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놈을 죽인 검은 그림자는?
3. 수양버들 그리고 두 그림자
동네에서 수양버들 축축 늘어진 빨랫터에서 목욕하다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시절 80년대에는 개인의 봉변이었고 지금은 사회적 죄악이고 범죄인 사건이었다. 나는 나보다 좀 더 지질해 보이는 코흘리개 말자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여름 끝자락의 달빛도 없는 밤에 빨래터는 목욕하기에 적합했다. 어두운 밤에 몸을 숨기고 미지근한 냇물에서의 목욕은 소담스러운 재미였다. 동네 한가운데에 놓인 다리 밑으로 흘러가는 냇물에서 즐기는 목욕이라 안심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각과 청각을 곤두세웠다.
말자와 나는 귓속말로 속닥거리며 늦여름의 미지근한 목욕을 즐겼다. 그때 갑자기 말자가 나의 손을 와락 잡으며 몸을 움츠렸다. 마치 물속으로 파고 들어갈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나는 “왜…”하며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를 내었으나 발화되지는 않았다. 공포의 잔인한 특징이다.
늦더위에 축축 늘어진 수양버들의 가지들 사이에서 길고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슬글슬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느긋하게 넓적 바위에 올려진 우리의 옷을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그 검은 그림자는 우리의 옷을 둘둘 뭉쳐서 모래에 묻었다. 말자와 나는 그 검은 그림자의 태연하고 느긋한 행동에 억압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비명이 나올까 봐 오히려 서로의 입을 막고 오들오들 떨었다. 약자의 처참한 무의식적 행동이다. 어둠에 익은 우리의 눈은 검은 그림자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보였다. 검은 그림자 역시 우리의 형체를 정확하게 감지했다. 검은 그림자가 바지를 벗고 냇물 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말자는 나의 손을 놓고 나의 등 뒤로 숨었다. 그때 검은 그림자의 손이 나의 손목을 잡았다. 버둥거리다 물이 깊은 쪽으로 계속 미끄러졌다. 손이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나의 몸이 그 검은 물체의 한 손아귀에 들어갔다. 작고 야윈 나의 몸은 그의 손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발버둥 치다가 발이 돌에 걸리는 아픔이 있다가 그 아픔마저 마비되었다. 목이 졸려서 의식을 잃고 빨래터로 끌려나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검은 그림자의 손이 느슨해졌다. 다시 숨이 쉴 수 있었다. 그의 한 손이 부들부들 떨며 나를 놓치고 두 손이 모두 나를 놓았다. 아니 검은 그림자가 나를 놓쳤다. 또 하나의 작은 그림자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말자였다. 말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해 모래를 뿌렸다. 검은 그림자는 약간 비틀거리며 다시 나를 잡으려다 두 눈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말자는 계속해서 모래를 뿌렸다.
“이 개새끼 죽어, 죽어, 뒤져부러”
말자는 욕을 하며 모래를 뿌렸다. 그 검은 그림자는 더듬더듬 자신의 바지를 들고 비틀거리며 수양버들 사이로 멀어져 갔다.
“복희야, 일어나, 일어나 봐야, 복희야… 가시나야 정신 차려.
느그 언니, 천희 언니가 … 나타났어”
우리는 모래가 범벅이 된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말자는 이미 몇 년 전 해양 도시로 떠난 천희를 들먹였지만 나는 의미를 두지 않았다. 너무 두렵고 무서운 지옥 같은 상황에서 튀어나온 말자의 헛소리라고 흘렸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일어났다. 그 수양버들이 우거진 빨래터 옆의 다리 밑에서 그 검은 그림자는 목을 매단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시신은 마을에서 개를 잡을 때 매다는 목줄 매달려 있었다. 개를 잡아 개털을 코시르는 용도인 목줄에서 그가 발견되었다. 그 자의 입가는 게거품으로 범벅이었고 시커먼 혀가 반자나 빠져 있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옷이 벗겨진 채 새까만 그의 시신은 마치 그을린 개처럼 보였다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총각이 아깝다.”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하던데, 뭣이 답답해서 죽어삐렸쓰까.”
나와 말자는 그 다음날 빨래터로 갔다. 누가 먼저 가보자고 말하지는 않았다. 말자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말자는 방긋방긋 웃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모래가 범벅이 된 옷을 빨고 있었다. 말자는 전혀 상처받은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말자는 진득한 누런 코를 흘리지 않은 성숙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 누런 코딱지라고 놀림받아서 누런 코를 흘리는 사람으로 고정될 것만 같았던 말자는 그 고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모래사장의 모래와 말자의 빛나는 모습이 눈부셔 눈을 뜨기 어려웠다. 말자의 자유는 즉각적인 악당의 처단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더 이상 그 자리가 두렵지 않은 나는 그 검은 그림자가 매달렸던 다리 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길에 뭔가 거슬렸다. 툭 차려다 그 형체를 자세히 보고 말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양이었다. 그 검은 그림자의 시체를 수습한 자리에 떨어진 돌돌 말린 올가미 형체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올가미를 풀었다.
“복희야, 더럽당게, 손대지 마, 그 개 같은 인간이 목매단 끈이여… 더럽당게”
말자는 그 올가미를 설명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하양과 감물이 어우러진 나일론 천은 이끼가 더 묻긴 했지만 분명히 천희의 원피스였다. 몇 년 전 천희가 울면서 냇가에 버린 원피스였다. 왜 이렇게 천희가 등장하면 시간과 공간이 꼬이는 것일까? 어린 시절, 그때에는 우리가 너무도 놀라서 현실과 환상을 헷갈리는 걸로 알았다. 보흥을 이미 떠나고도 천희는 우리의 환상 속에 존재했다. 아니면 천희는 여기에도 존재하고 저기에도 존재하는 악마인지도 모른다.
3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