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의 가증스러움은 테러
친언니의 가증스러움에 테러당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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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마트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치고 일부러 천희의 병원 앞 디마트를 선택한 이유는 천희의 본 모습은 곧 ‘나’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나는 생물 재료와 매장 청소 담당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내 칼에 잘리고 벗겨진다. 더럽고 추접스런 것들은 내 빗자루와 쓸려나가고, 독한 낙스 걸레질로 녹여버린다. 이 일은 유일하게 내가 마음껏 독점할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이다.
천희 병원의 직원들이 출근할 시간에 마트 입구에 콩나물 시루에서 콩나물을 소분한다. 천희와 내가 자매임이 회자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콩나물을 비닐에 담는다.
“아이고, 추워라, 이눔이 콩나물 대가리가 왜이리 뻐시까이.”
“인자들 출근하신가봐요. 병원의 슨상님들이라지라.”
그들 중에 전에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던 직원의 눈이 커지는가싶더니 전혀 관심없이 슬쩍 목례를 하며 지나쳤다. 점심시간에도 역시 커피를 들고 병원 직원들이 마트 앞을 지나갔다. 나는 대파의 껍질을 길게 벗기면서 그들과 슬쩍 스치기도 했다.
“오메, 미안허요.”
파 냄새와 반찬 냄새가 덤벅이 된 옷차림으로 그들을 스치면서 나와 더불어 천희가 떠오르길 유도했다. 생파, 생마늘, 생양파는 음식에 양념으로 들어갈 때는 꼭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 있을 때는 멀리 두어야 깔끔하다. 나는 날것인 생파, 생마늘과 같은 존재이다. 천희는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1미터 너머에서 마주하는 존재이다.
마트 직원들은 점심식사 때면 백년 묵은 트림을 토해내며 천희의 마법 치료에 감탄과 존경을 풀어냈다. 직원이라고 말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나 다름없는 채소 준비실의 희빈이 엄마와 천재 엄마는 천희 병원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 머꼬, 쑥향이 솔솔나는 비스켓 과자같은 약이 최고라,
의사샘이 두 손을 번쩍 들어가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면
그 인간, 희빈 애비한테 받은 상처가, 싸악 나아삔다.”
희빈 엄마는 폭력 남편을 피하여 자식을 키워보려고 왼쪽 다리를 끌고 다니며 고된 일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디스크가 심각하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왼쪽 몸이 기울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천희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며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몸의 아픔도 나아졌다. 천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당뇨병 합병증으로 무능력하게 쇼파에 찰떡처럼 붙어서 텔레비전과 연애하며 살아가는 남편 수발과 아들 천재 학원비 때문에 두통과 근육통을 호소하며 살아간다. 희빈에게 소개받아 천재 엄마도 천희 병원의 단골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 여자들은 병원의 치료 방법보다 두 여자의 자식 이름을 바꾸는 것이 빠를 것으로 보였다.
희빈이라는 이름은 역모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비와 무거운 박스를 나르며 하루하루 입에 겨우 풀칠하는 집구석에 희빈이라는 왕이 특별히 사랑하는 비빈에게 내리는 작위를 자식의 이름으로 쓰다니 어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공부도 못하고, 밤이면 날이 새도록 게임이나 해대는 녀석의 이름을 천재라고 부르면 저절로 반항하고 싶을 것이다. 두 여자는 천지가 지어준 비싼 약을 먹으며 쾌재를 불렀다. 그 모습을 꼴사나웠다.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천희가 치료제로 쓰고 있는 원재료는 에로스비스킷이었다.
천희 병원의 직원이 에로스비스킷을 박스 채로 구입했다. 비스킷을 들것에 실어 계산하는 천희의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셔라이, 천희 원장 동생임다. 원장한테 오늘 동생이 찾아간다고
일러주세요이.”
그 직원은 살짝 화를 내는 듯한 눈초리로 입술은 비웃으며 겨우 대꾸를 했다.
“아, 네, 그래요.”
직원들이 천희와 나를 지속적으로 들먹여서 나와 천희가 공평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똑 닮은 자매지만,
나는 천희에게 짓눌려 인생 전체가 짓밟힌 존재다. 그나저나 도대체 천희는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그 당당하고 요사스러운 천희의 민낯을 보고 싶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천희의 수법을 밝혀서 한 여름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꼴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퇴근 길에 에로스 비스켓 5개를 사서 천희 병원을 방문했다. 천희는 수양버들이 우거진 벤취의 의자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뭔가 기괴하고 멋있었다. 그래서 더욱 얄미웠다. 늘 멋내고 당당한 척 하는 일상이 연극처럼 보였다. 정원이자 심리치료 장소에 앉아있는 천희는 귀하고 여유로워 보일 것이다. 얄밉고 가증스러웠다. 정원의 연못 속에 비친 천희의 얼굴과 먼저 눈이 마주쳤다. 연이어 입술이 일그러지고 눈이 치켜 올라간 나의 모습도 천희의 연못에 비쳤다. 마치 천희의 연못 상담 장소에서 내가 나의 얼굴과 만난 묘한 기분이었다. 천희도 자신의 등 뒤에서 다가오는 나의 표정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천희처럼 가증스럽게 웃어보았다. 정말로 웃어졌다.
“오메, 나를 기다렸나보네.”
천희는 이렇다저렇다는 자잔한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는 천희에게 에로스비스켓으로 심리치료제를 만드냐고 물었다. 천희는 보흥의 팔촌 친척 아짐으로부터 쑥과 오징어 먹물을 제공받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전문용어를 섞어서 말하는 바람에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에로스비스킷이 중요한 쓰임새임은 확실했다. 이상한 짓이나 사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서운했지만 그래도 천희를 찾아온 보람은 매우 컸다. 천희는 나에게 에로스비스킷으로 안정제를 만드는 업무를 맡겨주었다. 그날 천희는 내가 들고 간 에로스비스킷을 달콤한 카페라떼에 살짝 담가서 한 통을 다 먹어치웠다.
에로스비스킷을 잘 먹는 천희는 역시 나와 다름없다. 에로스비스킷 한 통을 다 먹을 만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언니라는 호칭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천희는 가끔 나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복희야라고.

5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