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의 자매
4. 천희의 속임수에 속는 환자들
천희는 수양버들 축축 늘어져 하늘거리는 정원에 환자들과 앉아있었다. 환자들과 탁자를 사이에 둔 천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들은 나란히 앉아있고, 천희는 서 있었다. 수양버들이 배경이 된 천희의 모습은 천사같기도 하고 귀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드라운 천의 하양 원피스에 볼레로처럼 생긴 의사 가운을 입은 천희의 모습은 특이했다.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하게 보일 것이다. 천희가 두 손을 높이 올릴 때마다 환자들은 매우 기뻐하며 경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환자들의 표정은 시골에서 본 아줌마들의 표정을 닮았다. 천희의 짧은 치마를 간섭하며 희롱하다가 천희가 두 팔을 번쩍들고 묘한 웃음을 흘린 날부터 비실거리던 동네 아줌마들의 표정. 천희를 향한 존경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아줌마들의 그 태도와 유사한 정신병원의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너무나 익숙해서 소름이 끼쳤다.
천희는 고향 보흥에 20년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다. 천희는 해양 도시에서 특이한 방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고향을 떠난 후 천희는 한번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 매번 엄마에게 머리채를 낚아채였던 천희, 형제들에게 이물스런 대우를 받던 천희가 가족을 미워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날 장례식장에서 그건 오해라고 밝혀졌다. 장례식장의 안치실 앞에 천희가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장례식장 마당에 검은 원피스를 천희의 자태는 새파랬다. 검정 원피스가 새파랗게도 보이는 아우라는 경이로웠다. 엠브란스에서 엄마를 실은 이동침대가 움직이자, 천희도 그 속도로 다가왔다. 엄마 얼굴을 덮은 하양 천을 천희의 하양 손이 천천히 거두었다. 엄마와 천희의 20년 만에 재회했다. 엄마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분명히 우리가 엄마의 눈이 감긴 것을 확인했는데, 마치 살아있는 듯 부릅뜬 엄마의 눈은 섬짓했다.
“엄마, 왜 눈을 뜨고 있어…돌아가셨다면서… 이제 편히 가셔야지…
이 삶이 지겹지도 않으신…”
천희는 마치 여태 엄마와 살아왔던 딸처럼 흐느끼며 엄마의 두 눈을 감겼다.
자꾸만 허연 눈자위를 드러내는 엄마의 눈을 천희는 하얀 손으로 꼬옥 누르며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엄마는 잘못이 없어…이 세상이 문제지… 엄마… 어마…”
천희는 이해를 할 듯 말 듯한 말들을 웅얼거리며 울었다. 그 흥건한 눈물과 모습이 너무도 처연하여 우리도 모두 멈추었던 울음을 다시 울었다. 천희의 우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나와의 애매하고 서먹한 문제도 묻어넘어간 것으로 느껴졌다. 그 후 나는 천희의 병원에 가끔 찾아갔다.
천희는 나를 동생이라고 직원들에세 소개했지만, 마치 팔촌의 동생뻘 정도의 어감이었다. 천희의 단조로운 어감에서 말은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마트에서 채소를 다듬고 우유배달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나를 그 누구도 천희의 친 동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원장인 천희는 마치 하늘 나라에서 잠시 호박죽을 먹으러 온 선녀이고, 나는 땅을 파서 호박농사를 지어서 호박죽을 바치는 천한 아낙네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천희는 급하게 진료실로 들어가고, 나만 안내데스크 앞에 멀뚱히 남겨졌다. 천희가 엄마의 악다구니에 눈빛으로 대항할 때 멀뚱하게 옆에서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던 그 기분이었다.
그 기분의 정체를 3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의 화풀이 대상자도 되지 못한 나약하고 어리숙한 막내였고 말제였다. 그런 애매하고 어리숙한 막내인 나같은 인간에게 언니 취급도 받지 못한 천희는 더 저급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천희의 직원들은 천희의 동생인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바쁜 척을 했다. 천희의 진료실 문은 유리문이다. 유리문 가득 수양버들이 늘어진 문양으로 썬팅 처리 되었다. 몇 분동안 진료실 풍경을 바라봤다. 환자의 말을 듣고 있는 천희의 얼굴 표정은 엄마의 악다구리를 듣을 때의 모습이었다. 가끔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내리는 행동을 취하는 모습도 신기하고 놀라웠다. 유리문에 썬팅된 수양버들 문양과 진료실이 어우러졌다. 천희가 마치 수양버들 빨랫터에서 진료를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천희와 수양버들의 문양을 보며 나는 묻어둔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6. 시작은 천희로부터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이 현실이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나 같은 땅에서 성장한 자매인데, 천희와 나는 완전 다른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천희는 엄마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쌍욕을 들으면서도 눈빛이 당당했다. 그걸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쪼글딱스러웠다. 천희의 무서운 눈빛도 피해야 했고, 내편을 들어주는 엄마의 역성 앞에서도 비굴했다. 어디에 있든 천희는 그 무대가 다를 뿐 여전히 똘당했다. 당당했다. 제멋대로였다. 해양 도시에는 천희의 그 제멋대로의 태도가 제대로 먹히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천희 역시 나와 똑같은 수양버들이 우거진 동네의 미꾸라지같은 출신임을 밝혀야 억울함이 해소될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일당쟁이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간다. 어제 밤에도 남편이라는 웬수를 노래방에서 꺼내서 집으로 데려왔다. 마침 노래방 주인이 딸의 친구 엄마라서 남편이 거기서 도우미 아줌마와 엎어졌다고 연락을 해 주었다. 노래방 주인이 혀를 끌끌차며 신경질적으로 남편이 있는 방을 안내했다.
“으이구, 추접스런 것들. 노래하는 곳에서 뭔짓거리들이여
빨리 데려가소.”
남편이 자빠진 방은 목포행 완행열차 반주만 요란했다. 남편은 나를 보자, 술이 많이 취한 척 쇼파에 누워버렸고 빼빼 마른 늙은 도우미 여편네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사장님요, 서비스비 3만원만 주이소.”
나는 그 늙은 노래방 도우미에게서 분노와 더불어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우월의식까지 더해져 남편의 지갑을 거침없이 열었다. 남편의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여자는 요란한 네일아트가 반짝이는 손가락으로 3만원을 감아서 사라졌다. 겨우겨우 생계비를 버는 가장의 일당 중에 3만원을 더 빈곤한 중생에게 주고 아까워 치질이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근질거리고 아렸다.
치질은 아이를 출산하며 3일동안 진통을 겪으며 튀어나왔다. 고난과 가난의 흔적이다. 골반이 작아 산통이 시작되고도 아기가 밀고 나오질 못했다. 몇 번을 까무러지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제왕절개 수술을 간절히 원했지만 돈이 아까워서 안간힘을 썼다. 3일만에 아기는 겨우 머리를 내밀었다. 치질도 함께 쏘옥 기어나와 다시 들어갈 줄을 몰랐다. 며칠동안 산후 몸조리를 할 때, 치질이 제자리를 찾을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마트의 재료준비실에 쪼그리고 앉아 콩나물 한 시루를 소분하여 담자 치질은 다시 밖으로 쏘옥 기어나왔다.
평생 치질처럼 근질거리고 아린 삶이다. 나는 천희가 운영하는 병원의 바로 앞 마트에서 온갖 잡일을 하며 천희의 근본을 까발리기로 했다. 천희와 나는 많이 닮았고 목소리도 비슷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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