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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구 아줌마 3

위로의 기술

by 이정

준구아줌마는 다 좋은데 자주 늦었다.

레슨시간이 정해져 있는 엄마는 준구아줌마가 제 시간에 도착을 하지 않으면 몸이 달았다.

어찌할 바 모르는 엄마에게 "준구아줌마 또 늦어?" 물어보면

"아줌마가 애들도 있고, 집도 멀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엄마는 대답했으나

엄마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한숨을 자꾸 쉬고 시계를 수시로 봤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기도 했다.


그 날도 준구아줌마는 아주 큰 죄를 지은 얼굴로

후다닥 대문 안으로 뛰어들어 왔는데,

눈 한 쪽에 안대를 차고 있었다.

얼마 전, 아빠가 회사에서 아폴로 눈병을 옮아 왔을 때,

엄마는 아빠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며 나와 눈도 못 마주치게 했더랬다.

그 때에도 아빠는 저런 안대를 쓰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 큰일이네. 우리 엄마는 눈병을 아주 무서워하는데...' 싶어

엄마가 준구아줌마를 집에 들이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아줌마 눈이 왜 그래요?"

"좀....... 다쳤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잠시 준구아줌마를 바라보던 엄마는 "조심하시지..." 말끝을 흐리며 출근을 했다.

다행이었다. 아줌마가 눈병은 아니니, 아줌마 곁에 가도 괜찮다.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아줌마에게 달려가

"아줌마 눈 왜 그래? 왜 다쳤어?" 묻는 내게 아줌마는 자꾸 얼굴을 돌리며

그냥 다쳤다고, 아줌마 늦어서 바쁘니까 오늘은 너도 가서 혼자 놀라고만 했다.

눈병도 아니라면서 오전내내 나를 슬슬 피하고,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는 준구아줌마가 아무래도 수상했다.

준구아줌마가 다친게 아니라 진짜 아폴로 눈병인가?

나는 어른들이 뻑하면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다시 돌려보낼까봐 준구아줌마가 거짓말을 한걸까? 그런데 엄마가 눈치챘나?

준구아줌마가 우리엄마를 안다면, 그런 거짓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는 정말이지

그 어떤 거짓말도 귀신처럼 잡아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진실을 모를리 없다.

그렇다면, 엄마도 눈병인걸 알면서도 나 혼자 집에 둘 수 없으니 같이 거짓말을 해주는건가?

나한테 눈병이라고 알려주면 너무 겁을 먹을까봐 나를 또 속인걸까?


엄마가 점심시간에 잠깐 집에 들르면,

엄마와 나, 그리고 준구아줌마는 셋이 모여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준구아줌마가 상만 차려놓고 자꾸 멈칫멈칫 다른 곳으로 간다.

"저는 할 게 좀 있어서... 이따가 대충 먹을게요." 하며.

자꾸 식탁 멀리로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는 준구아줌마에게

"그럼 그러실래요? 우리부터 먹을게요." 하며 엄마는 수저를 들었다.

가끔 준구아줌마가 "이것부터 해놓고 먹을게요." 라고 해도

"아유, 식사부터 하고 하세요. 국 다 식어요." 라며 채근을 하던 엄마다.

그런데 오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준구아줌마가 자꾸 늦어서 화가 났나.

아니면, 정말 아폴로 눈병인가봐.

생각해보니 엄마는 오늘

준구아줌마와 이야기도 별로 나누지 않았다. 평소에는 같이 붙어 점심준비를 하며

두런두런 수다가 늘어졌는데, 오늘은 부엌에서도 둘이 따로 움직이며 어색하게 말을 섞었다.


"엄마! 준구아줌마 눈병 아니지?"

엄마와 아줌마의 반응을 봐야겠다. 대답하는 분위기를 보면 진실여부를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그만 말하고 밥 먹어."

"다친거니까 준구아줌마도 같이 먹고 나랑 있어도 되는거잖아?"

아무도 대답이 없기에 나는 다시 크게 물었다. "아줌마는 눈병 아닌거잖아!"

나의 우렁찬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엄마의 대답은 계속 소근소근하다. "아니라니까."

하긴... 생각해보면 아빠가 눈병에 옮았을 때에 엄마는

아빠가 만진 물건들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었다. 옆집 언니들이 눈병에 걸렸을 때에는

옆집에 못 가게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언니들을 만난적도 없는데도 수시로 손을 씻으라고 성화였다.

