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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구 아줌마 4

8000원은 정말, 쌀 한 말 값이었다

by 이정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을 보러 간 그 날, 나는 키가 작아 까치발을 해야만

신생아실의 창문 너머를 겨우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빠, 나 안 보여." "할머니, 나 올려 줘."

성화를 부려봤지만 어른들에게 나는 안중에 없었다. 갑자기 나를 투명인간 취급 하며

동생에게서 눈조차 떼지 않고 호들갑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이제 그만 가자고, 어른들 옷을 잡아당겼더니

할머니는 내게 "이제 언니가 되었는데 그만 좀 보채라." 고 퉁박을 주었다.

언니라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내쳐진 듯한 그 기분은 서글프다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동생이 태어난 병원은 지금의 산부인과들처럼 화사하고 밝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 병원은 우중충하고 어두운 복도가 이어진 곳이었는데

정말 그리 음침한 병원이었는지, 내 기분이 그랬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틈만 나면 동생을 둘러싸고 예뻐하는 어른들 중에서도 제일 나빴던 건

준구아줌마였다.

준구아줌마는 집에 오면 늘 동생 앞에 앉아 우르르 까꿍 소리를 내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는데,

나도 끼어서 함께 있으려고 하면

동생 다친다며 내 손을 밀어내고 저만치 가라며 눈치를 주었다.

동생을 예뻐해줘도 조심하라 성화고, 우는걸 달래주려 뛰어가도 비키라고 야단이니,

나는 동생도 미웠고, 준구아줌마는 더 미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기가 준구아줌마에게도 버거웠을 것이다.

갓 태어난 동생이 있고, 은퇴한 할머니가 계시고, 수시로 심통을 내는 내가 있으니

안그래도 만만치 않았던 살림에 갑작스레 몇 배가 되어버린 집안 일은

준구아줌마를 날카롭고 예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나이였다. 그냥 준구아줌마가 변한 것이었다.

동생의 탄생과 함께, 나와 준구아줌마의 아슬아슬한 애증관계는 계속 되었고,

뻑하면 짜증을 내는 준구아줌마가 나는 아주 미워서

준구아줌마 대신, 다른 아줌마나 다른 언니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밤이 쌓여갔다.


서러운 날들을 보내며 나는 어느덧 국민학교도 적응해야 했다.

학교는 신나게 놀고오면 되는 유치원과는 달랐다.

나는 글도 제법 일찍 뗐고, 그 지겨운 공문수학 덕에 더하기 빼기도 할 줄 아는,

지금으로 따지면 '선행' 이라는 것을 해 놓은 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는 똑똑한 아이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엄마는

그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똑똑해야 한다고 늘 내게 강조했다.

그 시절엔 국민학교 1학년들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학교 시험을 봐야 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인생살이가 고단한데, 나는 온 몸을 배배 꼬며 시험공부까지 해야했다.

엄마가 학원을 가면서 풀어놓을 문제집을 늘 정해주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농땡이를 피우다가 준구아줌마한테 닥달을 듣기 일쑤였다.

준구아줌마는 "너 그러다가 엄마한테 또 혼난다." 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낙제해서 담임 선생님한테 회초리 맞는다." 고 악담을 하기도 하더니

언제부터인지 작전을 바꿔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너가 이번 시험에서 100점을 받으면, 아줌마가 선물을 하나 해줄게."

세상에... 내 눈이 번쩍 띄였다.

안그래도 너무너무 갖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100점만 받으면 그걸 가질 수 있다!


학교친구들은 부루마불이라는 보드게임을 너도나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부루마불도 가지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간절했던 것은

'신데렐라 신디 게임' 이라는 게임이었다.

친구 생일날 초대를 받아 갔다가 그 게임을 보는 순간, 나는 넋을 잃었다. 이렇게 어여쁜 게임이 있다니...

박스에도 보드판에도 카드에도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넘쳐났고, 왕자님 같은 남자들이 모델 포즈를 취하고 서 있었다.

