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발언 소설]가증스런 나의 언니 1화

불행은 가족에서 시작되었다


1. 다시 만난 천희

나와 비슷하게 생긴 천희, 천희는 목소리도 나와 거의 똑같았다. 내 딸과 남편은 천희와 나의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했다. 천희가 내 집에 전화하면 내 딸은 나인 줄로 착각했다. 그런데 내 딸이 중학생이 되어서 확실하게 나와 천희의 목소리를 구별했다. 나중에는 나와 천희는 숨소리도 다르다고 말했다. 내 딸은 별뜻 없이 말했지만 나는 무슨 의미인지 확실하게 구별해서 들렸다.

의사인 이모와 엄마의 목소리는 같지만 사용하는 단어, 목소리 톤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천희는 자매지만 나와 완전 다른 가식과 위선덩어리였다. 지금 저렇게 의사가 되어 고귀한 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시골에서 손가락질 받았던 재수없는 촌년이었다. 보흥 시내에서 1시간을 더 들어가는 시골 동네, 수양버들이 축 늘어진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며 살았던 나와 다름 없는 촌딱이다. 늘 엄마에게 머리끄댕이 잡혀서 가뭄이면 논에 물들어갈 때까지 욕을 얻어먹기에 마땅한 천희였다. 천희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양버들의 우거진 우리 동네를 떠났다.

“다시는 이렇게 축축 늘어진 동네는 발도 딛지 않을거랑게!”

이 말을 남기고 천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돌연사라도 한 것으로 알았던 천희는 완전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서 살아있었다. 게다가 유명한 정신과의사였다. 천희를 다시 만나, 그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치질이 근질거렸다.

날씨는 푹푹찌고, 꽃대궁처럼 바알간 촉을 쏘옥 내민 치질은 근질거린다.

버스에서 내려 마트로 향하는 길은 사람이 많아 엉덩이를 살짝 긁을 수도 없다. 머리를 쏘옥 내민 치질이 톡톡 쏘듯이 가려워서 엉덩이에 힘을 꼬옥 주고 엉기적엉기적 걸었다. 주저앉고 싶지만 벌떡 일어나 돈을 벌러 디마트로 향할 수 있는 의지는 자식들 때문만은 아니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만을 버는 일이라면 집 근처에서도 가능했다. 하지만 언니를 디스(까고), 다이(죽이고) 하려면 이 디마트가 최적의 장소이다. 언니의 정체가 까이고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치질에 힘을 주면 근질거림이 싸악 사라지고 아릴 만큼 시원하다, 통쾌하다. 치질은 어느새 제 자리로 일단 쏘옥 기어들어갔다.


2. 모든 화는 천희로부터 시작

천희는 나의 친언니이다. 오빠 둘도 있지만, 잘난 천희 덕분에 그들의 존재는 인식되지도 않는다. 4살 많은 천희는 나에게 받아쓰기 100점을 강요했다. 1학년인 나의 머리를 연필로 때리며 받아쓰기 연습을 시켰다. 세상에 태어나 최초의 부당하고 억울함을 느꼈던 순간이다.

엄마는 나를 혼내는 천희의 뺨을 때리며 저지할 때가 많지만 천희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나쁜 년이었다.

"니깥 년이 뭐라고 불쌍한 막뚱이를 때리냐? 이년! 네 이년!"

엄마가 천희를 때리는 뺨따구 소리에 내가 더 놀랐다. 그런데 천희는 엄마와나를 잠시 쏘아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나에게는 이런 언니가 버젓이 있지만 언니가 없다. 천희를 한 번도 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천희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은 이유는 별거도 아니다. 엄마가 늘 천희를 이년저년이라고 호칭했기 때문에 나도 언니라는 호칭이 나오지 않았다.

"야 이년아, 왜 불쌍한 동상을 닥달이여? 이 썪어자빠질 년야."

마흔에 과부가 된 엄마는 부당하고 억울한 모든 것이 마치 천희의 잘못인 양 꽂혀버렸다. 엄마는 논에 벼 이삭이 가물어서 타들어가는 꼴을 보고 오면 당연히 천희에게 욕을 끌어부었다. 마치 천희에게 욕을 끌어부으면 논에 물이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콸콸콸 욕을 쏟다부었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천희에게 욕을 하고 머리끄댕이를 잡고 난 후에는 가뭄에 비가 내리기도 했다. 또 우락부락한 이웃집의 아저씨가 빌려가고 무소식이었던 농기구를 자발적으로 갖다주기도 했다. 이런 묘한 효험을 알았는지, 오직 천희를 향한 욕설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럴 때 마다 천희는 나의 옷차림과 공부를 지적했다.