준구아줌마가 눈병에 걸렸다면 아줌마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 나물을 내게 먹으라고 할 리 없는 엄마다.

오늘은 내게 손씻으라는 성화를 한 번도 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짜

아줌마가 자꾸 늦어서 엄마가 화난게 분명하다.

이러다가 준구아줌마가 영영 우리집에 못 오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얼마전에 아랫집 창호네집 아줌마가 쫓겨난걸 나도 다 들어서 안다.

어른들은 "아줌마가 시어머니처럼 굴었다."며 다들 쫓아내길 잘했다 하던 참이다.

엄마의 화가 풀리지 않아서 준구아줌마가 쫓겨나면

어른들은 또 다같이 편을 먹고 "아줌마가 허구헌날 늦었다."며 잘했다 하겠지.

아줌마가 늦을 때마다 엄마가 얼마나 애닳아 했는지 나도 봤기에

나조차도 엄마만 나쁘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내가 아줌마를 지켜줄 차례다.

아줌마가 눈병에 걸린 게 아니라면, 그저 엄마가 화가 난거라면,

내 방문을 열고 와 나를 식탁으로 데려갔던 준구아줌마처럼

이번엔 내가 억지로라도 데리고 와야 할 때이다.

데려와서 같이 밥 먹다 보면 엄마 화도 풀릴 것이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나를 무섭게 혼을 내고 난 후에도, 밥을 같이 먹고 식탁에서 얘기를 하다보면 좀 부드러워지곤 했다.

"내가 아줌마 데려올래." 하고 일어나는 나를 엄마가 붙잡는다. 너나 먹으라며 엄마가 흘겨본다.

"왜! 아줌마도 와서 먹으라고 해." 고집을 부려봤다. 그러나

엄마의 표정이 날카로워질수록, 내 목소리엔 용감함이 사라진다.

아이의 의지란 이토록 속절없다.

미안해 준구아줌마. 엄마가 못하게 해.... 더 고집부리면 나까지 엄마한테 혼날지도 몰라....


"점심 꼭 챙겨드세요." 엄마가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나가자마자

나는 준구아줌마에게 얼른 달려갔다.

식탁으로 아줌마를 끌고 오지 못했던 비겁함을 갚아내듯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결심으로 아줌마에게 들러 붙었다.

"아줌마, 점심 먹어. 엄마가 꼭 먹으랬잖아. 얼른 먹어."

걸레질을 하는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안달하는 나를

준구아줌마는 여전히 밀어냈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아줌마를 살피며 도울 방안을 찾는라 머릿 속이 바빴다.

혹시 아폴로 눈병일까봐 오전내내 가까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준구아줌마 얼굴은

안대 밖으로도 거뭇거뭇 멍이 보였다. 걸레질을 하는 아줌마 팔뚝에도 멍이 있다.

아... 어째야 하나....

"아파?"

"아니야."

"아줌마 팔에도 멍 있어."

"괜찮아."

"왜 다쳤어?"

"그냥 다쳤어."

"어떻게 다쳤는데?"

"그냥 다쳤다니까. 가서 놀아."

위로해주려고 간 건데, 나는 또 질문만 쏟아부었다.

쓸데없이 질문을 날리다가 그 실수를 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나는 또 아줌마에게 질문만 해대었다.

일단 후퇴. 어떡하지. 어떡하지...


엄마의 경대 한쪽 서랍에는 약들이 가득했다.

자주 머리가 아픈 엄마의 두통약도 있고, 걸핏하면 배탈이 나는 나의 배탈약도 있었는데

그 중에 엄마가 제일 많이 쓰는 약은 호랑이고약이었다.

호랑이고약은 만병통치약인지

벌레 물려도 바르고, 멍이 들어도 바르고, 욱신대도 바르고, 여튼

어디가 아프다고만 하면 어른들은 덮어놓고 호랑이고약을 바라주었다.


"아줌마, 이거 발라."

어리둥절한 아줌마에게 나는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쓸데없는 말로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고약을 손에 쥐고 여러번 머릿속으로 연습도 했다.

티티파스로 속상하던 내게, 준구아줌마가 해주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나도 준구아줌마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엄마와 화해를 시키지는 못해도

나는 준구아줌마를 탓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위로가 되고 싶었다.