핑크와 하트로 도배가 되어있던 그 게임을 사달라고

엄마를 안 졸랐을리 없는 나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조르는 나를 엄마는 매몰차게 거절했는데

'쓸데없는 것' 이라는 이유였다. 어떻게 그 예쁜 게임을 쓸데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는걸까.

어른이 되어 엄마에게 들은 진짜 이유는

"안 그래도 공주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한두푼도 아닌 게임까지 그런거를 사달라고 하니 그랬지!" 였다.

여전히 완벽하게는 동의할 수 없으나, 내가 그 시절, 공주에 유독 빠져 살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명자언니 글에도 티가 나듯, 나는 공주와 귀족 등으로 버무려진

만화영화나 동화책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현실과 헷갈려 하며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신데렐라 신디 게임 사줄거야 그럼?"

"그게 얼만데?"

"100원쯤 할 걸?"

그 시절 내게는 왠만큼 좋은 것들은 다 100원이었다. 100원이면 버스를 타고도 엿을 두개나 먹을 수 있었고 쭈쭈바도 두 개를 사서 친구에게 선심까지 쓸 수 있는 돈이었다.

엄마에게 100원만 달라고 하면, 돈을 겁없이 쓴다며

겨우 20원이나 운 좋으면 50원쯤을 받기 일쑤였다.

"100원이면 돼?"

"어! 어! 100원이면 돼!"

"그래 그러면 너 100점 받으면 내가 그거 사줄게."


아줌마와의 거래는 성사 되었고,

그래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정말 나는 국민학교 첫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

집에 가서 신데렐라 신디 게임을 살거라고 자랑하는 나에게 꽂히는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은 100점보다도 더 자랑스러운 성과였다.


준구아줌마 손을 끌고 간 문방구는 늘 그렇듯 박작거렸다.

아이들을 헤치며 들어가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신데렐라 신디 게임 주세요!"

마음 같아서는 한 명 한 명 모르는 아이들을 붙들고,

내가 100점을 받아서 상으로 받는거라고 설명해주고 싶을 판이었다.

"얼마에요?" 주섬주섬 작은 손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는 준구아줌마에게 문방구 아줌마는

"8000원이에요." 라고 대답을 했다.

8000원이라니. 100원이면 될 줄 알았는데, 800원도 아니고 8000원이라니.

나는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으로 준구아줌마를 바라봤고,

준구아줌마는 나보다 더 난감한 표정으로 멈춰서 있었다.

그리고 머뭇대던 준구아줌마는 내 눈을 애써 피하며 기어이 그 말을 꺼냈다.

"뭐가 그리 비싸요. 안 사요."


왜 안 사냐고, 약속하지 않았냐고,

준구아줌마에게 질질 끌려 돌아오면서도 나는 아우성을 쳤다.

나는 그 나이 치고는 제법 체면이 있는 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날은 예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어떻게든 사내라고 버텼다.

엄마아빠에게도 길바닥에서 그리 생땡깡을 피워본 적 없는 나는

악다구니처럼 아줌마에게 달겨들었다.

"8000원이면 쌀이 한 말이야!!" 참다참다 준구아줌마가 나보다 더 큰 소리로 화를 내었는데

나는 서럽고도 서러워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아줌마는 나빠! 아줌마는 약속도 안 지키고 나만 미워하고 동생만 예뻐하고!

동생이 사달라고 그러면 아줌마는 쌀 한 말이어도 사줄걸!!"

꼼짝 않는 나를 포기하고 먼저 집으로 향해버리는 아줌마 뒷모습을 보며

아줌마는 거짓말쟁이야. 동생만 예뻐하고. 를 혼자 계속 되뇌었다.

혼자 남아 울려니 머쓱해져서 눈물을 훔치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걸음걸음마다 내 처지가 서러웠다. 어쩌다 나는 모두에게 미움받는 아이가 되어버렸을까.


나는 그 날,

신데렐라 신디 게임을 받지 못해서 서러웠던 걸까.

아니면, 동생으로 인한 서러움을 그 핑계로 터뜨렸던 걸까.