어느 초여름에 천희가 물려 준 원피스에 땡감을 싸가지고 다니며 놀았다. 그 옷은 원피스에 볼레로가 달린 예쁜 옷이었다. 천희는 그 옷을 팬티가 보일락말락 해도 나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기가 입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그 딸랑 올라간 천희의 짧은 옷차림을 지적하며 동생에게 물려주라고 했다. 천희가 펄렁펄렁 입고 다니던 그 원피스는 내 차지가 되어서 아무렇게나 입어도 되는 줄 알았다. 펄렁거리는 원피스의 촉감이 땡감을 주워 그 치맛자락에 싸들고 다니기에 그저그만이었다. 치맛자락에 저절로 떨어질 때 작은 돌에 찍혀 상처난 작은 땡감들을 가득 주워담았다. 초여름에 감꽃과 땡감을 원피스에 담고 다니는 재미는 푸지고 오졌다. 옆집의 감나무 담장 아래에 땡감과 흙덤불을 모아놓고 친구들과 놀았다. 그때 나를 본 천희는 기겁을 했다.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당장 그 옷을 벗으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땡감 물이 들어 얼룰덜룩해진 원피스를 보았다. 천희가 몇 년동안 애지중지 했던 원피스가 흰색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인지했다.

나는 천희의 손에 어깨자락이 움켜잡힌 채 집까지 끌려왔다. 나는 엄마와 오빠들이 보이자 큰 소리로 울었다. 오빠들과 엄마는 동시에 천희를 째려봤다. 엄마는 천희에게 욕을 하며 내가 갈아입을 옷을 내다주었다. 내가 갈아입을 옷으로 여지없이 천희의 뺨을 후려치고 난 후 나에게 던져주었다. 엄마가 후려친 옷자락이 천희의 눈을 스쳤는지 천희는 한참동안 두 손으로 눈을 부비며 앉아있었다. 오빠들은 끼득거리며 천희의 등 뒤에 주먹질을 해대며 비웃었다.

그때 6학년이었던 천희, 그 똑똑한 천희도 떫은 감물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는지 원피스를 들고 빨랫터로 나갔다. 원피스를 둘둘말아서 안고 나갔다. 그렇게 옷을 빨려고 나간 천희는 해가 저물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년 천희년 냇가에 빠져 죽어부렀는지 찾아봐야쓸건디"

엄마가 저녁밥을 물에 말아서 마시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우물거렸다. 천희는 컴컴한 시냇가의 빨랫터에 앉아서 원피스 자락을 비비고 있었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빨랫터는 온통 찐한 남색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일롱 원피스 자락을 비비는 소리에 사람의 낌새가 느껴졌다. 그때 천희는 수양버들처럼 늘어져 원피스 자락을 세차게 비비고 있었다. 원피스를 비비며 손등의 껍데기가 벗겨질 만큼 반복적으로 세차게 비볐다. 늘 엄마가 잡아서 흔들던 때처럼 머리카락이 너풀거렸다.

"엄마가 오라는디..."

천희는 오랫동안 울었는지 흐느낌이 딸꾹질 소리처럼 들렸다. 천희는 그 원피스를 그대로 냇가에 놓았다. 원피스는 흘러갔다. 우는 모습에서 천희가 살짝 불쌍해지려고 했는데, 흘러가는 원피스를 보자 다시 천지가 미워졌다. 당당하고 오기있는 천희가 원피스에 감물이 든 이유로 그렇게 오랫동안 울었던 그날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천희는 그날 밤, 그 어두운 빨랫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천희가 두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와 오빠는 방으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5촉 전구 아래 슬쩍 보인 천희의 손등의 피부는 온통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손목까지 울긋불긋 보라색 감자빛이었다. 천희는 마루에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세상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다음 날에 천희는 용수철처럼 살아서 달랑 남은 볼레로를 다시 가져갔다. 디스코 청바지 위에 볼레로를 짤막하게 입은 천희는 시골에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앙증맞아서 볼쌍사나웠다. 동네 아줌마들은 여전히 옷이 짧아서 배꼽이 보인다고 간섭하고 비아냥거렸지만 천희는 노골적으로 그들을 무시했다. 젊은 아줌마들을 향해서 살짝 웃으며 두 팔을 번쩍 들며 디스코를 추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묘하게 아줌마들은 그런 천희를 보며 말끝을 흐리고 뒤꽁무니를 뺐다.

엄마에게 무시당하며 머리 뜯기는 천희를 동네 사람들도 무시했었다. 천희를 무시하며 내 편을 들어주었던 아줌마들이 그날부터 천희만 보면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두 팔을 번쩍 들며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천희를 경외시했다. 두 팔을 번쩍 들었을 뿐인데 키가 커보였고, 아줌마들은 고개를 살짝 숙였기에 천희는 더 커졌다.

우리 동네 6학년 언니들 중에서 제일 작은 천희는 가끔 거대해졌다. 남들이 비아냥거릴 때 두 손을 번쩍 들어서 이상한 제스처를 했다. 그날부터 엄마가 욕을 하며 천희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할 때도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엄마도 그때부터 더 이상 천희의 머리채를 낚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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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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