"이거 발라 아줌마. 눈에도 바르고 팔에도 발라.

그리고 아줌마. 점심 먹어.

다쳐서 아픈데 배까지 고프면 너무 속상하잖아."


얼마 전, 준구아줌마에게 배운대로

성실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제법 멋졌다.

그래서일까,

준구아줌마는 "그래, 고마워." 하며

그 날의 나처럼 울었다.

아줌마가 훔치던 걸레 위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도 그랬었다. 준구아줌마가 그리 말해주었을 때 왠지모를 눈물이 다시 쏟아졌었다.


"내가 발라줄까?"

"아니야. 내가 바를게."

안대 속에서도 아줌마의 눈물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걸레질을 하는 자세 그대로, 쭈그리고 엎드려 운다.

나는 어른들의 눈물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아파서 우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가끔 엄마가

아빠에게 할머니 애기를 하며 울거나, 영화를 보다가 우는 정도.

그것도 티나지 않게 흐르는 눈물이었지 저렇게 아이처럼 뚝뚝 떨어지진 않았다.

아마도 준구아줌마는 아파서라기 보다는

자꾸만 늦어서 미안하고, 엄마가 화를 내서 속상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어른이 저토록 애닲게 울 수 있구나, 나는 그 날 처음 알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면 부끄러워 했다.

내가 엄마에게 "엄마 울어?" 물어보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니야!" 하고 우겨댔었다.

나는 어른스런 위로에 걸맞는 어른스런 퇴장을 결심했다.

"아줌마 얼른 바르고 점심도 먹어. 알았지?"

방으로 돌아와 "엄마가 나빠." 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너무했다.


저녁에 돌아온 엄마는 준구아줌마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둘이 화해를 하나, 싶어 궁금했으나

어찌나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지 방 밖으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하나도 없었다.

엄마와 이야기를 끝내고 집을 나서는 준구아줌마 표정이

여전히 좋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한 쪽만 보이는 눈두덩이가

벌겋게 부어오른 것이 많이 운 것도 같았다.

"엄마, 준구아줌마 내일도 와?"

"오지 그럼 안 와?"

"엄마, 준구아줌마한테 화났어?'

"화가 나긴 왜 화가 나."

"그런데 왜 준구아줌마한테 쌀쌀맞게 했어?"

"내가 언제 아줌마한테 쌀쌀맞게 했니."

어른들은 이런 식이다. 해놓고도 안 그랬다고 한다. 내가 가끔 오리발을 내밀면 혼쭐을 내면서 말이다.


준구아줌마는 다음날에도 우리집에 왔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여전히 종종 늦고 자주 다치면서도

그래도 계속 왔다. 그리고 나는 계속

아줌마가 늦으면 마음이 달았고, 아줌마가 다쳐 오면 호랑이고약을 가져다 주었다.

꾸준히 늦고, 뻑하면 다치는 준구아줌마가 안타깝긴 했으나

그래도 아줌마에게 내가 있어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줌마에게 배운 위로의 기술이 자못 자랑스럽기도 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정은이 언니의 등장으로 아줌마의 사정을 알게 된 이후에도

엄마보다 내가 더 나은 '위로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위로란

상대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 후에야 가능한 것임을 그 때는 몰랐다.

아니, 알았더라도 내게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은 늘 내게 쉬쉬하는 것들이 많았고,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다 한들

일곱살짜리가 겪은 경험치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후에 준구아줌마의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아줌마의 속을 헤아리지는 못했다.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가 있구나, 놀라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달겨드는 위로보다

때로는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이 나음을 알게 된 지금,

악착같이 호랑이 고약을 가져다 주었던 나보다

잠시나마 한 발 물러서주었던 엄마가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에도

나는 종종 비슷한 상황을 마주치면

여전히 헷갈린다.

"잊지마! 나 여기 있어! 네 편이 되어주려고 기다리고 있어!" 라며

열심히 표현하고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나은지,

그 사람이 충분히 무너진 마음을 추스릴 때까지

모른 척 기다려주는 것이 나은지,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댜려주는 것이 현명한 건지,

어른이 되어서도 쉽지 않은 판단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준구아줌마는 그 때

나의 위로에, 위로를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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