엄마아빠에게는 그리 난리를 치며 울었던 적은 없었다.

왜 동생만 예뻐하냐는 말을 해봤자,

언니답지 못하다고 혼만 날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 그랬을테다.

늘 그랬듯

준구아줌마는 다를거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준구아줌마는, 다른 어른들은 다 내 맘을 몰라줘도 준구아줌마는

배고프면 더 속상하다며 내 손을 이끌고 식탁으로 데려가줬던 날처럼

너가 정말 속상하겠구나 손을 잡아주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뒤늦게 이 난동을 알게 되자,

나는 엄마에게 한 번, 저녁먹고 할머니에게 한 번,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에게 한 번,

모든 어른들에게 돌아가며 한 번씩 혼이 나야 했다.

100점짜리 시험지는 칭찬 한 번 받지 못한 채,

하루종일 혼만 났다. 서러웠지만 어른들 앞에서 나는 내가 왜 서러운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그토록 서러웠던 이유는

신데렐라 신디 게임을 갖지 못해서만이 아니라

그동안 동생에게 빼앗긴 사랑이 아팠기 때문임을.

모두가 동생에게만 환한 웃음을 지어주는 것에 서글펐고,

새로운 장난감과 새 옷, 새 신발, 새 모자를 허구헌날 받는 동생 곁에서 외로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동생만큼이나 나를 사랑한다고,

쌀 한 말이 아니라 쌀 한 가마니 짜리라도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증거를 바랐을 뿐이었다는 것을.

그날 밤 나는

나조차 내 맘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철없고 욕심많고 고집 센 아이가 되어 울면서 잠들어야 했다.


"8000원이면 쌀 한 말이야!"

이전엔 본 적 없던 준구아줌마의 잔뜩 화가 났던 표정과 목소리.

살면서 그 날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생각했었다.

설마, 보드게임 하나가 쌀 한 말이었겠어.

기억이 올라올 때마다, 그래서 준구아줌마에게 미안한 맘이 들 때마다

아무리 철이 없었어도 그 가격의 장난감을 사내라고 내가 했을까 싶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 철없음의 기억을

얼렁뚱땅 희석시키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며 신데렐라 신디 게임을 찾아보았다.

핑크빛 보드게임 박스에 8500원이라고 정가표가 붙어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80년대 쌀 한 말 값을 찾아보았다.

쌀 한 가마니가 3만원이라는걸 보니, 정말 6000원쯤은 했었겠다.

아, 변명의 여지가 없네...


일하러 다니는 집 꼬맹이가

얼토당토 않은 어거지를 부리며 자신을 신용없는 어른으로 몰아붙였을 때,

준구아줌마는 나보다 더 서글펐겠다.

쌀 한 말 가격을 떠올리며 준구아줌마는

나의 철없음이, 나의 당돌함이 야속하고 미웠겠다.


시간이 지난 후에

준구아줌마네 정은이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에,

나는 정은이 언니에게 미안했었다.

그 날 나를 혼낼 때 엄마가 했던

"준구아줌마가 돈이 어딨다고 그런 걸 사달라고 졸라대!

쌀 한 말 값이면 아줌마네 오빠 언니가 한 달은 먹고 살겠다!

그 쓸데없는 거를 사주면 아줌마네는 뭘 먹고 사니!" 라는 말이 떠올라

정은이 언니의 한 달치 식사를 빼앗아 먹으려고 했던

탐욕스런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었다.


그 쌀 한 말짜리 게임으로 나는

준구아줌마의 가난을 대충 눈치채게 되었다.

보드게임을 하나 사면

한 달을 굶어야 한다니,

가난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여덟살짜리 눈높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낡은 손지갑을 열려다가 멈춰섰던 아줌마의 표정,

악을 쓰는 내게 파르르 떨며 소리지르던 아줌마의 목소리,

그깟 것도 못 사주냐는 눈빛의 꼬맹이를 보며

아줌마는 얼마나 사는게 치사해졌을까.


나는 또

아줌마의 마음을

와그작 깨물어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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