아난 볼레로 히스테리



날이 새기 전에 첫차를 타고 보흥으로 향했다. 왠지 천희와 나의 인연을 정리하면 인연의 시작 지점으로 가야한다는 급한 마음이 일었다.

버스에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복통까지 이어졌다. 그 복통은 어린 시절 장이 꼬여서 죽을 뻔 했던 그 복통을 선명하게 기억나게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최약국으로 뛰어들어갔다. 많이 늙은 최약국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는 듯 반겼다.

“오메 천희구나, 천희도 나이를 묵어가는구나.”

최약국 할머니는 나를 천희로 착각했다.

"그래, 30년 전에 니가 다 죽어가는 동생을 살릴 때부터 영특하더니

의사가 되었다면서!! 장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장이 꼬여서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나를 업고 폴짝폴짝 뛴 사람은 엄마였다. 분명히 엄마가 축 늘어진 나를 업고 울며 그 자리에서 뛰었다. 엄마가 나를 업고 계속 뛰는 바람에 꼬인 장이 저절로 풀려서 살아난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기억은 분명하다.

최약국 할머니가 지어준 약을 먹고 잠시 약국에 의자에 앉았다. 졸음이 몰려왔다. 잠깐 졸면서 생시에 꿈을 꾸었다. 장이 꼬여서 학교 운동장을 나오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나에게로 뛰어온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천희였다. 시골 동네에 병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나를 업고 최약국으로 뛰어간 천희는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어린 천희와 내가 최약국 앞 거리에 널브러진 모습이 보였다. 아니 나의 대장과 소장이 기억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약국 할머니에게 택시를 대절해달라고 부탁했다. “천희를 살려야해요…천희…해양도시로 가는 택시를 불러줘요.” 다급하게 울부짖었다. 총알 택시는 몇 시간이 지나서 디마트를 지나 천희의 병원에 도착했다.

디마트 앞은 여전히 콩나물을 소분하는 나같은 여자가 분주했고, 차들이 오갔다. 천희의 병원 풍경도 여전히 수양버들이 축 늘어져 흔들거렸다. 그 사이로 119구조대가 쏜살같이 떠났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천희 병원의 정원으로 발을 내딛었다. 하얀 볼레로를 입은 여자가 수양버들 정원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수양버들 사이에서 하얀 볼레로를 입은 여자가 천희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발 두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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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회까지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고 싶습니다.

허구로나마 독자 님과 진심을 나누고 싶습니다.



새로운 소설 -존댓말로 쓴 편지는 이루어진다- 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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